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옥'을 보고

(주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음)

by 박기복

괴물이라고 칭해도 무방한 비주얼을 가진 ‘사자’들이 나타난다. 먹잇감을 해치우듯 멀쩡했던 한 인간을 파괴한 뒤에 기어이 잿더미로 만들어버리고는 어디론가 사라진다. 피해 당사자는 정확한 날짜와 시각이 담긴 지옥행 고지를 받고 그 고지는 이런 방식으로 반드시 실현된다. 이것이 이야기의 시작이자 ‘지옥’의 대전제이다.


새 진리회 의장인 정진수는 이를 신이 행하는 ‘시연’이라 부르며 인간이 이제라도 각성하여 악행을 멈추고 정의롭게 살아야 신의 분노를 멈출 수 있다고 복음을 전파해왔다. 대낮 서울 도심에 사자들이 나타나 많은 사람들 앞에서 시연을 행하고 경찰은 사자들이 만들어놓은 난장판을 헤집으며 ‘살인 사건’을 수사하기 시작한다.


신은 이미 오래전에 죽어버린 줄로만 알았는데 비로소 다시 신이 소환된다. 신의 시연을 목도한 많은 사람들이 무릎을 꿇고 그 존재를 받아들인다. 신의 단죄가 눈앞에서 이루어지는 세상에서 어쩐 일인지 사람들은 더 폭력적으로 변해간다. 버젓이 신이 존재하는 이 세계에서 감히 이성의 힘을 쓰는 사람들은 마녀사냥의 대상이 된다. 인간이 만들어놓은 규칙과 질서는 무용지물이고 남겨진 이곳이 바로 지옥이다.


끔찍한 범죄를 저질러 놓고도 심신 미약을 방패 삼아 정신 병원에서 몇 년 요양이나 하다가 출소하는 광경을 보아온 이들에게 잔혹한 신의 심판은 일면 속 시원하다. 단죄는 신이 행하는 것이기에 완전무결하고 괴물들에게 파괴당하는 피해자들에 대한 연민은 끼어들 틈이 없다. 지옥행 티켓을 받은 이들의 ‘죄’에만 대중의 관심이 쏟아질 뿐이다.


반전은 새 진리회 초대 의장인 정진수가 이미 20년 전에 고지를 받았다는 사실이다. 지옥에 갈만한 잘못을 저지르기는커녕 고아원에 자신을 맡긴 엄마를 기다리며 착하게 살아온 그는, 끈질긴 조사 끝에 죄와 지옥행 고지는 무관하다는 결론을 얻었다. 하지만 신의 심판을 두려워하는 착한 인간들의 세상을 만들겠다는 ‘자신의 의도’를 실현하기 위해 고지에 ‘신의 의도’를 갖다 붙였고, 결국 그는 현존하는 지옥을 남기고 시연으로 사망한다.

4년이 흐른 뒤가 2부의 시작이다. 새 진리회가 세상을 장악했고 화살촉이라 불리는 과격파들이 자경단이 되어 마녀사냥을 일상화한다. 고지를 받은 ‘죄인’들뿐만 아니라 그 가족들의 삶이 파괴된다. 죄를 저지르고 지옥행을 약속받은 이들에게 용서나 자비는 허락되지 않는다. 마침내 신생아에게 고지가 이루어졌다는 사실이 세상에 드러나고 고지와 죄의 연결점이 끊어지고 나서야 지옥은 출구를 보이기 시작한다.


세상은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인식하는 것이다. 신이라는 전지전능한 존재를 설정하고 선행을 부추기면서 세상은 유지되어 왔다. 역사적으로 그렇다. 신과 소통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자가 제사를 주관했고 권력을 잡았다. 신의 의도를 해석할 수 있는 능력은 많은 이들을 복종하게 만들었다. 신의 이름으로 행해지는 모든 일들은 정당했고 신의 이름 아래 누군가는 착취하고 대상들은 착취당했다. 과학이 발전하고 신의 뜻으로 해석했던 많은 현상들을 설명할 수 있게 된 다음에야 신의 영역은 축소되었다.


드라마 시청 초반에 나의 관심은 괴물들에 붙들려 있었다. 괴물들을 정진수와 분리하지 못했다. 분명히 반전을 가진 인물일 텐데 저 인간의 거짓이 무엇일까 내내 궁리했다. 저 괴물들 또한 진짜일 리가 없는데 어떻게 동원한 것일까. 그런데 결국 둘은 전혀 상관이 없었다. 거기에서 느낀 당황스러움이 나에게 이 글을 쓰게 만들었다. 현상은 벌어진다. 사람이 해석한다. 현상과 해석 사이에는 아무 상관이 없다. 다만 해석을 선점하는 자가 권력을 잡을 뿐이다. 어쩌면 세상이 쭉 이렇게 돌아가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처음에는 CG를 동원해야만 구현 가능한 괴물들이 왜 필요했을까 의문스러웠다. 시청 내내 괴물들의 존재에 담긴 비밀을 궁금해했다. 집단 최면일까 아니면 참신한 신기술을 끌어들여 설명하려나. 하지만 고지와 시연이라는 현상을 합리적으로 설명할 수 있다면 애초에 신이 끼어들 자리가 없었을 것이다. 결말에 이르기까지 괴물들의 존재에 관해서는 설명이 없지만 내용을 따라가다 보니 물어볼 마음이 사라진다. 모든 현상을 설명할 수는 없다. 과학이 심어준 만용이 세상 모든 일에 원리가 있을 거라 착각하게 만들지만 알고 보면 아직도 설명하지 못하는 일이 얼마나 많은가. 많은 일들이 그냥 벌어진다. 수용과 해석만이 사람의 영역이다.


나에게 벌어진 모든 일에 의미를 부여하려는 노력을 하며 살아왔다. 무의미한 일들을 견뎌내기 힘들었다. 그게 내 불행의 입구이자 출구가 아닐지 낭패감과 기대가 동시에 밀려온다. 일단 밀란 쿤데라의 ‘무의미의 축제’를 다시 읽어봐야겠다. 잘 넘어가지 않아서 읽는 둥 마는 둥 해치운 책이었는데 삶이 결국 무의미의 축제 같은 것이라는 내용이 담겨있길 바란다. 아님 말고. (2021.1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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