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n I sit by you?
*원래 1월이 끝나기 전까지 열 편의 글을 쓰는 것이 목표였으나 이 글을 마지막으로 잠시 쉬었다가 쓰려합니다. 잠시라고는 했지만 여름 즈음에 다시 펜을 들 것 같아요. 기왕 시작한 거 올 한 해 좀 더 단단해진 마음으로 뜨겁게 써 내려갈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이번 글은 올 한해를 맞이하여 스스로에게 쓰는 편지예요. 긴 생각을 정리하다 보니 쓸데없이 길어졌습니다. 방황하는 스물아홉의 미숙함을 너그러이 인내하는 마음으로 읽어주세요:) 아참, 이번 글은 이루마의 Fotografia(희망이란 아이)를 들으며 한 자 한 자 정성을 다해 썼습니다. 같이 들으면서 읽어도 좋을 것 같아요. 올 한 해 행복하고 건강하시기를. 그리고 꼭 예쁜 사랑하세요^-^
지금이라면 좀 더 제대로 말할 수 있을까. 그건 네 잘못이 아니라고, 무서웠다고, 나도 너무 어렸다고, 당신을 잃고 싶지 않았다고, 외로웠다고, 오직 쥰세이만이 그런 나를 알아주었다고, 한시도 떨어져 있고 싶지 않았다고, 사실 내내 붙어 다녔고, 오누이처럼 어디든 함께였고, 모든 일이 즐거웠다고, 행복했다고,
그리고 그런 식으로 헤어지고 싶지 않았다고.
-냉정과 열정사이 中
옆에 앉아도 돼요? 대학시절 카페에서 같이 책을 읽다가 남자친구가 물었습니다. 그때 우리가 읽고 있던 책은 에쿠니 가오리와, 츠지 하토 나리의 <냉정과 열정사이>라는 소설이었어요. 헤어진 두 남녀가 10년 후에 피렌체에서 만나기로 약속하고 결국에 만나게 되는 로맨스 소설이었습니다. 제 옆에 슬그머니 앉는 남자친구를 바라보다 문득, 슬픈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물었어요.
“우리도 10년 후에 피렌체에서 만나지 않을래요?”
“뭘 만나요. 같이 가면 되잖아요.”
“혹시 헤어질까 봐.......”
“그런 얘기를 왜 해.”
“그냥. 사람일은 모르는 거니까요.”
“난 먼저 헤어지자는 말 안 할 것 같은데. 헤어지고 싶어요?”
“아니, 그런 게 아니라. 혹시 내가 헤어지자고 하면 어쩌죠?”
“그럼 그때는 붙잡지 않을 거예요.”
다시 꼬시면 되죠 뭐.
하고 장난스럽게 웃어주는 그의 얼굴을 보니 그제야 묘하게 안심이 되어,
뭐야, 누가 넘어와 준대요?
그제야 함께 웃을 수 있었습니다.
“그래도 기억해 줄래요?”
그 후로 저는 가끔 그에게 진담 반, 농담 반으로 피렌체 얘기를 하곤 했고 그는 알았어요 걱정마요, 하며 손을 잡아주었습니다. 손을 잡을 때 그는 제 엄지 손가락을 접어 손바닥으로 완전히 감싸는, 조금은 특별한 방식으로 잡았는데 지금도 그 순간은 그와 함께한 시간을 통틀어 가장 행복한 추억입니다.
그러나 시간이 흘러 우리는 헤어지게 되었고, 그는 꾸준히 연락을 해왔지만 저는 그의 연락을 철저하게 피하고 때로 모진 말로 상처를 주기도 하였습니다. 그리고 시간이 더 흘러 저는 그의 새로운 연인에 대한 소식을 듣게 되었어요. 길을 걷다가도 눈물이 날 정도로 눈물이 잦아졌지만 그것도 시간이 흘러감에 따라 차츰 빈도수가 줄어들었습니다. 하지만 운명의 장난일까요? 이제 좀 괜찮아,라는 생각이 들 때쯤 우연히 도서관에서 우리는 다시 마주하게 됩니다. 저는 키가 작은 탓에 손에 닿지 않은 책을 꺼내려 낑낑 대고 있었고 그걸 우연히 발견한 그의 웃음보가 터지는 바람에 존재를 들킨 것이었습니다. 우리는 그걸 계기로 예기치 않게 마주 앉아 무척이나 엉성한 자세로 밥을 먹었습니다. 영양가 없는 말을 주고받으며 최대한 자연스럽게 행동하려 했으나 실은 가슴이 너무 뛰어 도무지 밥 먹는 것에 집중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런 후 우린 다시 각자의 삶의 자리로 돌아가기 위해 도서관으로 향했지만 정말 마지막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었는지 자꾸만 걸음이 느려졌습니다.
