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의 중심에서 사랑을 외치다(1)

영어를 배운다는 것에 대하여

by 봄이




*오늘의 글은 아이유의 <금요일에 만나요>와 같이 듣는 걸 추천해 드려요:) 이유는 거창하지 않고요 단지 금요일에 제 글을 시작했기 때문에 왠지 금요일에 읽어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불!금! 우리 금요일에 뜨거운 마음으로 만나요.


반가워요, 낯선 그대들.






‘선생님, 영어는 왜 배워요?’라는 질문을 많이 받습니다. 그러게요. 한국어 맞춤법도 종종 틀리는데 영어를 배우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싶지만 입시와 취업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없는 한 오늘날, 많은 사람들에게 있어 영어란 그림자처럼 따라붙는, 떼어내고 싶어도 도무지 떨쳐낼 수가 없는 존재가 아닌가 싶습니다. 그렇지만 교사로서 ‘대학 잘 가기 위해’, ‘취업 잘 하기 위해.’라고 선뜻 대답하기가 참 어려워 웃음으로 대답을 회피하곤 했던 것 같아요.





저는 경기도에 있는 한 남중에서 영어교사로 근무하고 있습니다. 2015년에 신규교사가 되었으니 이곳은 저의 첫 발령지이기도 합니다. 지난해 아이들과 1년을 보내면서 느꼈던 것은 아직 어린 남학생이라 그런지 또래의 여학생들에 비해 공감능력이 떨어진다는 것이었고 그러다 보니 의사소통을 하는데 있어 왕왕 어려움을 겪곤 했었지요. 물론 신규교사의 미숙함이 낳은 결과일 수도 있겠으나 거친 남학생들과 이래저래 부딪히는 일이 많아 본의 아니게 서로 상처를 주고받으며 쉽지 않은 한 해를 보냈던 것 같습니다. 그래도 한 해를 마무리하며 돌이켜 보았을 때 미숙할지언정 저는 아이들을 참 좋아하며, 그 아이들이 저를 좋아해 줄 때 참 많이 행복하다는 걸 느낄 수 있었네요. 물론 매 순간 즐겁다면 새빨간 거짓말이겠지만 그럼에도 저는 제가 교사가 된 것에 너무나 감사하고 행복합니다. 올해는 작년보다 더 좋은 선생님이 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여하튼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자면, 최근에 놀라운 경험을 했습니다. 참 변할 것 같지 않던 아이들의 거친 면이 또래의 여학생과 교제하는 과정을 통해 많이 순화되는 것을 보았네요. 늑대 같은 녀석들이 여학생들 앞에서 양의 탈을 쓰고 여학생들이 쓰는 말투를 그대로 쓰며 사랑을 나누는 모습을 보자 하니 기가 차면서도 한편으로는 작은 교실 안의 교육, 즉 공교육의 한계를 실감하기도 했지요.



학교를 다닌다는 것의 의미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된 계기였습니다. 학교는 왜 다니는 걸까요? 나 혼자 잘 나가기 위해서가 아니라 훗날 더불어 살아가기 위함이 아닌가요? 그런데 오늘날 학교에서 가르치는 지식은 오히려 아이들을 이기적으로 만들 때가 많은 반면 미숙하지만 건전한 이성교제는 아이들의 인성적인 측면을 알게 모르게 한 단계 더 끌어올리고 있었습니다. 그러니 ‘지금은 공부해야 하는 시기이니 연애는 사치다.’라는 말은 사실 더불어 사는 법을 가르치는 공교육의 기본 정신에 위배되는 것이 아닐까 싶네요. 사랑은 교육의 극치이자 최종 목표이기에 교육의 또 다른 이름이기도 하다고, 저는 개인적으로 그렇게 생각합니다.



