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촌의 카페
올해 여름은 유난히 지루했다. 너와 같이 맞이하는 다섯 번째 여름이었다. 그냥 내 삶이 지루한 건지, 너와 나의 관계가, 우리가 지루한 건지 유난히 헷갈렸다. 8월 초의 더위는 사람을 아득하게 만들어서 이별이라는 선택이 그 지루함을 끊어줄 것만 같은 생각에 사로잡히게 했다.
이별을 고할 장소를 찾는 건 쉽지 않은 일이었다. 선선한 봄이나 가을, 운치 있는 초겨울이라면 거리에서 말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서로의 말을 끝까지 듣고 나눌 수 있는 인내심과 차분한 마음은 8월 초의 한 여름에는 허락되지 않으니까, 냉방이 적절히 된 실내 장소를 찾아야 했다.
서로의 음성이 잘 들리되 다른 사람에게 들리지 않을 정도의 거리와 소음이 있는 곳.
그러다 문득 서촌의 끝자락에서 스치듯 보았던 곳이 생각났다. 지나다니는 사람이 일단 많지 않고 내부가 작아 사람자체가 많이 있지 않은 곳이었다. 한편에는 큰 스피커가 있어 적당한 크기의 볼륨으로 이름도 잘 모르는 밴드의 아주 멋지지만 조용하지만은 않은 배경음악이 흐르는 곳이었다.
약속 시간 20분 전에 도착해서 자리를 잡고 이곳의 가장 유명한 메뉴인 프렌치토스트와 아이스 드립커피를 한 잔 주문했다. 5평도 채 안 되어 보이는 작은 공간이라서, 토스트 조리가 시작되었다는 걸 후각으로 바로 알아차릴 수 있었다. 달큰하고 고소한 향이 코를 거쳐 가슴 한편으로 들어왔다. 그리고 이내 너와의 5년이 그 향과 멋지지만 조용하지 만은 않은 음악소리와 함께 펼쳐졌다. 지루하다는 말로 정리할 수 없을 시간과 웃고 울고 기대고 실망했던, 그럼에도 함께 했던 순간들이.
프렌치토스트를 한 입, 두 입 먹고 커피를 한 모금 가득 마셨다. 유리창 너머로 걸어오는 네가 보였다. 네가 문을 열고 들어와 괜히 웃어 보였고 나는 프렌치토스트를 너에게 건네며 권했다.
이걸 다 먹으면 저번에 보고 싶다던 영화도 보고, 가고 싶다던 몽골 여행 계획도 짜보자고 나는 말했다. 지루할지 모르는 그 여름을 또 너와 보내야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