“아이스크림 먹을래요?”
도서관 앞에 다다랐을 즈음 그가 물었습니다, 저도 모르게 반가워서 “그래요.”라고 답한 후 편의점에서 산 하드를 입에 문 채 또 걷고 또 걸었습니다. 아이스크림을 먹느라 말이 없었다는 것은 변명이었습니다. 사실 하고 싶은 말은 너무 많은데 백지장만 토해내는 고장 난 출력기마냥 이미 머리에 입력된 무수한 말들은 까만 밤하늘 아래 무력하고 또 무력했습니다. 추운 날이 아니었는데도 손이 시렸습니다. 아이스크림 때문일 거야, 하며 저는 애써 마음을 다잡고 있었고 그즈음 그가 내 손을 잡았습니다. 당혹감에 얼른 빼내려 하였지만 손을 비틀수록 손에 더 힘이 들어가 속수무책이었습니다.
기억해요?
기억해요? 쿵, 하고 심장이 멎을 것만 같았던 한 마디에 하마터면 눈물을 왈칵 쏟을 뻔하였습니다. 기억하고 있구나. 잊지 않았구나. 하는 안도감과 더불어 왠지 모를 죄책감과 분노가 치밀어 올라 고개를 푹 숙이고 입술을 지그시 깨물었습니다. 입을 여는 순간 이번엔 백지장이 아닌 무수한 말들이 빼곡히 적힌 종이들이 한 번에 쏟아져 나올 것 같았어요. 그동안 얼마나 보고 싶었는지, 얼마나 미안하고, 얼마나 사랑했는지 그래서 얼마나 원망하고 또 원망했는지, 네가 나에게 매달렸을 때 그렇게 독하게 굴었으면서 정작 시간이 지난 후 너에게 매달리며 솔직하게 떠나지 않으면 안 되냐고 내가 다 잘못했다고, 울며불며하지 못한 스스로가 얼마나 못나고 비겁하게 느껴졌던지
“한 번이라도 자기감정에 솔직했던 적 있어?”
헤어지던 날 그동안 나는 한 번도 보지 못한 너의 눈빛과 네 말투를 비수처럼 온몸으로 받아내며 네 앞에 우뚝 서 있는 듯했지만 발목에 자꾸만 힘이 풀려 불안한 시선을 어디에 둬야 할지를 몰랐습니다. “선배는 최선을 다하지 않았기 때문에 분명 나보다 더 힘들 거예요.”라는 너의 말처럼 정말 그렇게 됐네요. 정말인지 미쳐버릴 정도로 힘들었던 걸 알기나 하나요? 그래서 너는 지금 다시 연애를 하고 있으면서 내 손을 잡고, 날 흔들고 속 시원해요? 왜 살만해지면 꼭 한 번씩 사람 마음을 뒤집어 놓는 거야? 너야 말로 너무 잔인한 거 아닌가요? 온갖 유치한 말과 감정과 생각들이 걷잡을 수 없이 튀어나올 것만 같았습니다. 그래서 그때 제가 할 수 있었던 건 단지 입술에서 비릿한 피 맛이 날 정도로 입술을 깨무는 일밖엔 없었습니다.
“기억...”
“여자친구가 이러는 거 알아요?”
