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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깅이 Jan 13. 2017

(3) 젊은 리더들을 위하여

소프트웨어 개발/ 좋은 리더 되기 


마지막 회다. 앞서 두 편에서는 "문제 해결" 을 위한 접근 방법을 소개 했고, 여기서는 소프트웨어 개발팀 리더로서 그 동안 내가 느껴온 점을 남겨두려고 한다. 


처음 "팀장" 이 되었을 때는 회사 전체에서 가장 나이 어린 팀장이 나였다. 그래서 "막내 팀장" 이라고 자칭 타칭 부르고 다닌 때가 있었다. 처음 맡은 팀은 나까지 4명이었다. 그렇게 몇 년이 지난 후에 여러 팀으로 구성된 30명이 넘는 제법 큰 소프트웨어 조직을 담당하게 되었었다. 팀장과 팀원은 사실 위/아래 관계가 아니다. 하는 역할이 다른 것이다. 팀원들이 이런저런 고민 없이 정말 "일" 에만 집중할 수 있도록 상황을 정리하여 최고의 효율을 이끌어내는 것. 그것이 내가 생각하는 리더의 역할이다. 


요즘은 미국식 소프트웨어 조직이 유행이다. "개발1팀" "개발2팀" 이런 식으로 작게 나누어서 계속 같이 가기 보다는, 프로젝트 별로 뭉쳤다 헤어지고, 소위 "수평적인 관계" 를 강조한다는 명목하에 "님" 자라고 호칭을 통일하는 등의 시도가 많아졌다. 사실 이런 조직이건, 저런 조직이건, 일장일단이 존재한다. 한국적인 "개발1팀" 방식은, 정이 깊은 방식이다. 보통 신입들은 자기 자신에 대해서 잘 깨닫지 못할 때가 많은데, 선임들이 이렇게도 일을 줘보고 저렇게도 일을 줘보면서, 그 친구가 자신의 특성을 스스로 이해하도록 보살펴 주는 장점이 있다. 또한 오래 같이 손발을 맞추기 때문에 개개인의 장점과 개성을 극대화시킬 수 있는 잠재력이 있다. 물론 위에 사람과 충돌이 생기면 직장 생활 자체가 불행해지는 단점이 있다. 미국식의 방식은 개인적으로는 말그대로 미국식이라고 느껴진다. 알아서 배우고, 알아서 쫓아오고, 못 하면 나가라... 같은 느낌? 현재 나이에 상관 없이 스스로 올드하다고 느끼는 나로선, 미국 사람들의 일반적인 성격에 맞춘 미국식 소프트웨어 조직이 과연 한국에도 그대로 잘 될까 싶은 반감이 있다. 우리의 문제점이 무엇이다라고 고민해서 조직 문화를 바꾸는 게 아니라, 그냥 저런 게 좋다더라며 가져오는 식은 공감이 되질 않는다. 가령, "수평적인 관계" 라는 것의 정의는 누구라도 좋은 아이디어를 거침없이 얘기할 수 있고, 아이디어만 보고 의사 결정을 내릴 수 있는 관계라고 할 수 있다. 이걸 이루어내기 위해서는, 닫힌 사고를 가진 중간 관리자를 모니터링하고 걸러내는 일을 해야하는 게 핵심이지 않을까... 중간 관리자를 조직에서 다 없애는 게 과연 답일까... 예의를 중시하는 한국적인 문화에서 "님" 이라고 호칭하는 것으로 수평적인 관계를 만들 수 있는 걸까... 머 이런 류의 고민들이다. 


잡설이 길었는데, 하여간 이 글에서 얘기하는 "리더" 는 전통적인 조직에서의 "리더" 였다는 걸 미리 밝힌다. 다른 조직에서는 다를 수도 있고, 또 개인의 성격에 따라 다를 수도 있는 것이니, 그냥 그런갑다 정도의 가벼운 마음으로 읽으셨으면 한다. 


