나이가 든다는 것

by 사십대 소녀

‘어른’의 유의어는 ‘성인’으로 보통 19살 이상의 남녀를 지칭한다고 사전에 적혀 있다. 다 자라서 자기일에 책임을 질 수 있는 나이, 결혼을 한 사람을 어른이라고 한다니 나는 어른이다.


사전적 의미로나 사회적 기준으로 봤을 때는 어른이 맞는데, 솔직히 나는 아직도 내가 어른인 지 모르겠다. 이것은 마치, 수박 겉핥기로 공부를 할 때는, 내용을 벌써 다 아는 양, 시험 백점 맞을 것 같이 의기 양양했다가, 하지만 좀 더 깊숙이 공부하다 보면, 공부해야 할 게 너무너무 많아서 시험 빵점 받을 것 같은 느낌을 받던 때와 비슷한 것 같다.


누구나 그렇듯, 나 역시 대학입학과 동시에 갑자기 성인이 되었다. 나의 하루하루는 내게 자유를, 방종을 선사했다. 술집에 가서 술도 맘껏 마시고, 연애도 하며 사랑의 아픔을 느끼고, 자유롭게 여행도 다녔고, 어른이 된 만큼, 그 만큼 내 삶에서 스스로 의사결정해야 하는 일들이 생기기 시작하며, 헤어나 올 수 없는 어른의 늪으로 한발짝 내 딛기 시작했다. 그 당시 어른이 된다는 것은 신나는 일이었다. 잘난 척할 만한, 조금은 우쭐 할 수 있었 던 시기였다.


대학을 졸업하고, 학생의 신분에서 회사원으로 갈아타는 그 순간,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아이로 다시 되돌아가 시작한다. 신입이라는 딱지가 붙여지고, 자유는 사라지고 돈과 시간의 노예계약이 시작된다. 박힌 돌들 틈새에서, 호랑이 굴에 들어간 토끼 마냥, 시키는 대로 하는 것이 최선이다. 인생의 쓴맛의 경험이 진정 시작되는 시점이다. 나는 우물안에 개구리였고, 우물 밖 세상을 동경했으나, 우물 밖으로 나갈 만큼 용기 있지 못했다.


자유롭던 나는 회사생활을 하며, 평범한 회사원들 속에서 평범한 회사원으로 변했다. 개인에게 환경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지금에야 과거를, 지금의 나를 뒤돌아보며 새삼 깨닫는다. 신입 때 저 뒷자리에 앉아있던 나이 많은 선배는 이제 내가 되었다. 회사에서 회식을 하고, 끼리끼리 2차로 회식을 갈라지면, 술 취한 부장은 집에 안 갔다. 저 부장은 눈치 없이 왜 저러나 했는데, 지금은 이해가 가네. 나이 먹은 부장도 마음만은 아직도 이팔청춘인 거다. 얘들아, 나도 너희랑 비슷하단다, 회사에서나 부장이지, 마음의 수준은 너희들이랑 똑같아. 하하. 부장만 모른다. 나이가 들면 슬프지만, 눈치 있게, 빠져줘야 한다.


맨날 혼나는 신입들과 달리, 대부분의 과장 차장 시니어급들은 자신들이 일을 잘 한다고 생각 혹은 착각한다. 나를 포함한 대부분의 동료들은 모두 그렇게 생각하는 듯하다. 인사고과 시즌은 항상 치열하다. 그러다가, 회사에서 일만 열심히 하면 일만 더 많이 하게 된다는 사실을 깨닫는 순간, 회사에서의 정치는 수준 높은 그 어떤 것도 아님을 깨닫게 되는 순간, 나를 끌어줄 사람은 나 밖에 없음을 깨닫는 순간, 회사에서의 내 미래가 보이기 시작하는 순간, 회사원들은 선택의 기로에 놓이게 된다. 지금까지 회사생활 딱 반절 한 것 같은데, 지금부터 이 이후의 회사생활을, 내 삶을, 내 미래를 어떻게 가져갈 것인지 개인의 가치관에 따라 선택하고 결정한다. 게으르거나 무디면 별 다른 생각없이 그냥 지나치기도 한다. 나는 이 시기가 30대 후반에 왔다.