추워요, 감기 걸리고 싶지 않아. 하며 손을 빼내려 하자 손에 더 힘이 들어갔습니다. 차마 눈을 바라볼 수 없어서 시선을 돌렸지만 그렇다 해서 그 눈빛의 의미를 이해 못하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때로 바라보지 않아도 어쩔 수 없이 읽히는 것들이 있잖아요. 그러나 그 시선이 당시엔 너무나 아파서, 세포 하나하나를 태우는 듯한 아픔이라 거의 절규와 비명에 가까운 소리로 “아프기 싫다고요!” 하고 소리치고 말았고 그제야 손에 들어갔던 힘이 풀렸습니다. 묘한 안도감과 더불어 그 안도감을 압도하는 후회가 밀려왔지만 이미 물은 엎질러졌고 저는 다시 도망갔습니다. 그리고 다시는, 우연히 마주치는 일조차 없이 우리는 같은 시간 다른 세상 속에 각자의 이야기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시간이 꽤 지난 후에야 제게 다시 사랑이 찾아왔습니다. 그 꽤 긴 시간 동안 스침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으나 늘 저의 망설임으로 스침에서 끝이 나곤 했습니다. 이번에도 망설임이 없던 건 아니었어요. 정말인지 다시는 누군가를 좋아하지 못할 거란 생각을 하게 될 때쯤 사랑은 기습적으로 찾아왔고 저는 당황했던 것 같습니다. 그렇지만 이제야 찾아온 소중한 감정을 놓칠 순 없었습니다.
저 어떻게 생각해요? 전 당신이 좋아요.
처음으로 누군가를 사귀지 않은 상태에서 마음을 표현했고 그날 그 사람은 제 손을 잡아 주었습니다. 이번엔 같은 실수를 하고 싶지 않았고 시간이 많이 흘렀기에 정말 괜찮아진 건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그저 감정이 무뎌졌을 뿐 이미 몸에 밴 습관이라는 것은 그대로였다는 걸 그 사랑마저 끝난 후에야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사실 이번 연애는 저번과는 달리 헤어짐 자체로 힘들었다기보다는 헤어진 이유 때문에 많이 아팠습니다. 왜냐하면 그 헤어진 이유가 정말 건들고 싶지 않은 제 상처를 직격타로 건드렸기 때문이었습니다. 상처에 상처가 더해지자 그 고통이 견디기가 힘들어 친한 친구를 붙잡고 울며불며 그 사람에 대한 원망을 늘여놓기도 하였습니다. 그때 친구가 했던 한 마디가 마음에 와 닿아 옮겨봅니다.
“네 말이 맞아. 그 사람은 신중하지 못했어. 근데 대낮에 핵폭탄을 던지면 어떨 것 같아?”
뜬금없이 대낮의 핵폭탄이라니, 저는 황당한 얼굴로 대답 없이 친구를 물끄러미 쳐다보았습니다. 그때 친구가 이렇게 말하더군요. “아픔을 공유하는 것까진 좋은데 그걸 공유하는 방식이 좋진 않았던 것 같아. 조금씩 그 사람으로 인해 나아지는 모습을 보여줘야지 무작정 내게는 이런 상처가 있어,라고 말하는 건 이기적이야. 내 상처는 불가항력적이고 당신은 나한테 아무런 영향도 미칠 수 없으니 다가오지 마요,라고 해놓고서 나의 상처를 받아주지 않았다고 화를 내는 건 그 사람 입장에서 억울하지 않았을까?”
아, 그랬겠다. 하는 생각이 들면서 문득 첫 연애 때 지나가는 말로 그가 했던 말이 생각났습니다. “가끔 옆에 있으면 무력한 느낌이 들어요.” “네?” “너무 밝게 행동하는 것도, 모든 걸 스스로가 알아서 하려는 것도 상대에게 상처가 될 수도 있는 거예요. 멀게 느껴지고 때론 거짓되게 느껴져요.” “무슨 소리예요 그게.” “지나친 배려는 독일 수도 있는 것 같아요. 말하지 않으면 알 수 없어요.” 그때 그 말을 좀 더 진지하게 들을 걸. 나는 괜한 신경전으로 번지는 것이 싫어 그냥 웃음으로 가볍게 넘어갔던 것이고 솔직히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돌이켜 보면 연애할 때뿐만이 아니라 헤어질 때조차 저는 그 친구 말대로 지나치게 밝게 행동하며 알게 모르게 상처를 주었던 것입니다. 그 친구가 힘들어하며 수업에 빠질 때에도 저는 친구들과 어울리며 웃고 떠들며 시간을 보냈고 실은 괴로워 마음 둘 곳이 없어서 공부라도 했었던 것일 뿐인데 그 결과 성적도 잘 나와 4.5만 점에 거의 가까운 점수를 받기도 했었지요. 순전히 이별의 힘이었지만 저는 제가 잘나서 그런 거라 스스로의 감정을 외면했습니다. 그런데 그렇다고 해서 괴로움이 사라지는 건 또 아닌지라 술을 잘 마시지도 못하면서 뻔질나게 술자리에 참석하여 알콜로 뇌를 마비시키는 옳지 못한 방법으로 아픔으로부터 도망 다니기도 하였습니다. 이별 후 성숙한 성찰을 생각하기엔 저는 아픔이 감당이 안 되어 어린아이처럼 굴었던 것이었어요. 저는 겁쟁이 었고 비겁했습니다.
