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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미 Jun 11. 2023

나는 책을 왜 좋아할까

출판사에서 일하는 게 진짜 행복할까

좋아하는 일이 업이 되는 건 운이 좋은 일이다. 하지만 그게 일이 되는 만큼의 애로사항이 있을 거라고.

하고 싶을 때 하고 싶은 만큼 하고 싶은 걸 하는 게 아니라면, 좋아하는 일이 의무가 되는 거라면 좋아하는 일이 때로는 미워질 거라고 생각하며 시작한 일이다.


첫 회사생활을 시작한 지 8년 여만에 처음으로 출판사의 마케터가 되었다. 면접에서 대표님과 본부장님이 나란히 물었다. 출판사 경력이 없는데 여기에 지원한 이유가 특별히 있냐고. 회사 생활 10년 차를 앞둔 중고 대리 내지는 신입 과장의 입에서 나오기엔 좀 부끄러운 말이었지만 솔직히 솔직하게 대답했던 기억이 난다.


책이 진짜 좋아서, 책을 사람들이 읽어줬으면 좋겠어서. 

그리고 속으로 덧붙였다. 막연하게 내 이름으로 책 한 권 내보는 게 인생의 꿈이라면 꿈이었는데요, 꼭 작가 이름만 이름이 아니니까요, 마케터로라도 이름이 실리면 좋겠어서요.


초등학생 시절 부모님 성화에 못 이겨 울며 겨자 먹기로, 심지어는 진짜 울면서까지 매일매일 빼놓지 않고 일기를 썼다. 입학 첫 해에는 부족한 솜씨로 그림일기장에 어설픈 그림을 채워가며 손에 크레파스 자국이 남도록 일기를 썼고, 그 크레파스를 손에 쥐고 잠든 사진도 남았으며, 2학년부터 졸업까지 총 다섯 해 동안에도 늘 빠짐없이 일기를 썼다. 

자기 전 아빠한테 일기를 보여주고 '안녕히 주무세요'하는 것이 일과의 마지막이었고, 진절머리 나게 쓰기 싫을 때도 있었지만 성인이 된 후 엄마가 보물이라고 쌓아둔 일기장을 다시 보니 대단한 금붙이를 남겨주는 것보다 이게 더 고마워할 일이라는 생각이 들더라는 말이다. 그리고 그 당시 담임 선생님들이 두세 줄씩 남겨준 코멘트들도 다시 보였다.


이제 막 10대 타이틀을 달고 '나도 10대다!' 하던 해에 만난 담임 선생님은 방과 후 활동 글짓기반 담당이셨다. 어렸을 때부터 할 말이 많아 일기장에 빼곡히 하루를 적어두면 꽤나 진심으로 읽고 리플을 달아주던 선생님 추천으로 처음으로 백일장이라는 것도 나갔었다. 선생님이 수업 빼고 어디 공원에 대회 나가자 하시니 그게 설레서 따라갔고, 그냥 어떤 주제로 글을 적어보라길래 뭔지도 모르고 어설프게 적었더니 상을 몇 번 받았다. 그걸 시작으로 고학년이 되었을 적엔 전국 단위 백일장에서 장려상을 받아 시골 촌뜨기가 입어본 적 없던 예쁜 옷을 입고 부모님과 서울 나들이를 와서 수상도 하고 그랬던 게 20년도 넘었나 보다.


뭘 잘하는지 잘 몰랐던 때에 글로 상을 받으니 막연하게 나는 작가가 되리라 마음먹었다. 그런 쪽으로(?) 조숙했던 지라 초등학생 시절부터 밤늦게까지 라디오 방송을 들으며 '작가님'이라는 호칭이 있길래, 나는 꼭 방송 작가가 되어야지 하고 다시금 마음먹었었다. 그리고 그 꿈이 아마 내 짧은 생애 가장 오래 이어졌던 꿈이었던 것 같다.


대학 입시를 코 앞에 두고도 방송작가, 그것도 꼭 라디오 방송 작가가 되어야지 하며 찾아도 잘 안 나오는 관련 서적을 찾아봤었다. 사람들은 다들 PD만 되고 싶어 하는 건지 온통 PD가 되는 방법과 그들의 에세이뿐이었지만 출간된 지 수년이 지난 방송작가들의 책을 찾아 읽어보니 그게 또 엄청 힘들어 보이더라는 것이다. 

우리 집은 금전적인 여유가 없는데, 나는 아마 대학 졸업하면 바로 돈 벌어야 될 텐데? 방송 작가는 비정규직에 수입도 일정하지 않다고 하니 지레 겁을 먹고 초중고 시절 내내 이어온 라디오 방송 작가의 꿈을 접었다.


성적에 맞춰서, 그래도 그 와중엔 가장 흥미로워 보였던 광고홍보학부를 졸업하고 보니 정말로 졸업하자마자 취업 전선에 뛰어들어야 했다. 관련 일자리는 서울에만 있다는데 부모님께 손을 벌려도 한계가 있으니 휴학 후 알바를 했고, 그럼에도 반쯤은 부모님께 손을 벌리고 용돈을 받아가며 상경해 어느 기업의 마케팅팀 인턴으로 '직장인으로서의 서울 생활'을 시작했다.