물론 대개 어른들은 아이들의 이성교제에 대해 부정적입니다. 저 또한 10대의 사랑을 긍정적으로만 보려는 것은 아닙니다. 성인들 간의 사랑도 미숙할 때가 많은데 하물며 아직 몸도 마음도 미숙한 아이들 간의 사랑이 성숙하기를 바라는 건 무리겠지요. 그러나 미숙하고 두렵다 하여 시작조차 하지 않은 것은 어리석은 일이며 성숙함은 수많은 시행착오를 바탕으로 이루어진다는 점에서 미숙함이 사랑을 반대하는 이유가 될 수는 없다 생각합니다. 결국 교육의 궁극적 목표가 사랑이라면 교사는 아이들이 그 시행착오를 잘 겪을 수 있도록 사랑하는 법을 가르쳐 주는 길잡이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요. 즉 사랑 자체는 늘 무결점일 수밖에 없지만 사랑을 하는 방식에는 불완전한 인간이 하는 것인지라 결점이 늘 생기는 것이므로, 무조건 사랑하는 것을 반대하기보다는 사랑이 바람직하지 않게 흘러가는 것을 반대해야 하는 것이겠지요. 또한 수능점수는 아이들의 인성과 비례하지 않으며 아이들의 행복지수의 척도가 되지도 않습니다. 제 소견이긴 하지만 제대로 사랑할 줄 아는 아이는 설사 유명한 대학에 들어가지 못하더라도 더불어 살 줄 알기에 좋은 사람들과 더불어 풍요롭고 행복한 삶을 살게 될 거란 거예요. 그러니 지금 이 순간, 아이들이 인간의 참 아름다운 본능인 사랑의 감정을 느낀다면 그것을 희생시키지 않는 것이 수능점수만을 위해 사는 것보다 훗날 더 값진 선택이 될 거라 믿습니다.



그렇다면 더불어 산다는 것은 무엇일까요. 여기엔 남을 배려하고 관계에 책임을 지는 것이 포함이 되겠지요. 한 마디로 이기적으로 자신의 욕망만을 충족시키는 것이 아닌, 당신과 더불어 성숙하게 사랑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바라건대, 제가 가르치는 아이들이 단순히 남들보다 영어단어를 좀 더 안다고 으스대는 사람이 아니었음 합니다. 또한 저의 제자는 영어점수가 전보다 떨어진 것을 삶의 절망처럼 받아들이는 작은 그릇이 아니기를 진실로, 진실로 바랍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교사로서, 저 스스로부터가 아이들에게 차가운 지식만을 주입하는 것이 아니라 그 지식을 따뜻한 가슴으로 품어내고, 풀어낼 줄 아는 사람으로 길러내는 데에 주안점을 두어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즉, 제가 이 시점에서 해야 할 일은 영어를 배운다는 것과 사람을 사랑하는 것 사이에 다리를 놓아주는 것이겠지요. 표면적으로는 전혀 관련 없는 두 가지를 연결해야 하니 억지스러울 수도 있겠지만 영어든 수학이든 그 어떤 과목이든 간에 교육의 목표가 사랑이라면 반드시 해야 할 작업이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따라서 지금 제가 쓰고 있는 글은 바로 저의 이러한 교사로서의 소망과 소명의식으로 시작된 것이라 할 수 있겠네요.



서점에 가면 셀 수 없을 정도로 참 많은 영어 문제집과 참고서가 비치되어 있습니다. 문제집을 고르는 주요한 기준은 대부분 좀 더 쉽게 영어를 잘 할 수 있는 데에 있겠지요. 그래서 일까요? 참 다양한 문제집과 참고서가 비치되어 있지만 그렇다고 각각의 것들이 지니고 있는 내용이 획기적으로 다르진 않은 것 같아요. 더군다나 그 어떤 것도 왜 영어를 배워야 하는지, 영어를 배우는 것이 내 스펙이 아니라 한 인간으로서 내가 삶을 살아가는데 어떤 도움이 되는지를 스스로에게 질문하게 하지는 않는 것 같습니다. 사랑으로 비유하자면 사랑을 하는 요령을 가르쳐 줄 뿐 사랑의 본질에 대해 생각할 기회는 주지 않는다 할 수 있겠네요.