왜 그랬을까. 최근의 연애가 끝나고 나서야 그때의 저의 행동을 찬찬히 다시 돌아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어릴 적부터 힘든 모습을 남들한테 보여주기 싫어 참는 것이 습관이 되어서 그랬던 것 같아요. 그러나 친구 말대로 참는 것이 근본적인 문제 해결은 아니었습니다. 힘든 걸 다른 사람에게 보여주는 순간 무너져 내릴까 두려워 저는 그게 허술한 포장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심지어 남한테 상처를 주면서까지 밝게 행동하였던 것이었습니다.
결국은 저는 헤어진 남자친구에게 쓴 소리를 듣게 됩니다. “선배, 내가 몇 년 동안 알던 그 여자 맞아요? 선배는 아무렇지도 않아요? 어쩜 그렇게 멀쩡해?”
전 끝까지 잔인하게 굴었습니다. 이별을 질질 끌면 끌수록 서로에게, 아니 나에게 힘들 거란 이기적인 계산 하에 저는 단호한 어투로 “내가 아팠으면 좋겠어요?” 하며 되물었고 그는 정말 질렸다는 표정으로 돌아섰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때는 몰랐네요. 제가 그 친구가 했던 말을 다음 사랑에게 똑같이 하게 될 줄은. 그 말을 마지막 사랑에게 뱉어내고 나서 들었던 생각은, 아 내가 그때 그 친구에게 참 못나게 굴었다는 거였어요. 마지막 연인이었던 그 사람은 저의 모든 징징거림을 최대한 예의 있고 매너 있게 받아 주었지만 저는 오히려 그게 제 작디작은 그릇을 여과 없이 드러내는 것 같아 괴로웠고 이성을 잃은 채 제 나이를 망각하고 끝까지 애같이 굴었습니다. 여하튼 헤어짐의 이유와 양상은 다르지만 돌이켜 보면 기본적으로 사람을 대하는 저의 태도에는 변함이 없기에 벌어진 일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너 처음에 연락 엄청 피했었잖아. 그 이후로 먼저 연락한 적 있어?”
“먼저 문자 한 적은 있어.”
“아니, 그런 거 말고.”
너무 힘들 때 나는 당신이 필요해요, 옆에 있어주세요, 옆에 있어주면 안심이 되어요, 당신 품에 있으면 행복해요, 그러니까 나는 당신으로 인해 기쁘고 행복한 거예요. 여기서 중요한 건 당신으로 인해서 라는 거예요.
어린 왕자의 말을 빌리면, 전 당신에게 길들여지고 있어요.라고, 표현한 적 있어?
"아니. 낯간지럽게 그런 걸 어떻게 말하니?"
"내가 언제 말하랬어? 평소에 표현한 적 있느냐고."
"아니."
"그럼, 그 사람 입장에선 네 상처는 정말 대낮의 핵폭탄 격인 거야."
내가 울 것 같은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푹 숙이자, 친구가 어깨를 감싸 안으며 말을 이었습니다. 친구의 목소리와 내 어깨를 부여잡은 손이 조금씩 떨려오는 걸 느끼며 친구의 진심을 읽을 수 있었어요. 그래도 수고했어. 전에는 좋아하는 마음도 제대로 표현하지 못한 꿀 먹은 벙어리였잖아. 좋아하는 걸 제대로 표현하지도 않으면서 좋아해주길 바랐었잖아. 그런 부분에서는 한 걸음 나아간 거야. 마지막에 늦었긴 했지만 네 생각을 표현한 것도 난 개인적으로 좋았어. 근데 그런 건 만날 때 마주 보고 하지 그랬어. 그런 네 생각을 평소에 얼굴을 맞대고 얘기한다 해서, 그 사람에게 기대려 한다 해서 그 사람이 널 싫어하진 않았을 텐데....... 뭐 어찌 되었건 이번 일로 네가 네 첫 남자친구에게 얼마나 매정했는지 직접 체험할 수 있었겠네. 속죄했다고 생각해. 이제 내일모레 서른인데 첫사랑은 이쯤에서 내려놓자.
