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더 웨일(The Whale)' 감상 후기
*주의: 스포일러가 가득 포함되어 있습니다. 글도 꽤나 깁니다.
주인공 찰리는 '초'고도비만으로 보조 기구의 도움 없이는 한 발짝도 움직일 수가 없다. 그의 거대한 몸을 보면 관객 누구라도 영화의 제목이 어째서 '고래'인지 쉽게 알아챌 것이다. 집안에 갇혀 고립된 삶을 살면서 온라인으로 글쓰기 수업을 진행하고 있지만, 수강생 중 누구도 그의 모습을 모른다. 카메라 고장을 핑계로 화면을 꺼두었기 때문이고, 꺼두어서 아무 빛도 들지 않는 새까만 화면 너머에서 다만 목소리로 수업을 이어갈 뿐이다. 와이파이만 있으면 연결 가능한 온라인 세상에서조차 그는 온전히 연결되지 못한다. 하지만 그는 (글쓰기 수업을 수년간 지속해 온 것을 볼 때) 능력 있는 강사이며 창틀에 새들의 먹이를 챙겨둘 만큼 다정하고, 거의 항상 긍정적이고 유쾌하다.
영화는 그가 죽음을 맞이하기까지의 5일간(월~금)을 다룬다. 연극이 원작인 작품답게 찰리의 집을 무대로 여러 등장인물이 교차하여 방문하는 방식이다. 복음을 전할 목적으로 찾아온 '새생명 선교회(영화 속에서 이단으로 묘사되는)'의 청년 토마스가 첫 번째 방문자다. 가슴을 움켜쥔 채 고통스러워하는 찰리가 다짜고짜 읽어달라고 내민 것은 소설 <모비 딕>에 관해서 쓴 에세이 한 편. 당장이라도 숨이 넘어갈 듯한 고통 속에서 에세이를 소리 내 읽어달라니 영문을 모르겠는 건 토마스나 관객이나 마찬가지다.
238/134의 혈압에, 유일한 친구이자 간호사인 리즈가 아무리 애원해도 찰리는 비용을 핑계로 병원에 가지 않고 버틴다. 울혈성 심부전이 놓아준 죽음의 다리 앞에서 그는, 이혼과 함께 헤어진 딸에게 연락을 하고 샤워와 면도로 몸을 단장한다. 8년 만에 마주한 딸은 10대라서 그런가 하기에도 너무하다 싶을만치 뾰족하고 까칠하다. 학교 생활도 순탄치 않아 보인다. 막말과 분노를 뿜어내는 딸 엘리를 가까이 두기 위해 찰리는 거금을 주겠다고, 게다가 (낙제하지 않도록) 에세이 쓰는 것을 돕겠다고 약속한다.
어쩐지 너무 저자세다 싶었는데 기구한 사정이 있었으니 딸과 부인을 둔 평범한 남자였던 찰리가 수강생 중 하나와 사랑에 빠져버렸고 그는 심지어 남자였다. 그러니까 딸의 입장에서 보자면 찰리는 사랑에 빠져서(그것도 남자와!) 처자식을 버린 데다가 8살 때 헤어진 이후로 한 번도 찾아오지 않은 매정한 '쓰레기'. 하지만 오해가 있었다. 찰리가 딸을 만나지 않은, 아니 '못한' 것은 전적으로 전처(엘리의 엄마)의 요구 때문이었고 그간 돈을 버는 족족 (자신을 위해서는 병원비조차 쓰지 않고) 엘리 이름으로 만든 계좌에 모아 왔으니 비록 사랑 때문에 가정을 포기했을지언정 비정한 아버지는 아니었던 셈이다.
-엘리: 진작 내 인생에 있어줄 수 있었잖아.
-찰리: 엘리, 나를 봐. (등진 엘리를 자기 쪽으로 돌아 앉히며) 누가 날 자기 인생에 끼워주고 싶겠니?
마침내 이런 대화가 오가고 엘리가 직접 샌드위치를 만들어주는 장면에서 극적 화해를 이루는가 싶었지만 (위에 언급한 오해는 아직 풀리지 않은 시점이라) 딸의 애증은 뿌리가 깊은 것이었다. 수면제를 갈아 넣은 샌드위치 탓에 찰리의 병세는 더욱 악화된다.