꿈을 보여주는 리더가 되라


흔히 리더들을 분류할 때, 덕장, 용장, 지장 이라는 말들을 한다. 나도 한참 동안 어떤 리더를 추구해야 하는지 고민한 적이 있었다. 사실 난 "덕장" 이 되기에는 성격이 너무 예민하다. "용장" 이 되기에는 걱정이 너무 많다. "지장" 이 되기에는 나보다 똑똑한 애들이 너무 많았다. 그래서 나의 장점이 무엇인지 곰곰히 고민하기 시작했다. 고민 끝에 다다른 나의 장점은 순수하다는 것이었다. 돈, 권력, 명예 가 다 좋기는 한데, 그것들 보다 더 좋은 것은 좋은 제품을 만드는 성취감이다. (진심으로 그러하다.) 그래서 난 항상 "꿈" 이 있었다. 채널 변경 시간을 0.2 초 단축한다는 소박한 꿈부터, TV 에서 필요로 하는 기본 기능들이 막힘없이 돌아가는 좋은 제품을 만들고 싶다는 폭넓은 꿈까지.  


나는 나의 꿈들을 잘 정리해서 끊임 없이 팀원들과 공유를 했다. 몇 개월에 한번씩 전체 회의를 하면서 큰 꿈들을 공유하는 것도 있지만, 작은 일 하나하나에도 나의 꿈들을 공유했다. 모든 일에는 의미가 있다. 정말 의미가 없어 보이는 일이더라도, "이런 재미 없는 걸 빨리 끝내야 모두가 편해진다" 라는 의미가 있다. 그 의미를 살리는 것은 나의 꿈이 되고, 그 꿈을 일을 하는 친구들에게 공유를 했다. 


우리 팀원들은 B 형 남자들이 80% 였다. 우리 팀장님이라며 간지러운 얘기 따위 절대 하지 않는 과묵한 아이들이었다. 그런데 가끔 그들이, "니가 이게 정말 잘 되면 좋겠다고 간절히 바라는 것 같으니, 내가 오늘은 좀 열심히 해 주겠어" 같은 의리를 발휘할 때가 있었다. 나의 꿈을 얘기하는 것들이 얼마나 긍정적인 영향이 있었는지는 모를 일이나, 그 바위 같은 B 형 남자들이 의리를 발휘하곤 했던 걸 보면 아마 나쁘진 않았을 거라고 믿는다. ^^;



나를 연구해라


나의 성격, 나의 장점, 나의 단점, 이런 것들을 스스로가 연구를 해야 한다. 그렇게 해서 스스로에 대한 애정과 자신감이 있어야 한다. 자신감이 없는 리더들은 (꼭 리더가 아니더라도 일반적으로도), 인정 받기 위해서 몸부림을 친다. 스스로 자신을 인정하지 못했기 때문에, 나 말고 다른 사람이 나를 인정해 줘야 하는 심리라고 생각된다. 이러한 인위적인 노력은 결과적으로, 팀원들을 깍아내리는 데까지 이르는 경우가 많다. 내가 받아야 할 인정을 나의 팀원들이 받는 것을 용납할 수 없는 것이다. 자신감이 넘치는 진정한 리더는, 다른 사람들이 받는 박수가 나를 낮추는 게 아니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팀장은 팀원을 행복하게 해 줄 수 없다


그렇다... 팀장은 팀원을 행복하게 해 줄 수 없다. 다만, 불행하게 할 수 있을 뿐이다. 이 사실을 인정하는 것은 쉽지 않다. 인정하더라도, "타인의 삶을 행복하게 한다" 는 이 간지나는 욕심을 버리기 쉽지 않다. 하지만, 이건 분명히 인정하고 받아들여야 하는 부분이다. 행복하게 해 주는 게 불가능한 이유는 사람마다 행복을 언제 느끼는지가 다 다르기 때문이다. 물론, 가끔 행복하게 해 줄수는 있다.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여기서 "해 줄 수 없다" 고 단정적으로 얘기하는 이유는, 팀장이 "행복하게 해 줄게" 에 집착하면, 팀장 스스로가 너무 불행해 지기 때문이다. 가령 머 이런 식이다. "아 이 일은 너무 노가다야. 팀원이 하면 너무 재미없어 하겠지? 내가 대신해야 겠다" 라고 속으로 생각하고 열심히 노가다를 한다. 그러면 자연스럽게 보상심리가 생긴다. 대놓고 속물처럼 말은 못해도 슬슬 돌려서 인정받기 위한 얘기를 흘린다. "아 이거 노가다 하느라 힘들었어." 그리고 하면 안 되는 질문도 한다. "일하는 거 요즘 재밌냐?" (이 질문은 대개는 팀장이 "아 나는 팀원을 재밌게 해 주는 사람이야" 라는 자기 위안을 삼기 위한 심리에서 나온다. 진지한 면담을 하는 경우가 아니라면.)