누군가에게 죄책감을 가진 채로 만남을 이어가면 자꾸 겁을 먹을 수밖에 없는 거야.
놓아주자.
살아오면서 의도치 않게 내 삶에 아픔이 생긴 건 죄가 아닐 거예요. 그렇지만 그 아픔을 다른 사람이 기꺼이 짊어지겠다는 용기를 내주었을 때 그건 정말인지 너무나 고마운 일이라는 걸 나이만 먹었지 저는 몰랐습니다. 사랑하니까 당연히 감당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는 걸, 그 당연한 걸 친구 덕분에 깨달을 수 있었어요. 내 상처를 나의 무모한 밝음으로 방치하고 덮어두려고만 하다가 그게 들킬 것 같으니까 나한테는 이런 상처가 있어요, 하고 실토해 낸 격이었습니다. 그럼에도 용기를 내주었던 것인데 이제와 당신께 너무 미안하고 후회가 됩니다. 제게 준 깨달음이 헛되지 않도록 저에게 머물렀던 당신들의 시간을 욕 보이지 않게끔 제가 더 좋은 사람이 되어 씩씩하게 살아가겠습니다. 고개 숙여 미안하고 감사합니다.
친구의 직설적인 쓴 소리로 가끔 서로 토라지고 발끈할 때도 있지만 제 미숙함과 허물을 직면할 수 있게, 다시 한 번 용기 낼 수 있게 이끌어준 친구에게도 너무나 고맙습니다. 실수투성이인 초라한 제 삶에 어울리지 않게 너무나 좋은 인연들이 지금 내 곁에 머무르고 있고, 잠시나마 머물러 준 것에 대해 자만하지 않겠습니다. 곧 다가올 봄처럼 따뜻한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해야겠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마음을 다잡기 위해 저번에 이어 <이터널 선샤인>에 대한 이야기를 할까 해요. 제가 가장 좋아하는 장면은 조엘과 클레맨타인이 몬토크행 기차에서 만나는 부분입니다. 특히 앞뒤로 앉아 이름을 나누고 소소한 이야기를 주고 받다가 클레맨타인이 조엘 옆에 앉으면서 인연이 시작되는 순간을 너무나 좋아합니다.
사랑하는 이와 마주 보고 앉을 때와 나란히 앉을 때의 느낌이 묘하게 다른 것 같아요. 나란히 앉을 때 좀 더 관계에 대한 무게감이 느껴집니다. 마주 보고 앉을 때에는 그 사람밖에 보이지 않는다면 나란히 앉을 때에는 함께 걸어가야 하는 길이 보이기 때문인지도 모르겠어요. 그래서 그 날 오후, 제 첫사랑이 제 옆에 앉으려 할 때 묘하게 슬픈 느낌이 들었나 봅니다. 그의 얼굴만 들여다보면 아무 일도 일어날 것 같지 않은데 막상 손을 잡고 앞을 바라보다 보면 덜컥 겁이 날 때가 있어요. 도망가고 싶은 유혹이 강렬하게 들 때가 종종 있었습니다. 그러나 시간을 되돌릴 수만 있다면.......
마찬가지로 돌이켜 보면 제 마지막 사랑과 현실적인 이야기를 가장 많이 한 것도 차 안, 나란히 앉은 자세였습니다. 저는 그것이 차 안이라 좀 더 두려웠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나란히 앉은 자세로 손을 잡으며 앞을 보고 있자 하니 자동차의 빠른 속도가 감당이 되질 않았습니다. 현실적인 문제들이 빠르게 내 눈 앞에 다가올 때마다 저는 그 속도감을 강제로 멈출 수 있는 빨간 신호등만을 찾으며 전전긍긍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시간을 되돌릴 수만 있다면....... 저는 한 번도, 그러니까 첫 번째 이별 때나 두 번째 이별 때에도 최소한 '그' 앞에서는 펑펑 울지 않았습니다. 근데 그게 가장 후회가 돼요.
조금만 기다려 줄 수 있나요?라고 솔직하게 말하면 되는 것이었는데. 기다려 달라고 하면 그 사람이 도망갈까, 이 행복한 순간이 사라질까 두려웠습니다. 그럼에도 그때 제 솔직한 감정, 두려워하는 마음을 털어놓으면서 조금씩 해결해 나갔다면 좋았겠지만 저는 늘 그래 왔듯 제 무모한 밝음으로 모든 문제를 덮으려 하였고 결국엔 참다못해 편지에 제 고민을 털어놓고 제가 먼저 도망간 것이었습니다. 모든 문제를 그에게 떠맡긴 것이죠. 얼마나 무겁고 버거웠을까요.