이쯤 되었을 때 나는 이 영화가 아버지와 딸의 화해라는 다소 뻔한 서사를 차근차근 밟아나가는 중이라고 생각했다. 다만, 마음에 걸리는 것은 자꾸 등장하는 선교 청년 토마스의 입에서 반복적으로 나오는 '구원'이라는 단어였다. 그는 죽어가는 찰리에게 손을 내밀어 구원(=영적인 인도)을 하려 애쓴다. 그러나 토마스를 제외한 그 누구도 신의 구원에 관심이 없다.
영적인 구원에 거부 반응을 보이는 데는 이유가 있었다. 영화의 중반에서야 밝혀지는 것은 찰리의 연인이었던 앨런의 사연이다. 그의 집안사람들은 '새생명 선교회'의 열혈 교인이었고 금지된 사랑을 선택한 앨런은 교회와 가족으로부터 한순간에 방출되었다. 종교에 대한 마음 또한 진심이었기에 괴로움 속에서 거식증을 앓아오다가 몇 년 전 강물에 빠진 사체로 발견되었다. 음식을 거부하며 죽어간 연인의 사정은 찰리를 거대하게 만들어버린 폭식증과도 무관하지 않다.
입으로 구원을 이야기하는 사람은 토마스 한 명뿐이지만 이 영화의 등장인물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서로를 구원하는 듯 보인다. 구원이 꼭 영생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면. 토마스는 가족에 의해 강제로 보내진 선교회에서 선교 방식을 두고 싸우다가 돈을 훔쳐 도망 나온 신세였다. 훔친 돈이었지만 용도는 고결했으니 자신의 믿음으로 한 명이라도 구원하겠다는 것. 가족과 선교회 어디로도 돌아가지 못하고 구원에 목을 맸던 이유다. 그의 사연을 엘리가 녹음하게 됐고 (아마도 엘리가 녹음본을 가족과 교회를 찾아내 전달함으로써) 토마스는 용서를 받고 다시 가족의 품으로 돌아갈 수 있게 되었다. 엘리가 토마스를 구원한 것이다.
매일 와서 찰리를 보살피는 리즈는(앨런의 여동생이기도 하다) 병원에도 가지 않고 폭식습관도 고치지 않는 찰리가 미울 만도 한데 오빠의 연인이었던 찰리를 위해 모든 것을 해준다. 건강 상태를 체크하고 의료 장비를 구해오고 먹을 것을 사다 준다. (미트볼 샌드위치에 치즈까지 추가해서.) 긴 시간 자신을 속였다는 사실에 분개해 울며 뛰쳐나갔다가도 다음날 다시 찾아와 그의 마지막을 지켜준다. '사람이 사람을 구원할 수 없다'는 대사는 리즈의 입에서 나오지만 정작 그는 한 존재를 온전하게 수용하는 방식으로 구원을 실천한다.
주인공인 찰리가 행하는 구원의 대상은 당연히? 딸 엘리이다. 전부인이 등장하며 영화는 절정으로 치닫는다. 남자랑 바람난 남편 때문에 겪어야 했던 고통을 술과 수면제로 버텨낸 전처는 세상 고단한 얼굴이다. 혼자 애쓰며 딸을 키웠지만 딸은 날로 망가져 가고 엄마로서의 역할을 다하지 못했다는 전남편의 원망을 받게 될까 봐, 전남편과 딸의 만남을 막아왔다. 'evil(사악한)'이라는 단어를 동원해 딸을 설명하는 전처 앞에서 찰리는 엘리가 얼마나 특별하고도 완벽한 존재인지를 이야기하지만 전처에게는 가닿지 않는 분위기다.
애가 온전한 삶을 살게 될지 알아야겠어.
사랑하고 사랑받는 삶을 살았으면 하는 거야.
애가 괜찮을지 내가 알아야겠어.
걔에겐 우리뿐이야.
내 인생에서 잘한 일이 하나라도 있단 걸 알아야겠어!
찰리의 울부짖음에도 끝내 전처는 확답하지 않지만 아마도 딸의 인생을 구원하고자 하는 찰리의 진심은 전해졌을 것이다.