물론 기왕 하는 거 사랑을 요령 있게, 똑똑하게 한다 해서 나쁠 건 없지요. 그러나 사랑의 얼굴은 입체적이라 일차원적인 요령만으로는 한계가 있는 것도 분명한 사실입니다. 요령만으로 사랑을 익히는 사람들의 연애가 불안정하고 쉽게 깨지는 이유는 사랑을 마치 요령만 터득하면 되는 게임처럼 생각하기 때문이 아닐까요? 게임을 하는 데에는 많은 생각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무엇보다도 재미가 있다면 지속할 수 있지요. 그러나 재미가 없으면 언제든 발을 뺄 수 있는 것이 게임의 속성이기도 합니다만 잘 만든 게임은 정복하는 과정을 통해 지속적으로 우월감과 쾌감을 느낄 수 있도록 치밀하게 설계가 되어있는 것이 특징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사랑은 게임이 아니잖아요. 사랑은 불완전한 사람 사이의 일이라 치밀하게 설계되어 있기보다는 오히려 허술하고 게임처럼 늘 자극적이기보다는 어느 순간 일상의 한 부분이 되어버리고 말지요. 그래서 항상 뜨겁고 재미나기 보다는 권태기가 오는 것이고 때로 그 불청객이 관계를 위태롭게 만들기도 합니다.



여기서 사랑을 지킬 수 있는 사람은 최소한 사랑을 게임 이상의 것으로 생각하는 사람일 거예요. 사랑이 흔들릴 때 쉽게 발을 빼지 않고 용기 있게 그 사랑을 지킬 수 있다는 건 최소한 사랑 그 자체가 갖고 있는 의미와 가치에 대해 알고 있는 사람이겠지요. 즉, 내가 왜 사랑하는지, 내가 무엇을 사랑하는지에 대해 스스로 질문하고 고민해 본 사람일 것이며 그 사랑의 의미와 가치는 단순히 요령을 익힌다 하여 알 수 있는 것이 아니겠지요. 오히려 사랑에 대해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면서 그 질문의 무게와 깊이를 키워나가는 자만이 얻을 수 있는 삶의 선물이라 생각합니다.





제대로 사랑할 줄 안다는 건 삶에 있어서 얼마나 큰 축복인가요. 그런 의미에서 배움이란 궁극적으로는 사랑을 위한 것이 되어야 하며 사람의 행복에 기여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이지 단순히 스펙의 문제가 되어서는 안 된다 생각해요. 따라서 제 글의 목표는 영어단어를 좀 더 쉽게 외울 수 있는, 영문법을 좀 더 빠르게 익힐 수 있는 요령과는 거리가 멀다 할 수 있겠습니다. 영어를 미국 사람들이 사용하는 글로벌 시대에 꼭 배워야 하는 언어라는 관점에서 탈피해, 사람과 사람을 잇는 소통의 도구라는 관점에서부터 제 글을 시작하려 하며, 그 소통이 당신을 이해하고 당신과 가까워지는 가장 주요하고 중요한 수단이라는 점에서 제 글을 풀어 나가보려 합니다. 바라건대 글을 마무리할 때쯤 저 스스로도 영어를 배운다는 것이 사람을 이해함으로써 더 사랑하게 되는 과정이라는 점에 보다 더 큰 확신을 가질 수 있기를 바라여 봅니다.


따라서 저는 영어 단어와 영문법 자체에 대한 지식이 아닌 그 지식을 관장하는 지식에 대해, 즉 메타 지식적인 관점에서 영어를 조망해 볼 것입니다. 제 글은 영어단어와 영문법을 좀 더 쉽고 빠르게 배우는 데에는 별로 도움이 되지 않겠지만 지루하게 암기만 하다가 영어책을 던져버리고 싶은 지경에 이를 때 쉬이 포기하지 않게끔 힘을 길러주는데 도움을 줄 수는 있을지도 모르겠네요. 부디, 영어라는 것이 당신을 상품화하는 스펙의 한 종류로서만 머물기보다는 사람을 이해하고 사랑하는 또 하나의 삶의 길이 되길 조심스레 소망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