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사 = 바람둥이 B형 남자
*오늘의 글은 가인의 노스텔지아(Feat. 에릭)와 같이 듣는 걸 추천해 드려요:)
문장 하나를 만들어 보겠습니다. Beautiful love makes life beautiful. 이 문장에 나온 단어들이 그리 어렵지는 않을 것입니다. beautiful은 아름답다, love는 사랑, make는 만들다, life는 삶이라는 뜻을 지니고 있지요. 저 문장을 해석하자면, 아름다운 사랑은 삶을 아름답게 만들다, 가 되겠네요.
다시 한 번, 문장을 찬찬히 들여다봅시다. love의 혈액형 기억나시죠? A형과 O형이라고 했습니다. 즉, love는 명사인 동시에 동사라 하였죠. 그렇다면 언제 명사이고 언제 동사인지 어떻게 구분할 수 있을까요? 답은 간단합니다. 수식 관계, 즉 love라는 단어 가까이에 머물면서 love의 뜻을 꾸며주는 단어가 어떤 품사인지를 파악하면 된답니다.
예를 들어, 위의 문장에서 love 가까이에 머물면서 꾸며주는 건 beautiful이에요. 고로, 아름다운 사랑이라고 해석할 수 있으며 아직 배우진 않았지만 곧 배우게 될 형용사가 beautiful의 품사입니다. 형용사는 명사 바라기예요. 일편단심 명사만을 수식하는데요, 저는 이를 좀 더 재미있게 작업 건다.라는 표현으로 설명할까 합니다.
명사에게만 작업 거는 일편단심 형용사는 명사를 유혹하기 위해 물불 가리지 않는답니다. Beautiful love에서 보는 것처럼 명사를 졸졸 따라다닐 뿐만이 아니라 life beautiful에서 보는 것처럼 때로 명사가 가는 앞길을 막으며 자신을 어필하려 하지요. 즉, 형용사는 명사의 앞뒤에 나타나 해당 명사를 수식할 수 있다는 뜻입니다. 이런 형용사 같은 남자, 도대체 어디에 가면 찾을 수 있는 건가요? 이 세상의 반은 남자라는데 도대체 나의 짝은 어디에 숨어 있는 걸까요? 길을 걷다 예쁘게 손을 잡고 걷는 커플을 보면 정말인지 사랑하고 싶어 져요.
그런데 여기서 잠. 깐. 아무리 사랑이 하고 싶다 한들 아무 남자와 사랑을 시작할 수는 없는 노릇이라 솔로의 기간이 길어지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비겁한 변명인가요?ㅎㅎ 여하튼 이 세상에는 형용사 같은 남자만큼이나 부사 같은 남자도 많답니다. 부사, 지금 이 글의 주제인데요, 부사는 명사 바라기인 형용사와는 달리 끼가 많아 많은 여자들에게 작업을 거는 나쁜 남자와 같은 존재랍니다. 자, 지금부터는 부사가 사용된 다음 문장들을 살펴보며 부사의 바람기를 낱낱이 파헤쳐 볼까 하는데요 그 전에 질문 하나 하겠습니다.
Love sincerely에서 love의 혈액형은 무엇일까요? 이미 일전에 Love의 혈액형은 A형일 수도 O형일 수도 있다 하였어요. 힌트를 드리자면, sincerely는 진심으로 라는 뜻을 가지며 부사입니다. Love를 꾸며주는 녀석이 형용사가 아니라 부사지요? 그럼 Love는 A형 명사는 아닌 거네요. 자, 답을 찾으셨는지요. 답은 생각보다 간단합니다. 부사의 꾸밈을 받는 Love의 혈액형은 O형이며 이는 곧 love의 품사가 동사라는 것을 의미합니다. 해석하면, 진심으로 사랑하다가 되겠네요. 그렇다면 진심으로, 온 마음을 다해 사랑한다는 것의 진정한 의미는 무엇일까요? Love sincerely 여기에 대한 제 나름의 생각을 영어문장으로 만들어 볼까 해요. 그냥 알려드리면 재미가 없으니 또 문제! 선택지는 두 개! 맞을 확률 50퍼센트! 다음 중 어느 것이 제 생각과 부합할까요?
1) Very frankly, I love you sincerely because you are very beautiful.
매우 솔직히, 나는 당신을 진심으로 사랑해요 왜냐하면 당신은 매우 아름답기 때문이에요.
2) Very frankly, you are very beautiful because I love you sincerely.
매우 솔직히, 당신은 매우 아름다워요 왜냐하면 내가 당신을 진심으로 사랑하기 때문이에요.
소설가 박상륭 씨는 아름다움을 앓음 다움이라 하였습니다. 즉, 고통을 앓은 사람 그리고 한 걸음 더 나아가 그 고통을 찬란한 슬픔으로 승화시킬 수 있는 사람....... 그리하여 때로 나의 고통이 당신의 희망이 될 수 있게 삶을 이끌 줄 아는 자. 그런 사람은 앓음답기에 아름답다는 의미가 아닐는지요. 단순히 외모가 예뻐서 호감을 갖게 된 거라면 1번과 같은 고백을 하는 것이 좀 더 진솔한 호감 표현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감정을 과연 사랑이라 포장해도 되는 걸까요? 아름답다의 어원이 앓음답다에 있는 것이라면 1번과 같은 고백은 오히려 사랑에 대한 모독처럼 느껴질 수도 있을 거예요. 어린 왕자는 말합니다. 자신의 장미꽃이 소중한 이유는 자신이 그 꽃에게 물을 주고 보호해 준 꽃이 오직 그 꽃뿐이기 때문이라고....... 때로 장미꽃은 수다스럽게 투덜대며 어린 왕자를 귀찮게 하기도 했지만 그럼에도 어린 왕자는 장미꽃을 자신의 장미꽃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그 꽃을 사랑했습니다.