행복하게 해 주려는 노력이 문제가 아니라, 행복하게 해 주었다는 걸 확인하고자 하는 보상심리에서 비롯된 어긋난 집착, 그리고 원하는대로 보상을 받지 못했을 때 느끼는 깊은 좌절. 이런 것들이 노력하는 젊은 팀장의 성장을 가로막는다. 


"행복" "재미" 같은 주관적인 단어는 팀장을 포함한 개개인이 자신의 인생을 살아가는데 목표로 삼아야 하는 마음가짐이다. 팀장이 팀을 위한 목표로 삼을 수준의 단어들이 아니다. 주관적일 수 있는 요소들을 목표에서 빼내는 것이, 팀장 자신을 위해서 좋다. (아! 물론 당신이 나처럼 "간지나는 삶" 을 좋아하는 감성적인 팀장이라면 말이다. ^^;)


나보다 똑똑한 팀원을 뽑아라


막 팀장이 된 젊은 리더들은, 모든 면에서 내가 팀원들보다 앞서 나가야 한다고 생각하고 스스로를 혹사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나 혼자 모든 것을 다 잘 할 수는 없기 때문에, 이러한 집착의 마지막은 나보다 모자란 사람들로 팀을 구성하는 것이다. (더 최악은, 멀쩡한 사람들의 단점을 끄집어 내서 "나보다 모자란 사람" 들로 만드는 것이다.)


팀이란, 부족한 인간들이 모여서, 서로의 장점을 끌어 모아, 나 혼자서는 할 수 없는 일을 해 내는 것이다. 개인은 부족하지만, 팀은 위대할 수 있다. 위대한 팀을 만들고 싶다면, 나보다 똑똑한 팀원을 뽑고, 그들의 손과 발이 되어 줄 수 있어야 한다. 간혹 그들이 "팀장이나 되는 나" 를 무시하듯이 쳐다본다고 느껴져도, 스스로에 대한 애정을 되새기며 이겨내야 한다. 사실, 대부분의 경우는 자격지심이다. 이런 면에서 예민하지 않은 성격이 좀 더 리더쉽을 가지기 쉽다고도 생각된다. 하지만, 성격은 바꿀 수 없다. 예민한 성격은 예민한 성격대로, 남들이 보지 못하는 디테일을 찾을 수 있는 엄청난 장점이 있다. 


쉬운 일이 아니다. 나보다 똑똑한 팀원들이 마음껏 날개를 펼치며 100%의 역량을 발휘할 수 있도록 길을 닦아 주는 것. 하지만, 이것이야 말로 리더의 역할 중 가장 핵심적인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생각을 말로 만들어 봐라


김춘추 시인의 꽃 이라는 시를 좋아한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이 시구에 대한 해석이야 서로 다를 수 있겠지만, 내가 이 문구를 좋아하는 이유는, 말로 표현할 수 있어야만 진정한 철학이 된다는 생각 때문이다. 


말로 표현된 철학은 스스로에게는 주문이 된다. 내가 젤 자주 외우던 주문 중에 하나는 "억울해 하지 말자" 였다. 억울하다는 생각만큼 스스로를 좀먹는 생각이 없다는 판단이 들어서 였다. 하지만, 예민한 사람들은 쉽사리 억울하다는 감정이 치솟는 걸 막을 수 없다. 이럴 때 내가 해야 할 일이 문장으로 만들어져 있으면 스스로에게 주문을 걸 수 있다. "억울해 하지 말자. 억울해 하지 말자..." 나는 부처가 될 수는 없지만, 그래도 어떻게 되어야 하는지 마음이 뒤늦게라도 따라갈 수 있게 머리가 조정은 할 수 있다. 


또한 말로 표현된 철학은 모두와 공유를 할 수 있다.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생각들을 오랫동안 고민해서 문장으로 만들어 내고, 그리고 그 문장을 통해서, 우리가 함께 이루고 싶은 비전을 공유하는 것. 이것 또한 리더가 해야 할 일 중에 하나라고 생각된다.


