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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기복 Oct 31. 2024

기막힌 타이밍 1

오해하지 마세요

엘리베이터를 기다린다. 커뮤니티 도서관에 책을 반납하기 위해서다. 바로 위층에 엘리베이터가 멈춰 있다가 내려오기 시작한다. ‘1층’이라고 안내음이 들리는 것을 보니 사람이 탄 것 같다. 나는 조금 긴장하는 마음이 된다. 이사 온 초기 층간 소음으로 쪽지를 한 번 써붙였고 그 후로 두세 번 경비실에 연락한 적이 있었다. 발망치로 인한 울림이 시도 때도 없어서 어지러울 지경이었다. 마지막으로 남편이 경비실에 전화를 걸었을 때는, 위층 남자가 집에 찾아왔다. 방문 목적은 항의라기보다는 하소연에 가까웠다.


우리도 정말 조심하고 있어요. 저희 아들이 고3인데 어쩌고 저쩌고, 실내화를 주문해서 신기려고 하는데 어쩌고 저쩌고.


까칠한 듯 보여도 실은 마음 약한 남편은 그 후로는 민원 전화를 걸지 않았다. 고3이라는데. 대한민국에서 고3은 신경 쓰이게 하면 안 되지. 암. 그때 말한 값나가는 실내화라도 신기 시작한 건지 소음이 참을만한 수준으로 줄어들었던 이유도 있다.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기 전, 나는 손에 들고 있던 책을 재빨리 겨드랑이 사이에 끼운다. 제목이 보이지 않게 하기 위함이다. 하필이면 반납하려고 들고 있던 책의 제목이 <매우 예민한 사람들을 위한 상담소>이기 때문에.


제목을 들키는 순간 우리의 정당했던 민원이 오염되어 버릴 것만 같다. 오해하지 마세요. 저 기복은 있어도 소리에 예민한 사람은 아니거든요 항변할 수도 없고.


문이 열린다. 부부로 보이는 남녀다. 사실 나는 위층 사람들의 얼굴도 잘 모른다. (찾아왔던 아저씨는 남편이 상대했고 나는 방에 있었다.) 괜히 어색한 공기가 흐른다. 기분 탓일 수도 있다. 책을 감싼 팔뚝에 힘이 들어간다. 꽤나 길었던 수초가 흐른 후 엘리베이터에서 내리며 나는 웃었다. 거, 타이밍 참… (20241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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