흥미로운 사실은 정작 구원 타령을 한 토마스는 구원에 실패했다는 것이다. 토마스는 찰리에게 치명적인 상처만을 주었다. 그가 구원에 끝내 실패했던 이유는 '초고도비만의 고립된 동성애자'(토마스의 시선)인 찰리에 대한 속마음이 드러나는 장면에서 짐작해 볼 수 있다. 손쉬운 편견과 날 선 판단을 움켜쥐고 있는 자는 절대 타인을 구원할 수 없다. 잔뜩 움켜쥔 손으로는 무엇도 붙잡을 수 없으니까.
영화의 막바지, 한 사건(스포 다해놓고 이제 와서 생략?)이 계기가 되어 찰리는 폭주한다. 이성을 잃은 그는 온라인 수강생들을 향해 막말에 가까운 메시지를 전송해 버리고 구역질이 나올 때까지 폭식을 멈추지 않는다. 존재(존엄)를 향한 위협에 맞서 자신을 지켜 줄 안전한 무기라도 되는 것처럼 몸 안에 음식을 욱여넣는다.
마침내 5일째인 금요일. 찰리는 메시지 사건으로 온라인 강의를 그만두게 되고 수강생들을 향해 마지막 가르침-제발 솔직하게 써라-을 전한다. 그리고는, 자신이 그토록 떠들어댄 '진솔한'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처음으로 노트북과 카메라를 연결해 수강생 앞에 제 모습을 드러내 보인다. 나는 이것이 그가 스스로에게 행한 구원이라고 생각한다. 사람이 사람을 구원하려면 무조건적 수용이 필요하듯, 자신을 구원하는 첫걸음은 스스로의 한계를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일일 테니까.
찰리는 사랑하는 연인 앨런을 구원하려고 했었다. 자신이 사랑해주기만 하면 그를 구할 수 있다고 생각했지만 그러지 못했다. "누가 누굴 구원하는 건 불가능한 일이야."라고 말하는 리즈에게 찰리는 섬망에 든 사람처럼 말간 얼굴로, 엘리가 토마스를 구원했다는 사실을 기쁘게 말한다. 사람은 타인에게 무관심할 수가 없다고. 사람은 놀라운 존재라고.
죽어가는 찰리의 눈앞에 엘리가 나타난다. 따지러 온 것이었다. 찰리가 대신 써준 에세이를 제출했다가 낙제점을 받고는 힘껏 성질을 부리기 위해서. 마지막에서야 밝혀지는 사실은 영화 초반 토마스와 관객을 동시에 어리둥절하게 만들었던 에세이는 엘리가 몇 년 전 쓴 것이었고 열어보지도 않고 파일째 제출한 에세이가 실은 자신이 쓴 것이었음을 알게 된 엘리의 눈동자가 세차게 흔들린다. 나를 지켜보고 있었구나, 나는 버려지지 않았구나 하는 안심. 얼어버린 마음을 녹이는 데 이것만큼 특효가 있을까. 엘리의 안부를 대신해 엄마가 전한 자신의 에세이를 아버지가 달달 외울 만큼 반복해 읽었을 뿐만 아니라 죽어가는 순간에조차 듣고 싶어 한다는 사실은 엘리를 구원할 것이다.
찰리는 울며 사과한다. 너를 떠나서 미안하다고. 사랑에 빠져서 너를 떠났다고. 내가 그러면 안 되는 건데. 너는 훌륭한 아이고, 에세이도 훌륭하고, 그 에세이가 너고, 너는 내 인생 최고의 작품이라고. 완벽하고 행복할 거고, 너는 사람들을 아낀다고. 초반에 나온 장면이 한번 더 반복된다. 가슴을 움켜쥐며 고통스러워하는 찰리를 배경으로 모비 딕을 주제로 한 에세이가 낭독된다. 이번에는 작성자인 엘리의 목소리다.