내가 공유했던 문장 중에 하나가, "나보다 월급을 많이 받는 팀원이 생겼으면 좋겠다" 였다. 사실 멋없는 문장이긴 한데... 이 문장 속에는, 팀장이 팀원보다 높은 사람이 아니며, 서로 하는 역할이 다른 것이고, 팀장도 팀장이라는 역할에 성격이 맞아서 그 일을 좋아해야 하는 것이고, 소프트웨어 개발 회사에서 진정한 핵심 역량은 팀장이 아니라, 특정 분야에서 탁월함을 갖춘 팀원의 존재로 결정난다... 라는 매우 복잡다단한 나의 철학을 그렇게 표현한 것이다. 내가 문학가는 아니라 멋진 문장들을 만들어내진 못했지만, 그래도 생각을 함축해서 표현하고자 한 노력들은, 나에게도 우리 팀에게도 중요했었다는 생각이 든다. 


말 한마디로 천냥 빚을 갚는다.


회사 다닌지 10년이 넘어서고, 팀장보다 한 단계 높은 그룹장이란 게 되었을 때, 내가 이해해야 했던 가장 큰 괴리감은, "사람들이 나를 정말 높은 사람으로 본다" 는 것이었다. 심지어 내가 말을 걸면 벌벌 손을 떨기도 했고, 술자리에 앉아서 대화를 해도, 나 혼자 떠들고 있을 때가 많았다. 사실 이런 게 처음에는 속상했다. 서로 편한 동료였으면 좋겠는데, 뭔가 외로움...같은 것들이 느껴졌었다. 내가 정말 좋아하던 우리 그룹의 한 팀장님이 "그룹장님, 그건 그룹장님이 받아들이셔야 해요" 라고 말해줘서 그 상황을 어쩔 수 없는 것으로 받아들이기로 했다. 


그러고 나서 보니, "말 한마디로 천냥 빚을 갚는다" 는 것이 정말 중요한 속담이라는 걸 깨달았다. 나를 그렇게 높은 사람으로 생각하는 어린 친구에게, 지나가다가, 내 딴에는 편한 척 농담을 던진다고 "실실 웃는 거 보니까 요즘 널널한가 보네?" 라고 말하고 훅 지나갔다고 치자. 그럼 그 어린 친구는 나와 또 언제 대화를 할지 모르는데, "내가 얼마나 고생하는지 몰라준다" 라거나 더 나아가면 "난 찍혔다" 라거나... 어떤 이상한 상상의 나래를 펼칠지 모를 일이다. 


자주 말할 기회가 없는 팀원과의 대화라거나, 혹은 연봉 협상 같은 민감한 때는, 나름대로 무슨 말을 할지 미리 고민하고는 했다. 연봉 협상할 때 고민하다가 생각해 낸 첫 문장이, "고생해서 일하는데, 내가 먼저 챙겨줬어야 했는데, 이렇게 나한테 얘기하게 해서 너무 미안하다" 였다. 한참 지난 후에, 그 말이 너무 고마워서, 연봉 협상은 잘 안 됐지만, 기분 좋게 일했다는 얘기를 들었었을 때, 뭔가 보람이 느껴졌었다. 



과정을 공유하라


Communication 은 너무나 중요하다. 보통 "일을 매우 잘 하는 팀원" 들은 Communication 이 많이 부족하다. 옆에 아이가 하고 있는데, 말도 안 하고 나도 같은 일을 해 놨다거나, 이슈가 보고가 되었는데, 진행을 못 하게 되었으면서 그냥 말 안 하고 있다거나... 등등. 내부로는 Communication 의 중요성을 계속 강조하고, 외부로는 팀원들이 놓친 Communication 을 지속적으로 대신해주는 일이 필요하다. 


프로젝트를 리드할 때 내가 가지는 꿈은, "최선을 다해서 일하고 있는데 욕 먹게 하지 말자" 였다. B2B 를 하는회사라 많은 "갑"들 (이하 파트너라고 표현하겠다. 난 "파트너" 라는 말을 좋아한다. 개발팀장으로서의 나는 우리회사가 돈 버는 게 목적이 아니라, 좋은 제품을 만드는 게 목표인데, 즉, 갑과 뜻이 같은데, 응당 파트너의 자격이 있는 거 아닌가 싶었더랬다. ^^;) 을 만났는데, 파트너분들은 불만이 늘 많았다. 일이 간혹 잘 안 되는 건 어쩔 수 없는 것이다. 하지만, 그런 상황에서도 파트너들을 만족시키기 위해서는, 적재적소에 한 발 앞서서 과정을 공유해야 한다. 우리가 놀고 있지 않으며, 이런 계획을 가지고 진행하고 있는데, 이런 위험요소가 있고, 그래서 상황이 어떠하다는 걸 중요한 순간마다 공유를 직접 해 줄 필요가 있다. (PM 들이 계속 하는 일이긴 하지만, 개발 리더가 한번씩 나서주는 것이 파트너들을 내 편으로 만들고, 응당 받아야 하는 칭찬을 받게 하는데 필요한 일이었다.)


