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어를 암기한다는 것의 의미
*오늘의 글은 아이유의 <복숭아>와 같이 듣는 걸 추천해 드려요:)
오 어떤 단어로 널 설명할 수 있을까
아마 이 세상 말론 모자라
-아이유의 <복숭아> 中
"영어를 잘 하려면 뭐부터 해야 해요?"와 같은 질문을 받을 때마다 저는 아주 교과서적인 대답을 합니다. "일단, 단어를 많이 외우세요." 단어만 많이 알아도 독해의 70%가 가능하다는 말이 있지요. 저 통계가 정확한지는 잘 모르겠으나 확실히 어휘력이 좋을수록 독해든 회화든 유리 해지는 건 사실이에요. 문법을 모르는 한 뜻을 정확하게 파악하기는 힘들겠지만 소위 시험에서의 찍기 능력(?) 혹은 임기응변이 좋아지는 것이죠. 우리가 해외여행 갈 때 굳이 그 나라의 언어를 마스터하지 않아도 단어 몇 개로 대강의 의사소통이 가능하잖아요? 단어 암기는 영어공부를 하는데 있어 가장 손쉬우면서 빠른 시간 내에 실력이 향상되는 듯한 느낌을 주는 학습법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단순 암기는 정말인지 너무 지루하다는 거....... 지루한 것도 짜증 나는데 심지어 잘 까먹기까지 해서 때로 내가 암기를 하는 것인지 삽질을 하는 것인지 분간이 안 간다는 거....... 저도 이미 경험한지라 잘 알고 있습니다. 게다가 외워야 할 단어는 끝이 없기에 단어 암기는 때로 시지프스의 형벌처럼 절망적으로 느껴질 때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니 분명 외우기만 하면 되는 것인데도 금방 질려버려 중도포기 현상이 많이 나타나는 것도 충분히 이해할만한 현상인 것이죠. '내가 이 정도로 끈기가 없는 인간이었나?' 자괴감이나 들기도 할 것이고 심할 경우 에라이 모르겠다, 흥미를 잃고 영어에 대한 끈을 아예 놓아버리는 경우도 있어요. 영어공부의 가장 기초가 되는 것이 단어 암기인데 첫 관문도 넘지 못한 채 그만둬 버리는 것이죠.
간혹 "단어를 쉽게 외우는 방법을 알려주세요." 하며 단어 외우기에 지친 학생들이 저를 찾아옵니다. 공부를 잘 하든 못 하든 단어 외우기는 누구에게나 참 재미없는 과정인 것 같아요. 그러나 안타깝게도 단어를 쉽게 외울 수 있는, 누구에게나 적용되는 단 하나의 비법은 존재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나에게 쉬운 방법이 상대에게는 어려울 수도 있는 것이니까요. 다만 효과적인 방법은 말씀드릴 수 있을 것 같아요. 무작정 욕심내서 하루에 많이 외운다고 그 단어가 내 단어가 되지는 않는 것 같습니다. 많이 외우기보다는 외운 단어를 많이 복습하는 것이 더 중요한 것 같아요.
그러고 보면 단어 외우기는 사람의 마음을 얻는 방법과 비슷한 측면이 있는 것 같습니다. 많은 사람을 만난다 해서 그 많은 사람들이 한 번에 내 사람이 되지는 않지요. 단 한 사람이라도 시간을 들여 자주 만나고 얘기를 나누면서 서로를 향한 애정관 신뢰를 쌓아가는 것. 이것이 진정한 의미의 마음 얻기가 아닌가 싶습니다. 즉, 단순 기계학습이라고 생각했던 단어 암기가 어쩌면 우리에게 사람의 마음을 얻는 법을 알려주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어떤 단어를 외우고 자주 보는 것. 그것은 우리가 가까워지고 싶은 누군가의 이름을 기억하고 자주 만나는 것에 비견될 수 있으니까요.
물론 그럼에도 단어 외우기는 참 지루합니다. '신조어'라는 불청객들이 불쑥불쑥 나타나니 영어교사인 저 또한 단어 외우기의 굴레에서 영원히 벗어날 수 없을 거예요. 이는 영원히 지루함의 고통을 감수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하지요. 혹시 <어린 왕자> 좋아하세요? 어린 왕자가 사는 소행성 B16에는 어린 왕자가 사랑하는 단 한송이의 장미가 있습니다. 그러나 어린 왕자는 그 장미를 떠나 다른 별 여행을 하게 되지요. 그리고 세상에 하나밖에 없다고 믿은 자신의 장미와 비슷하게 생긴 5천 송이의 장미를 마주하게 됩니다. 그것과 관련된 구절을 함께 나눠보려고 해요. 사람한테 실망하여 인간관계에 회의가 들 때마다 저는 다음 구절을 읽고 다시금 마음을 다잡아 본답니다.
"너희들은 내 장미와 전혀 같지 않아. 너희들은 아직 아무것도 아니야."
어린 왕자가 꽃들에게 말했다.