허먼 멜빌이 쓴 걸작 '모비 딕'은 저자의 경험을 바탕으로 한 것이다. 책의 초반부엔 작중 화자인 이스마엘이 작은 어촌에서 퀴퀘크라는 남자와 한 침대에 누워있다. 이스마엘과 퀴퀘크는 교회에 갔다가 배를 타고 출항하는데 선장은 해적인 에이해브다. 그는 다리 하나가 없고 어떤 고래에게 앙심을 품고 있다. 고래의 이름은 모비딕. 백고래다. 내용이 전개되면서 애이해브는 많은 난관에 직면한다. 그는 평생을 그 고래를 죽이는 데 바친다. 안타까운 일이다. 고래는 감정이 없기 때문이다. 자길 죽이려는 애이해브의 집착도 모른다. 그저 불쌍하고 큰 짐승일 뿐. 애이해브도 참 가엽다. 그 고래만 죽이면 삶이 나아지리라 믿지만 실상은 그에게 아무 도움이 안 될 테니까. 난 이 책이 너무 슬펐고 인물들에게 다양한 감정을 느꼈다. 고래 묘사만 잔뜩 있는 챕터들이 유독 슬펐다. 자신의 넋두리에 지친 독자들을 위한 배려인 걸 아니까. 이 책을 읽으며 내 삶을 생각하게 됐다. 그리고 다행이라는 생각을…(극 중 엘리의 에세이)
영특한 엘리는 아마도 알 것이다. 막말을 하고 화를 내고 수면제를 먹이고 새들의 먹이를 놓아둔 접시를 일부러 깨뜨린 자신에게 찰리가 쏟아부은 찬사가 진심이라는 사실을. 진솔한 자기 생각을 끄집어내 훌륭한 글을 쓸 수 있는 사람, 타인을 구원할 수 있는 사람, 찬란하게 빛나는 사람. 당신 인생 최고의 작품. 그 사이 관객은, 에세이에 등장한 고래로 인해 이 영화 제목을 다시금 궁리하게 된다.
이제 마지막 장면이다. (진짜 끝장을 보는 스포일러) 보조기구 없이는 한 발짝도 걷지 못하던 찰리가 일어서 엘리를 향해 힘겨운 걸음을 내딛는다. 엘리 역시 찰리를 향해 한 걸음 다가선다. 마침내 둘 사이의 거리가 아주 가까워진 그 순간, 마지막으로 세 식구가 함께했던 수년 전의 차갑고 행복한 바다, 고래가 마땅히 있어야 할 바로 그 바다, 그 행복했던 바다에 가닿으며 찰리는 구원받는다.
죽어가는 순간까지 타인을 구원하려 애씀으로써 진정한 구원에 이르는 것은 정작 자신이라는 은유일까. 왜 우리는 죽음 같은 극적인 순간을 앞두고서야 겨우 화해하고 용서하며 구원하는 것일까. 왜 무심한 고래를 향해 악을 쓰고 칼날을 벼르다가 허무하게 죽어버리고야 마는 것일까. 고래를 보느라 보지 못한 진짜 문제는 무엇일까.
슬픔일지 감격일지 모를 감정에 복받쳐 나는 엉엉 크게 울었다. 영화를 보고 이렇게 펑펑, 오래 울었던 적이 있었던가. 그래서 전에 없이 길게 후기를 써본다. '사람이 사람을 구원할 수 있을까'라는 이 글의 제목은 오래전부터 품고 있던 질문이었다. 사람은 타인을 구원할 수 없고 겨우 발버둥 쳐야 오직 스스로를 구원할 수 있을 뿐이라고 생각이 기울던 참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중하지도 않은 고래를 붙들고 씨름하느라 인생을 허비하고 스스로를 축내는 사이, 귀한 사람들이 맥없이 스러져 간다. 비극에 노출된 나와 너는 소리 내 울지도 못하고 버티느라 진땀만 빼고 있다. 그래도, 어쩌면 너나없이 약해서 사람은 서로를 구할 수도 있지 않을까. 복잡하고도 아름다운, '놀라운' 존재라서. 각자도생의 대한민국에서도 사람이 희망인 이유다.(20230811)
*사족: 혹시 영화를 안 보고 이 글을 읽으셨다고 해도, 내용을 속속들이 알아버리셨다고 해도, 배우들의 연기가 워낙 훌륭하니 영화를 꼭 보시며 즐기시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