이러한 과정 공유가 효과를 발휘하려면, 나는 파트너들에게 매우 신뢰받는 존재여야 한다. 신뢰를 받으려면, 거짓말을 하면 안 된다. 안 하고 있는데 하고 있다거나, 문제가 있는데 없다고 한다거나... 신뢰가 한번 깨지고 나면, 내가 어떤 짓을 해도, 우리 팀원들이 어떤 고생을 해도, 욕만 먹는다. 


그리고 거짓말을 하지 않고 신뢰를 쌓았을 때의 가장 큰 장점은, 아이러니 하게도, 아주 가끔, 먹히는 거짓말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  


분재는 크게 자라지 못한다


이건 내가 젤 잘 못 한 일 중에 하나이다. 내가 잘 못 한다는 걸 스스로 인지했기 때문에, 다른 팀장들이나 선임들에게 떠넘기고는 했었다. 


드라마 "미생" 을 보면서, 내가 가장 현실감이 떨어진다고 생각한 것은 대리들이 일을 너무 잘 한다는 것이었다. 난 사실 그렇게 일을 잘 하는 대리들을 별로 본 적이 없다. (회사 일을 자기가 다 한다고 생각하는 대리들은 많이 보긴 했지만) 영업조직은 좀 다른가 싶기도 하고, 회사의 소프트웨어 분야가 Embedded system 이라서 그런가 싶기도 하지만, 보통은 대학이나 대학원 졸업하고 회사로 와서, "야 이제 일 좀 하네" 라고 생각할 때까지 짧게는 2년, 보통은 3년은 걸렸다. 요즘은 Framework 이라는 미명하에 워낙에 아래에 층층이 쌓인 것이 많아서, Framework 을 개발해야 하는 회사 입장에서는 이미 존재하는 소프트웨어에 대해 의심이나 호기심을 가지지 않는 신입들은 언제 사고칠지 모르는 폭탄 같은 느낌이 강했다. 


옆에서 이거 아니잖아, 저거 아니잖아, 라고 꼬치꼬치 갈궈대면, 보통은 더 큰 인재로 성장하지 못한다. 마치 분재와 같다. 보기에 예쁜 작은 분재를 만드는 방법은, 잘못 자라는 가지를 계속 잘라주는 것이라고 들었다. 예쁠진 몰라도 거목은 될 수 없다. 투자라고 생각하고, 방만하게 내버려두면, 오히려 더 큰 인재로 성장하는 걸 많이 봐 왔다. 


사실 이건 대단한 인내심이 필요한 일이라, 앞서도 얘기했지만, 개인적으로는 포기했었고, 이런 일을 기가 막히게 잘 하는 옆에 앉은 팀장한테 매번 떠넘기곤 했었다. ^^;



술먹고 약속하지 마라


사람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 


술을 마시고 기분이 좋아지면, 터놓고 불만을 얘기할 수도 있고, 그 불만을 듣고, "아 그래 미안하다. 앞으로는 그러지 않을게" 라고 얘기하기 십상이다. 하지만, 그 약속을 지키지 못할 확률이 훨씬 더 높다. 보통은 그런 불만은 내 성격에서 비롯되기 때문이다. 


약속을 했는데, 그 약속이 지켜지지 않으면, 모르는 사이에 포기를 당하게 된다. 그러면 건강한 팀을 만들 수가 없다. "저 인간 원래 저래" 라는 유리벽은 아무리 노력해도 절대 깨지지 않는다. 


불만을 잘 듣고, 내가 할 수 있는 구체적인 action 을 고민하고, 지키기 어려울 것 같은 약속은 하지 말아야 한다. 


안 돼도 괜찮다.


우리 팀이 너무나 힘들게 고생하고 있을 때, 리더가 할 수 있는 가장 좋은 action 이 뭘까... 고민했었던 적이 있다. 내가 내린 답은, "안 돼도 괜찮다" 라고 얘기해주는 것이었다. "안 되면" 내가 책임질 거고, 내가 책임질 방법이 있다고 (물론, 책임질 방법을 찾아 놓는 것도 리더의 역할이기도 하다.) 얘기해 주는 것만으로, 팀은 일에만 더 집중할 수 있게 된다. 