이러니 마흔을 불혹의 나이라고 하는 건가 싶기도 하다.


‘불혹의 중년’이란 바깥 사물에 미혹되지 않는 다는 뜻으로, 그 전까지는 뭔가를 판단할 때 옳은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고 줏대없이 왔다 갔다거리다가, 나이가 마흔 살을 넘게 되면 그런 판단을 흔들림 없이 할 수 있게 된다는 의미라고 한다.


이래서 그렇구나. 사람들은 나이가 들면서 자기 주장이 강해진다. 내 말이 옳고 정답이고, 내가 틀렸음을 알아챘음에도 틀렸음을 바로잡기 힘들어진다. 불혹의 나이가 되면, 본인 인생에서 무엇이 중요한지 선명해진다. 굳이 남을 신경 쓸 필요가 없어지고, 고집이 세지고 내 방식대로 살아간다.


나도 나이가 들수록 세상이 덜 불안해지고, 두려움, 수줍음이 많이 사라졌다. 사회생활에서 누적된 자신감과 깨달음의 영향이겠지. 그런데 그만큼 나의 태도가, 나의 성격이 ‘버스에서 무조건 뛰어가서 앉는 아주머니’처럼 변해 가고 있음에 창피하고 무섭기도 하다.


아이를 낳아 키우는 것 또한 어른이 되는 과정이라고 한다. 아이를 낳아 봐야, 부모가 되어 봐야, 진정 어른이 된다고 누가 말했는가? 육아의 육체적, 정신적 힘듦 속에서도 많은 사람들이 아이를 낳고 키우는 것은 그 만큼의 아름다운 대가가 있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육아를 하며 내 힘으로, 내 뜻대로, 통제할 수 없는 세상이 또 하나 있음을 깨닫는다. 세상에 내가 통제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예외없이 다양한 인생의 길에서, 그 과정에서 오는 다양한 깨달음과 그에 따른 자아 성찰, 노력과 변화가 없다면 인격적 성숙은 항상 제자리 걸음일 것이다. 인생은 배움의 연속, 매일이 학교 같구나.


‘눈 깜짝 하고 보니 여기 서있다’ 라는 말이 피부로 와 닿는 나이가 시작되었다. 누가 뭐라든, 나의 젊음은 평생 내 것인 냥 흥청망청 젊음을 낭비하다가, 하나씩 올라오는 흰 머리를 보며, 웃을 때 생기는 눈 옆 주름을 보며, 잘못 자면 생기는 입가 주름이 몇 시간씩 지속되는 나를 보며, 이제 나도 중년인가. 거울 보기 싫어 질 때도 있지만, 아직은, 아직까지의 나는 젊은 것 같다.


시간이 흘러, 정말 더 이상의 ‘젊음’이 사라지고, 세월의 흔적이 얼굴에 보이기 시작하는 나이가 되면 그 때 기분은 어떨까? 지금 잠깐 생각해 봤는데 공포스럽다고 해야 할까. 우울감이 밀려온다. 나는 아직 갈 길이 멀고, 준비가 덜 된 듯하다.


나이가 드는 만큼 성숙해지고, 뿜어 나오는 향기가 매력적이었으면 좋겠다. 나이가 들어, 세상을 바라보는 내가 여유로워질 수 있을 만큼의 내공을 쌓으려면 지금의 시간을 헛되이 보내지 않도록 의식적으로 노력하며 하루하루 잘 살아야 할 것 같다.


나이가 들어도 매력적인 인간으로 남도록.


쉽지 않다.

세상에 쉬운 건 별로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