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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볼드저널 Mar 29. 2017

사진집 <윤미네 집>에 담긴 감성  

가족의 웃음소리까지 카메라에 담으며 아버지는 웃고 있었다.
아버지의 웃음은 가족의 26년이라는 시간을 담은 사진집 《윤미네 집》에 오롯이 남았다. 사진 속에는 아내와 세 남매의 매일매일 다른 일상의 행복한 순간들이 기록되어 있지만, 정작 그 사진이 기록한 것은 사진 속에 없는 아버지, 그의 사랑이다.


 정은정 일러스트 정성



복간한 《윤미네 집》, 아버지가 떠난 자리
나와는 상관없는, 본 적 없는, 알 리 없는 한 아이, 윤미. 윤미가 갓 태어나 실눈을 뜬 아기 사진에서 시작해 스물여섯 살에 하얀 면사포를 쓴 결혼 사진으로 끝나는 사진집 《윤미네 집》. 그 속에서 윤미는 엄마의 젖을 빨고 인형과 함께 잠들었다. 두 남동생과 웃으며 밥을 먹고 들판에서 뛰어놀았다. 교복을 입은 사춘기를 지나 대학생이 되었고, 진달래꽃 아래에서 남자 친구와 데이트를 했다. 그리고 웨딩드레스를 입은 신부가 되어 아버지의 손을 잡았다.
처음 《윤미네 집》(1990, 시각사)을 봤을 때 괜스레 눈물이 났다. 그리움이었다. 내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과 아이에서 어른으로 자라온 내 시간들에 대한 그리움, 어른이 되어 흩어져 사는 형제들에 대한 그리움, 이제는 흘러가버려 되찾을 수 없는 가족이 함께한 시간들에 대한 그리움이었다. 《윤미네 집》은 그렇게 보는 이들에게 잃어버린 유년의 시간을 되돌려줬다.
2005년 3월 《윤미네 집》을 들고 작가인 전몽각 선생을 인터뷰하기 위해 남현동 댁을 찾았을 때 선생은 암 투병 중이었다. 사진 속 아이들 모습에, 아내 이문강 여사와 지난 이야기를 하며 미소 짓던 전몽각 선생. 아내와 함께 나누는 추억 속에 고통은 마치 시간이 멈춘 듯 고요했다. 얼마 남지 않은 생의 시간 앞에서 선생은 “사진이 없었으면 추억할 거리도 없었을 것”이라며, “기억이 많아 참 행복하다”고 말했다.
이듬해 5월, 전몽각 선생은 가족의 사랑 속에서 세상과 이별했다. 그리고 생전 선생이 아내의 칠순에 선물하고 싶어 한 ‘마이 와이프’를 더해 두 번째 《윤미네 집》(2009, 포토넷)을 출간했다. ‘마이 와이프’는 갈래머리 소녀 때 만난 아내가 백발의 할머니가 되기까지, 반백 년 넘게 함께한 시간을 고스란히 담은 사진들이다. “나의 사랑하는 아내에게”로 시작하는 사진집은 사랑하는 남편이, 사랑하는 아버지가 떠난 빈자리를 다시금 채워주었다.


딸에게도, 아버지에게도 선물
전몽각 선생은 첫아이 윤미를 낳아 안고 있는 아내를 바라보며, 사진으로 가족의 모든 것을 남겨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 사랑의 깊이만큼, 이 약속을 생이 다할 때까지 지켰다. 윤미가 결혼해 미국으로 떠나자 딸에 대한 애정과 그리움, 응원의 마음을 담아 《윤미네 집》을 출간했다. 1990년이었다. 당시 미국으로 날아온 《윤미네 집》은 딸 윤미에게 먼 고국에 있는 아버지와 어머니의 사랑을 전해준 선물, 이후 살아가면서 어려운 일을 겪을 때마다 용기와 힘을 주는 사랑과 행복의 시간이 담긴 선물이었다.
《윤미네 집》이 선물이었던 것은 아버지에게도 마찬가지. 생전 전몽각 선생은 “딸의 웃음소리, 몸짓 하나하나가 고단한 생활에 힘을 주었고, 기쁨이었으며, 딸이 이 생에 가장 큰 선물”이라고 말했다. 《윤미네 집》의 사진들을 찍을 수 있게 세상에 태어나준 딸에 대한 고마움이 아버지의 마음에 앞섰다. 딸에게도, 아버지에게도 선물이었던 《윤미네 집》. 가족으로서 삶을 함께한 그 사랑의 시간들은 가족 모두에게 가슴 따뜻한 소중한 추억이 되었다.
복간한 《윤미네 집》은 2017년 오늘날까지 그 어느 것보다 사람들이 많이 찾는 사진집이다. ‘가족’이라는 아름다운 이름의 사진집. 그 사진들을 보고 누군가는 가족과 함께 웃고, 누군가는 혼자 울었다. 그리고 카메라의 셔터 소리가 이어졌다. 사랑하는 아내와 아이들을 촬영하는 아버지들의 셔터 소리. 《윤미네 집》은 지금도 그렇게 ‘수지네 집’, ‘동하네 집’, ‘지은네 집’으로 계속되고 있다.


