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님도 아재 개그를 좋아하는 걸까.
어려서부터 드라마를 참 많이도 봤다. 드라마 대사로 어휘력을 쌓았다 할 만큼 일상적이었고 어떤 드라마는 꿈에 나올 정도로 나를 홀렸다. '최애 드라마'를 주제로 글을 쓰려니 너무 많은 드라마가 한꺼번에 떠올라 우열을 가리기가 어렵다. 지상파 방송국들이 전성기를 누리던 시절 연기대상 수상작을 고르는 심사위원이라도 된 마냥 고민을 하고서 글을 쓴다.
고민의 결과 선택된 작품은 두구두구두구… tvn의 '비밀의 숲(시즌1)'이다. 감정을 느끼지 못하는 외톨이 검사 황시목이, 정의롭고 따뜻한 형사 한여진과 함께 검찰 스폰서 살인사건과 그 이면에 숨겨진 진실을 파헤치는 내부 비밀 추적극이라는 게 제작사의 설명이다. 큰 줄거리는 1회에서 그려진 살인 사건의 범인을 찾아가는 여정이다. 시청을 하는 동안 누가 범인일까 내내 궁리하는 재미가 있다. A인가 보다 싶으면 아니고 B일까 싶다가 또 아니고 C네 C야 하고 나면 C가 시체로 발견된다. 뭐 이런 식이다. 한마디로 시청자를 옴짝달싹 못하게 하고 팽팽하게 눈길을 끌어당긴다.
비밀의 숲은 시즌1의 인기에 힘입어 시즌2까지 방영되었고 팬들은 당연히 시즌3도 나오려니 기대 중이다. 드라마의 인기에는 탄탄한 구성뿐 아니라 배우들의 연기도 큰 몫을 차지하는데 특히 대립각을 세우는 조승우와 류재명의 연기가 볼만하다. 인물들이 저마다 어딘가에 실제로 존재할 것 같은 생명력을 지니고 있는데 그건 분명 캐릭터를 잘 구현하는 대사와 행동 묘사 덕분일 것이다. 작가의 데뷔작이라고 하던데 역량이 대단하다.
내가 이 드라마를 최애 드라마로 끝내 선정할 수밖에 없었던 것은 이미 반복 시청으로 충성심을 인증해버렸기 때문이다. 마치 음악을 틀어두듯 나는 넷플릭스 어플을 열고 비밀의 숲을 틀어둔다. 시즌1을 한 바퀴 돌리면 시즌2로. 그리고 다시 시즌1로. 물론 일 년 내내 그리하는 것은 아니다. 내가 음악이나 유튜브를 제쳐 두고 비밀의 숲을 재생시키는 순간은 뭔가 단단한 것을 붙잡고 싶은 마음이 들 때다. 그러니까 나 자신이 갈대처럼 흔들리고 있다거나 이유를 알 수 없게 불안한 마음이 든다거나 세상이, 사람이 믿을 수 없어질 때 나는 비밀의 숲을 틀고 주인공 황시목을 만난다. 그러면 뭔가 안심이다.
"사고라는 게 원래 1분 1초마다 매번 계속 발생하지 않습니다. 문제없다고 괜찮다고 원칙을 무시하다가 어느 날 배가 가라앉고 건물이 무너지는 겁니다."
"왜 보고만 있었습니까! 왜 싸우지 않으셨습니까? 왜 그 긴 시간을 그냥 숨어만 있었습니까? 법을 무기로 싸우라면서요. 정작 본인은 뭐 하고 있었습니까! 그게 가족을 위해서였습니까? 본인이 두려우셨던 게 아니라!"
"그는 사람을 죽였습니다. 본인은 대를 위해 소를 희생한다고 생각했겠지만 전 세상에 더 큰 목숨, 저 작은 목숨은 본 적이 없습니다. 죄인을 단죄할 권리가 본인 손에 있다고 착각한 시대가 만든 괴물입니다.
어떤 경찰분께서 제게 이런 말을 했습니다. '되니까 하는 거라고. 눈 감아주고 침묵하니까, 부정을 저지르는 거라고. 누구 하나만 제대로 부릅뜨고 짖어대면 바꿀 수 있다고'요."
"우리 검찰은 그릇된 것을 바로잡는 사정기관으로서 실패했습니다. 우리는 무죄추정의 원칙을 부와 권력에 맞춰서 적용했습니다. 그리고 시민이 아닌 범죄자를 비호했습니다. 검찰의 가장 본질적 임무에 실패한 것입니다. (중략)
그렇지만, 아직 기회는 있다고 생각합니다. '법 집행관에게 가장 강력한 무기는 헌법이다.' 이렇게 말씀하신 분이 있습니다. 헌법이 있는 한, 우린 싸울 수 있습니다. 우리 검찰, 더 이상 부정한 권력에 휘둘리지 않고 다시 한번 싸우겠습니다. 기소권을 더 적확한 곳에만 쓰겠습니다. 검찰의 진정한 임명권자는 국민이라는 사실을 명심하고, 헌신하겠습니다. 책임지겠습니다. 더욱 공정할 것이며, 더욱 정직할 것입니다. 더 이상 우리 안에서 이런 괴물이 나오지 않도록, 우리 검찰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검찰의 수사권과 기소권을 분리하는 문제를 두고 날 선 대립이 이어지고 있다. 황시목이라면 지금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현실보다 더 현실 같은 허구의 이야기 속에서, 오락적 서스펜스를 뛰어넘어, 결국엔 오늘의 대한민국에 대해 생각하게 만드는 게 비밀의 숲의 비밀스러운 힘이다. (20220421)
#황시목의 명대사는 나무위키의 도움을 받았다.
#제목의 아재 개그는 순수한 나의 창작물임을 밝힌다. 진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