스트레스를 잔뜩 받은 상태에서 일을 하면, 오히려 진도가 잘 안 나간다. 이럴 때는 스트레스를 완화해 주는 것이 중요하고, 그럴 때 가장 효과적인 것이 "안 돼도 된다" 는 반복적인 설명이었다. (물론, 성격상 압박감을 거의 느끼지 않는 팀원들에게는 역효과가 날 수도 있다. ^^;)



그리고, 해결하지 못한 문제


나에게 남겨진 정말 큰 문제가 하나 있었는데, 결국은 그것에 대한 나름의 답을 찾기 전에 퇴사를 했더랬다. 아직도 답을 잘 모르겠다. 


성격이 좋고 싹싹하지만, 일 자체는 잘 못하는 아이와, 일은 너무 잘 하는데, 불친절한 아이. 두 사람을 붙여서 일을 시키면, 서로 자극을 받아서 좋은 시너지가 날 거라고 생각한 적이 있었다. 결과는...? "근묵자흑" 이라는 사자성어가 진리라고 깨달은 것이다. 서로가 좋은 점을 받아들이는 게 아니라, 매우 신속하게 서로의 단점을 흡수해서, 더 안 좋은 결과를 내곤 했다. 오히려 둘이 서로 말도 안 하고 각자의 일을 하는 케이스가 더 잘 된 케이스였을 지도 모르겠다. 


팀이 오래 되다 보면, 이러한 상황이 팀 전체로 녹아든다. 오래 되었기 때문인지, 아니면 "난 원래 이런 인간이야. 받아들여." 라는 생각을 하게 된 중년의 개발자들의 특징인지 모르겠지만, 점점 더 Communication 을 안 하고, 점점 더 일 자체에 대한 애착이 떨어지는 것을 어떻게 해야 하는 건지 괴로웠다. 


나이가 먹으면 머리가 나빠지니까, 예전엔 일을 잘 하는 것으로 버텼지만, 이제는 좋은 성격으로 cover 해야 한다고 몇 차례 얘기도 해 보았지만, 별로 나아지진 않았던 것 같다. 


어쩌면, 내가 문제였을지도 모른다. 장점만으로도 충분히 좋은데, 단점이 나아지기를 지나치게 바랬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나와 함께 일했던 동료들 모두의 미래가 밝기를 기도한다. 그들이 계속 사랑받는 개발자가 되기를, 행복한 인생을 꾸려가기를... 진심으로 기도한다. 




사실 많이 부끄럽다. 내가 위와 같은 노력들을 한 것은 사실이지만, 남들에게 이래라, 저래라 할 정도로 사실 그렇게 훌륭한 리더는 아니었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들기 때문이다. 하지만, 적어도 노력은 했으니까, 혹시라도 나를 알던 옛 동료가 우연히 이 글을 보더라도, "뭐야 이 xx" 라고 툭 살짝만 비웃고 지나가면 좋겠다. ^^;


팀장과 팀원은 궁합과도 같다. 모두에게 좋은 팀장은 없다. 궁합이 잘 맞는 팀장을 만나서 일을 한다면 그건 정말 행운인 거다. 모두에게 완벽한 팀장이 되기 위한 노력은 그래서 부질 없다. 성격을 크게 바꾸려고 하지 말고, 나 스스로를 인정하고, 일관된 모습을 보이면, 그래서, 서로 좋아하지는 못해도, 이해할 수는 있게 되면, 그것만으로도 좋은 리더가 아닌가 싶다. 


지금 막 리더가 되는 젊은 팀장의 팀원이라면, 꼭 명심해야 할 것이, 팀장도 연습이 필요하다는 거다. 좌충우돌 이랬다 저랬다 질풍노도의 시기를 겪는 리더의 성장을 옆에서 그윽하게 바라봐 주는 것이 얼마나 큰 힘이 되는지 모른다. 


사람은 믿는 만큼 성장한다. 팀원도 팀장도, 서로가 믿는 만큼 성장을 한다는 걸 잊지 말고, 응원을 아끼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p.s. 팀장이었던 시절은 좋은 추억이다. 하지만, 지금은 팀장이 아니라서 너무 편하다. 개발이 젤 쉬웠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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