가족, 가장 쉬운 또는 가장 어려운

가족을, 가족과 함께하는 일상을 사진으로 기록하는 일은 그리 만만치 않다. 아무 때나 느닷없이 들이대는 카메라를 귀찮아하기도 하고, 아무렇게나 널려 있는 생활이 여실히 드러나 부끄럽기도 하다. 또 아이들이 커가면서 각자의 시간이 늘어나는 만큼 카메라 셔터 소리가 줄어들기도 한다. 그러나 이 모든 것에도 불구하고, 《윤미네 집》이 스물여섯 해의 시간을 담을 수 있었던 것은 단 하나, 아버지의 마음 덕분이다.
가까이 있는 것을, 사랑하는 것을, 곧 사라질 것을 더 아끼는 마음. 그 마음을 사진으로 기록해 기억하고 싶어 하는 열정. 무엇보다 사진으로 기록하는 것이, 너무 흔해서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느껴진 것들을 시간이 흐른 뒤 모두 특별한 것으로 만든다는 믿음. 아버지는 그 마음과 열정과 믿음을 가지고 기록해나갔다. 그리고 그 기록은 우리가 얼마나 사랑하며 살아왔는지를 잊지 않게 해주었다.
기념이 아닌 기억하기 위해, 사진으로 사랑하는 것들을 기록하는 것은 추억을 조금씩 쌓아가는 길이다. 1일, 1년, 10년, 20년, 30년의 시간을 입고 많은 것을 잃어버린 후, 빈손이라 여기며 손을 펴보았을 때 발견할 수 있는 아름다운 선물을 만드는 것이다. 무엇보다 밥을 먹듯, 생활하듯 기록하는 것은 성실히 사랑하는 삶의 방법이며, 매 순간 사라지는 생을 소중히 여기며 감사하는 삶의 방식이다.



가까이 있는 것을, 사랑하는 것을, 곧 사라질 것을 더 아끼는 마음.
그 마음을 사진으로 기록해 기억하고 싶어 하는 열정.
무엇보다 사진으로 기록하는 것이, 너무 흔해서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느껴진 것들을 시간이 흐른 뒤 모두 특별한 것으로 만든다는 믿음. 


오늘의 사랑, 한 컷 사진
10여 년 전 찾아간 윤미네 집을 떠올릴 때 잊히지 않는 것이 있다. 바로 필름 한 롤, 한 롤을 밀착 인화한 수백 개의 프린트. 전몽각 선생은 흑백필름 한 롤, 서른여섯 컷의 사진을 한 장의 인화지 (8×10′′)에 그때그때 인화해놓았다. 그 위엔 때와 장소, 그날 있었던 일에 대한 메모도 빠지지 않았다. 《윤미네 집》은 그 수많은 사진으로 완성됐다. 좋은 카메라보다 꼼꼼하게 들인 작은 정성들. 이것으로 26년의 시간을 어렵지 않게 되찾을 수 있었구나 싶었다.
필름이 사라지고 디지털 이미지가 넘쳐나는 요즘, 많은 디지털카메라와 스마트폰의 카메라가 셔터 소리를 흉내 낸다. 전보다 쉽게 찍고, 전보다 많이 찍는다. 그러나 데이터로 남는 디지털 이미지는 무형의 기록으로 어느 한 순간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릴 수 있다. 그러기에 촬영한 후 메모리칩을 꺼내 컴퓨터에 저장하고, 사진을 선택해 바로 인화하는 것이 중요하다. 기록하는 방법이 좀 더 편리해진 반면, 기억할 수 있는 방식은 조금 위험해졌다.
사진은 먼 옛날의 시간을 먼 훗날 되살리는 가장 멋진 기록이다. 되돌아갈 수 없는 그때, 그곳의 시간들을 담아둘 수 있는 마법과도 같다. 모든 것이 변하고, 어제의 기억이 오늘의 기억들로 사라질 때 잃어버린 시간의 끄트머리를 잡아둔다. 먼 훗날 그 끄트머리를 잡아당겼을 때 떠오르는 사랑의 시간들, 그리움의 시간들. 그 시간들을 위해 오늘 카메라 셔터를 누른다. 찰칵! 흘러가는 시간이 아름다운 추억이 되는 소리다.


사랑을 만나 결혼하고 아이를 낳아 키우고, 그 아이가 다시 사랑을 만나 결혼하고 아이를 낳고... 끊임없이 이어지는 삶의 길이다. 그 길에 사랑이 있으며 가족의 사랑이 있다. 그 어떤 사랑보다 내일을 살아가는 큰 용기와 힘을 주는 사랑. 《윤미네 집》에서 우리가 마주한 그 사랑, 카메라 셔터 소리와 함께 소중한 추억으로 남은 가족의 사랑. 집집마다 그 사랑의 시간들이 오늘도 이어지길, 삶의 빛나는 그 순간들이 사랑의 빛으로 내일도 남길 희망한다.



* 글을 쓴 정은정

서강대학교에서 신문방송학을, 중앙대학교에서 사진학을 전공했다. 사진 전문지 〈포토넷 PHOTONET〉, 〈본 VON〉 에서 기자로 일했으며 〈2013 서울사진축제〉 등의 전시에 큐레이터로 참여했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피어나는 이야기에 관심이 많고, 그 이야기를 글과 사진으로 풀어낸다. 2005년 3월 〈포토넷〉 기자로 윤미네 집을 방문한 후 그 인연을 소중히 여기며, 고 故 전몽각 선생의 아내 이문강 여사와의 만남을 이어가고 있다.



* 가까이 있는 것을, 사랑하는 것을, 곧 사라질 것을 더 아끼는 아버지들의 잡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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