이기적이었습니다. 사랑한다는 건 마주 보는 것이 아니라 같은 곳을 바라보는 것이란 말의 의미가 새삼 새롭게 다가옵니다. 그래요, 진정으로 사랑한다는 건 손을 잡고 앞으로 걸어나갈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한 것이었어요. 저는 이번에도 제 상처에 용기를 내지 못하였고 스스로가 용기를 내지 못하는 걸 상대가 내주기만을 기대하였습니다. 부당했다는 것을 인정합니다. "늘 밝아 보이려고 하는 것도 일종의 완벽주의야."라고 친구는 따끔하게 말했습니다. 완벽하게 숨기지 못한다면 그건 완벽한 것이 아닌 완벽주의에 불과한 것이었어요.
다시, 사랑이 온다면 저의 불완전함을 좀 더 스스로 너그러이 받아들일 줄 알았으면 좋겠습니다. 그런 다음 “Can I sit by you?” 당신 옆에 앉아도 되나요? 좀 더 솔직하고 용기 있게 사랑하는 사람 옆에 앉고 싶어요. 이번에는 그 손을 잡고 앞으로 한 발짝 내딛을 수 있기를 바라여 봅니다. 그러려면 일단 서로를 똑바로 바라볼 수 있어야 하는 것 같아요. 그런 다음 서로가 가진 단점에 대해, 아픔에 대해 괜찮아요.라고 말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야 앞으로 나아갈 힘과 용기를 얻을 수 있을 테니까요.
참고로 by를 우리는 문법적으로 전치사라고 합니다. 전치사는 주로 방향이나 위치 그리고 상태를 나타낼 때 쓰여요. 근데 우리는 '옆에'라는 영어 표현으로 'next to'를 더 많이 알고 있을 거예요. 실은 대학시절 같은 과 친구가 관심 있는 외국인 남자에게 Can I sit by you? 라 말한 것이 너무나 멋져 보여 그 이후로 next to 대신 by라는 표현을 더 많이 쓰게 되었습니다.
by는 '옆에'라는 뜻 외에도 '~로 인하여'라는 뜻으로 더 자주 사용됩니다. I was made happy by you. 가령 당신으로 인해 나는 행복해졌어요. 이런 문장을 만들 때 사용하는 전치사가 by인 것이죠. 물론 서로 상황에 따라 뜻이 다르게 해석되는 것일 뿐이나, 어쩐지 Can I sit by you?라는 말이 제게는 옆에 앉아도 될까요, 이상의 의미로 다가오는 것 같아요. 단순히 내 의지로 그 사람 옆에 앉는다기 보다는 그 사람으로 인한 <끌림>이 저를 그곳으로 인도한 것 같은 느낌을 주어요.
참고로 sit은 stay in touch(계속 연락하자)의 약자로 채팅용어로 쓰이기도 한다는 점에서 Can I sit by you는 잠시 당신 옆에 머무르기보다는 당신으로 인해 마음이 끌리니 계속 연락해도 될까요, 의 의미로 재미 삼아 해석해 볼 수도 있겠네요. 살다가 그 강렬한 끌림이 제게 다시 한 번 찾아오기를 바라여 봅니다. 세 번째 만남에서는 좀 더 진솔하고 자연스럽게 반응하고 싶습니다. 다시, 제 삶에 봄이 다가와 준다면, 아직은 이름 모를 당신 곁으로 제가 용기 내어 다가가겠습니다:) 또다시, 그러나 이번엔 한 걸음 더 가까이.
한 인생을 살아가면서 가슴속에 이런 절박한 사랑이 남아 있는 이들이 몇이나 될까?
이것은 단지 그 사랑의 결말이 비극이냐, 희극이냐 하는 문제가 아닐 것 같다.
애절한 기억 속에 살아가는 생이 더러 가슴 저리게 아플 수도 있고,
혹은 남은 생을 더욱 뭉클하게 해 줄 수도 있겠지.
중요한 것은 더듬어 볼 수 있는 애틋한 추억이 있다는 것이다.
-냉정과 열정사이 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