글쎄, 지금 이렇게 적으려니 핑계인 것도 같지만, 이전의 꿈은 사실 잊었다. 휴학 기간 동안 인턴으로 일했고, 복학하고 나니 평일에는 수업과 과제를 듣고 주말에는 알바를 해야 했다. 그래도 부족해서 한 번 더 휴학을 했고 또 인턴사원과 복학생 신분을 이어 가면서 간신히 졸업을 했다. 내 경력은 그렇게 쌓였다. 하고 싶은 일이라는 생각보다는 우선 코 앞에 있는 일들 중 그래도 가장 재미있어 보이는 일들을 택했다. 깊게 생각하지 말고 살자는 주의라 후회는 없고 재미는 있었다. 그렇게 나는 7년 10개월 차 마케터가 되었다.


출판사 입사도 완벽히 계획한 일은 아니었다. 이직을 준비하던 찰나 괜찮은 출판사의 마케팅팀 공고가 떴고 희미하게나마 글쓰기, 책 출간에 대한 꿈이 있었으니까, 다독은 못하더라도 꾸준히 책을 좋아해는 왔으니까. 책에 대한 애정을 어필하며 면접을 봤고 며칠 후 합격 전화를 받고 그렇게 꿈에 그리던 출판사 직원이 되었다.


입사한 지 겨우 1년 반, 조금은 고단한 출판인(?)의 겉모습을 갖추었지만 어떠냐고 물으면 여전히 재밌고 신나긴 한다. 추진력 300퍼센트, 지구력 20퍼센트의 인간이라 늘 새로운 일을 재밌어하는 만큼 매번 새로운 책의 다른 이야기를 말하는 건 여전히 흥미롭다. 난 태어나서 한 번도 읽어보지 않았던 주제의 책들과 그 책의 출간을 기다리는 독자들을 보면서 새로운 세계도 맘껏 탐닉한다. 몰랐던 세상을 알고 간접적으로나마 탐색하는 걸 좋아하는 나한테는 이만한 일이 없다.


주로 책의 맨 뒷장의 뒷장(때로는 커버를 제외한 맨 앞장)에 마케터로서 내 이름이 실린다. 내 이름이 안 실린 다른 팀의 좋은 책들도 많지만 굳이 내 이름이 담긴 책에서만 고르고 골라 친구들과 가족들에게 선물하며 별 거 아닌 듯이 말한다. 


"거기 맨 뒷장에 내 이름 있어, 함 봐봐."

스물셋에 처음으로 강남구 오피스에 일하면서 받은 명함을 자랑할 때를 제외하면, 일하면서 이렇게 어깨에 힘 들어가고 보람찼던 순간이 있었나 싶다.

그러나 선물한 책이 선물 받은 사람에게 완벽히 읽힌 적은 생각보다 많지 않았다. 사람들은 생각보다도 더 책을 읽지 않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선물한 책을 머리맡에 두고라도 잔다면 그거라도 좋다고 생각했다. 


실제로 당장 누군가 내가 마케팅한 책으로 인생이 바뀌는 걸 꿈꾸지 않는다. 내가 기획한 홍보 이미지를 보고 서점으로 달려가 책을 읽기 시작하고, 그걸로 한 달에 스무 권씩 속독하는 독자를 양산하는 꿈을 꾸지는 않는다. 나 역시 궁금한 게 생기면 당장에 구글을 열어 검색하고, 유튜브를 켜면 어느 나라든 여행할 수 있는 세상에 책은 더 이상 중요하지 않다. 서글프지만 자연스러운 일이기에 이제 서글퍼할 이유도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누구나 책과 친해지는 걸 바라는 마음으로 일한다. 잠들기 전 단 한 단락이라도 책을 매일 만나고 머리맡에 언제나 책 몇 권씩은 굴러다니는 사람들이 많아지길 바란다. 그냥 심심할 때 찾는 게 대부분 유튜브지만, 그래도 열에 한 번은 책을 찾는 사람들이 많아졌으면 좋겠다. 어려운 책만이 책은 아니니까(나도 어려운 책은 못 읽으니까), 많이 읽는 사람만이 책을 좋아하는 건 아니니까(나도 많이는 못 읽으니까), 그냥 책이 홀대받지 않는 세상이었으면 좋겠다. 거창하게 들리지만 아주 단순히 그것뿐이다.


회사 생활이 고단해지면서 스스로를 의심하게 된다. 왜 출판사가 아니면 안 되는데? 그동안 출판사 아닌 회사에서도 잘만 일해왔는데? 책이 좋다는 게 무슨 뜻인데? 문학 작품에 내포된 뜻도 잘 읽어내지 못하고 늘 소양이 부족함을 깨달으면서, 그 정도 안목으로 책에 대한 애정이 있다고 말할 수 있나? 책에 대한 편식도 심하고 마케팅하는 모든 책을 완독하고 좋아하지도 않으면서 이 일이 아니면 안 될 이유가 있나?


일이 많아 서럽고 힘들고 시장이 좁고 사양산업이지만 그냥, 그럼에도 불구하고 재밌어서 하고 싶다. 여전히 단순하게 책에 내 이름 석 자 들어가는 게 좋아서, 그 책들 중에도 맘이 맞는 책을 만나 맘껏 읽고 선물하는 게 좋아서, 그 책이 누군가의 베개나 냄비 받침이 되더라도 그네들이 책 한 권쯤 갖고 있는 게 좋아서, 출판사 직원이라고 명함 내미는 것도 좋아서 한다. 애정은 모르겠고 그냥 책이 재밌어서 한다, 우선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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