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 다큐 <지구상의 위대한 국립공원>을 보고
내가 국민학교에 다니던 시절 우리 집에는 티비가 딱 한 대뿐이었다. 스마트폰은커녕 집에 컴퓨터도 없던 시절이라 오락거리라고는 티비가 유일했다. 다시 보기라는 단어조차 없었으니, 좋아하는 프로그램이 언제 하는지를 잘 기억하고 있다가 잊지 않고 챙겨보는 일은 당시 국민학생의 중요한 일과였다. 문제는 라이벌이 존재할 때였는데 같은 시간에 다른 채널을 보고 싶어 하는 식구가 있으면 싸워 이겨야만 원하는 채널을 시청할 수 있었다. 채널을 선택할 수 있는 권한은 집안 내 권력서열 그대로였기에 그나마 경쟁해 볼 상대는 오빠나 남동생에 불과했고 엄한 아버지는 감히 겨룰 수 없는 존재였다.
아버지가 리모컨을 쥐고 티비를 시청하고 계시면 눈치를 살피며 다른 것을 보고 싶다고 어필해 보거나, 보시는 프로그램이 얼른 마치기를 기다려야 했는데 그렇게 기다리는 시간은 정말이지 고역이었다. 그중에서도 유년기 내 마음을 갑갑하게 만들었던 아버지의 최애 프로그램이 바로 ‘동물의 왕국’이었다. 풀 밭의 사자를, 도망치는 사슴을, 재빠른 표범을, 아버지는 참 재미있게도 보셨다. 내 눈에는 하나도 재미가 없는데 우리 아버지는 왜 저런 걸 보실까 속으로 씩씩대며 어서 프로그램이 끝나기만을 기다렸는데 다행히도 방송 시간이 길지는 않았던 것 같다. 나중에 알게 된 것은 친구들의 아버지들도 동물의 왕국을 즐겨본다는 사실이었다.
남편이 언제부턴가 눈을 반짝여가며 동물의 왕국류의 프로그램을 본다. 중년 남성들의 마음을 훔칠만한 구석이 있는 건가 짐작만 할 뿐 여전히 내게는 관심의 대상이 아니었다. 그저 어렸을 적 아버지가 생각났다. 비스듬히 기대앉아서 골똘히 화면을 응시하던 중년의 아버지가. 남편에게 아버지 이야길 하면서 자기도 아저씨 다 됐구나 놀려먹었던 게 벌써 몇 년 전이다.
며칠 전 넷플릭스에서 볼거리를 찾다가 <지구상의 위대한 국립공원>이라는 다큐멘터리를 발견했다. 이 프로그램을 시청하게 된 데에 아버지와 남편의 영향이 없다고는 할 수 없을 것이다. 나는 아직 발견 못한 동물 다큐의 매력을 알아내고 싶은 마음이 있었으리라. 내레이션은 무려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이었다. 지구별을 나눠 쓰는 동물들과 식물들을 위해 각국이 국립공원이라는 형태로 그들을 보호하고 있었다. 결국 주제는 지구를, 자연을, 동물을 지켜내자는 메시지였다.
자연 풍광이 주는 경이로움은 말할 것도 없이 그 속에 살고 있는 갖가지 동물들의 사연이 기가 막혔다. 낮동안은 담수호에서 빛을 피하다가 해 질 무렵 바다로 나가 서핑을 즐기는 하마(즐긴다는 표현 말고는 대체불가다), 삶의 터전을 찾아 목숨을 건 점프를 반복하며 뾰족한 협곡을 건너는 영장목의 폰데어데켄시파카 무리(등에 새끼를 업고 뛰는 어미의 점프샷은 장엄하기까지 하다), 산란을 위해 바다에서 강을 향해 긴 이동을 하는 숭어 떼와 그 숭어 떼를 기다려 사냥을 나온 악어 떼(바다 악어가 순식간에 숭어를 입안으로 낚아채는 모습에는 잔인함을 넘어서는 뭔가가 있다) 등등.
모조리 눈 뗄 수 없이 흥미로웠다. 자연은 말없이 아름다웠고 그 안에서 동물들도 우리 인간들처럼 치열한 삶을 살아내고 있었다. 먹고사는 일, 가족을 돌보는 일, 죽음의 위험에 맞서는 일은 인간만의 사정이 아니었다. 제 몸뚱이 하나만 짊어지고 단출하게 살아가는 삶이 일면 부럽기도 했지만 콘크리트로 지은 단단한 집도, 세간살이도 없는 그들에게 삶과 죽음은 한 끗 차이였다.
이거였구나.
어린 내가 진득하게 앉아서 화면에 집중했다 한들 전혀 낚아 올릴 수 없었을 감상을 이제는 남길 수 있다. 지구라는 별 안에서 함께 살아가는 존재로서의 연대감을, 어느 종에게나 분명하게 존재하는 삶의 치열함과 비애를 비로소 보았다고. 하지만 이렇게 추상적이고도 감정 다분한 감상을 차마 아버지와 나눌 수는 없을 것 같다. 어쩐지 뒷목이 간지럽다. 손발이 오그라드는 것 같기도 하다. 그저 나도 이제 가끔 동물 다큐를 챙겨본다고, 생각보다 볼 만하더라고 한마디 건넬 수 있으려나. 성격도 식성도 아버지를 닮았다는 소리를 들으며 자랐다. 그럴 때마다 나는 뚱했고 아버지는 웃으셨다. 여전히 살가운 딸은 못되지만 나이를 먹어가며 더 알 것 같은 아버지의 세계를 향해서 나는 점점 다정한 마음이 된다. (202310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