"(.......) 너희들은 정말 아름다워. 하지만 텅 비어있어. 너희들을 위해 죽을 사람은 하나도 없을 테지. 물론 지나가는 사람이 본다면 내 꽃이나 너희들이나 비슷하다고 생각할 거야. 하지만 그 꽃 한 송이가 나에게는 너희 모두를 합친 것보다 더 중요해. 내가 물을 주고 유리 덮개를 씌워주고 병풍을 쳐서 보호해 준 꽃은 그 꽃뿐이니까."
실은 말이에요, 사람의 마음을 진실로 진실로 얻는 것은 생각보다 복잡하고 어려운 일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자주 만나 얘기를 나누면 분명 타인보다는 가까워지겠지만 그렇다고 그것이 꼭 마음을 얻었다는 것을 의미하진 않지요. 같은 반 친구들, 회사 동료들과 자주 만나고 자주 말을 섞지만 그것이 그와 나 사이의 교집합이 넓어지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 것처럼....... 그 사람에게 단순히 시간을 내어주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을 위해 시간을 내어줄 때 우리는 상대방의 마음을 얻을 수 있는 것 같아요. 어린 왕자가 장미에게 한 것처럼 나의 필요에 의한 만남이 아니라 당신의 필요를 채워주고자 할 때 당신의 마음도 함께 사랑으로 차오르는 것 같습니다. 그러고 보면 단어 암기는 사람의 마음을 얻는 것보다는 꽤나 쉽다고 할 수 있겠네요. 그저 시간 날 때 눈길 한 번만 더 주면 됩니다. 눈길을 많이 줄수록 그 단어는 당신의 단어가 될 거예요. 그리고 모든 만남은 서로를 인식하는 것으로부터 출발한다는 점에서 눈길 주기는 당신이 관심 있는 누군가에게 다가가는 가장 기초적인 연습이 될 수도 있을 것입니다.
물론 사람의 성향에 따라 이타적인 사람이 있을 수 있고 좀 더 개인주의적인 사람이 있을 수 있을 거예요. 어떤 것이 더 좋다고 말할 순 없지요. 다만, 그 사람의 성향과는 별개로 타인의 필요를 충족해주는 것이 손해라 생각한다면 그건 큰 오산이라 생각해요. 철학자 에리히 프롬에 따르면 성숙한 사랑은 "나는 당신이 필요해요. 왜냐하면 당신을 사랑하기 때문이에요."라고 말한다지요. 누군가에게 필요한 존재가 된다는 것, 그것은 이 세상에서 당신을 사랑하는 존재가 한 명 더 생긴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즉 더 많은 사람의 필요가 될수록 더 많은 사랑을 받게 되는 것이지요. 사랑으로 가득한 삶은 상상만 해도 얼마나 풍요로운가요.
물론 미성숙한 사랑은 이렇게 말한다고 합니다. "나는 당신을 사랑해요. 왜냐하면 당신이 필요하기 때문이에요." 한마디로 사랑을 앞세워 사람을 호구로 만들어버리는 나쁜 놈들도 이 세상에 많다는 것이겠지요. 그렇다면 그 사람의 필요가 사랑을 근간으로 하는지는 어떻게 알 수 있을까요? 즉 그 사람이 나에게 정말 잘 맞는 사람인지, 정말 중요한 사람인지 어떻게 알 수 있을까요? 정답은 없지만 아무래도 다양한 사람들과 많은 교류를 하다 보면 때로 상처를 받기도 하겠지만 그만큼 사람을 보는 혜안이라는 것이 생가지 않을까요?
고로, 상대방의 이름을 외웠으면 그 이름을 많이 불러줄 상황에 직접 뛰어들어가는 과정이 필요한 것이지요. 처음 단어를 외울 때는 자주 쓰이는 중요한 단어와 간혹 전문잡지에나 나올법한 단어를 구별하기 쉽지 않을 거예요. 같은 뜻을 가진 단어일지라도 상황에 따라 더 적절하고 자주 쓰이는 중요한 것들이 있지요. 그걸 판단할 수 있는 능력은 일단 단어를 외우고 그 단어들이 실제로 쓰이는 사례들을 많이 접해보는 수밖에 없어요. 나에게 소중한 사람, 중요한 사람을 가려낼 수 있는 방법이 사람 간의 직접적인 교류를 통해서이듯 단어 또한 실제 상황, 실제 사례 속에서 살펴보아야지 그 적절성과 중요도를 가늠할 수 있는 거랍니다.
단어 암기를 그저 암기의, 암기에 의한, 암기를 위한 기계적 학습이라고만 생각한다면 그 시간은 너무나 의미 없이 무미건조하게 흘러갈 거예요. 결국 언어라는 건 당신과 나사이에 다리를 놓을 수 있는 소통을 위한 것 아니겠어요? 그러니 그 시간을 만남의, 만남에 의한, 만남을 위한 과정이라 생각하며 하다 보면 조금은 덜 지루하고 조금은 더 가치 있는 시간이 될 거라 생각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