사랑이란 어쩌면 ‘그렇기 때문에’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하는 것이 아닐까요? 그런 의미에서 제 생각은 1번보다는 2번에 더 가까운 것 같습니다. 그럼 다시 1번 문장을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Very frankly, you are very beautiful, because I love you. 실은 이 문장은 부사의 특성을 설명하려 제가 만든 문장입니다. 앞서 말했듯이, 부사는 어린 왕자나 형용사처럼 한 존재만을 바라보는 바라기가 아닌 바람둥이이죠. 소위 나쁜 남자 혹은 나쁜 남자의 대명사격인 B형 남자라 불리는 요 녀석은 양다리도 아닌 문어다리를 걸친답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명사에게만 작업 거는 형용사와는 달리 부사는 동사, 부사, 형용사 심지어 문장 전체에게 작업을 걸거든요. 희대의 카사노바인 셈이죠.
그럼 기왕 폭로하는 거, 어떤 식으로 작업을 거는지 더욱 상세히 따져보도록 하겠습니다. 일단 I love you sincerely에서 부사는 sincerely이며 love라는 동사를 유혹하고 있죠. 또한 very는 매우라는 뜻의 부사인데요, 문장에서 보시는 것처럼 very는 두 번 사용되었습니다. 첫 번째 Very는 frankly에게 접근하고 있어요. 보통 단어에 –ly가 붙으면 부사인 경우가 참 많은데요, 즉 여기서 very는 자신과 같은 부사에게 작업을 걸고 있는 것이죠. 두 번째로 사용된 very는 beautiful이라는 형용사 뒤에 바짝 붙어 호시탐탐 작업의 기회를 노리고 있네요. 고로 very는 부사와 형용사 둘 다 수식이 가능한 품사라는 것을 알 수 있겠지요? 마지막으로! Very의 구애를 받고 있는 frankly를 다시 한 번 봅시다. 그런데 어쩐지 frankly의 마음이 콩밭에 있는 것 같군요! 이럴 수가. 통 크게도 frankly는 쉼표 뒤에 나오는 문장 전체를 유혹하고 있는 것입니다. 배포가 이리 크니 당연히 Very 따위는 눈에 차지 않는 것이겠지요. 여하튼 부사, 요 녀석 얼마나 매력이 차고 흘러넘치면 이렇게 다양한 품사들과 스스럼없이 어울릴 수 있는 걸까요. 좋게 말하면 만인의 연인 나쁘게 말하면 말 그대로 나쁜 남자인 부사, 당신의 혈액형을 B형으로 임명(?)합니다. 땅땅땅!
그러나 이런 능력자 부사에게도 결코 유혹할 수 없는, 흔들림 없는 존재가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최강 철벽녀 ‘명사’입니다. 부사는 참 많은 것들을 수식하지만 명사만큼은 수식할 수 없다는 의미이지요. Love sincerely. 진심으로 사랑해,라고 말할 수는 있어도, 진심으로 사랑하는 듯 행동할 수는 있어도 그것이 반드시 Sincere love, 진실한 사랑을 뜻하지는 않는 것처럼 사랑한다는 표현이 반드시 사랑에 대한 본질을 의미하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사랑은 보고 듣고 만질 수 없다 할지라도 Love actually is all around you라는 말처럼 항상 어디에나 공기처럼 존재하는 것이니까요.
어쩌면 한 송이의 장미만 바라보는 어린 왕자와 명사 바라기인 형용사를 오늘날의 관점에서 바라본다면 바보 같은, 미련한 사랑일 수도 있겠네요. 자신의 뜨거운 욕정을 채우기에 급급하지 않고, 꾸준히 한 사람에게만 마음을 주는 일은 자기 자신보다 사랑하는 당신을 생각한다는 점에서, 내 앓음이 동반될지라도 사랑한다는 의미겠지요. 나 자신이 우선인 요즘에는 참 미련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때로 이런 미련한 사랑은 십자가를 진 예수처럼 느껴지기도 한답니다.
성당에 습관적으로 나가는 불량 신자이긴 하나 어찌 되었건 저는 천주교 신자입니다. 물론 성경을 지금껏 한 번도 제대로 읽지 않았습니다. 처음 성경을 펼쳤을 때가 기억나네요. 너무 충격적이라 기억이 납니다. "나를 따르려는 자는 자신의 십자가를 지고 오라."며 예수 그리스도가 말한 바로 그 부분을 펼쳤던 것이죠. 어린 가슴에 무지막지한 공포를 심어준 한 마디였습니다. 성당을 그만 다녀야 하나, 귀여운 고민을 했던 것도 같네요. 그렇지만 정말인지 저 구절을 처음 접했을 땐 너무 끔찍하게 느껴졌어요. 문자 그대로 십자가에 못 박힐 준비를 하라는 뜻으로 받아들였거든요. 근데 나중에 커서 곰곰이 생각해 보니 십자가는 생각보다 가까이에 있는 것이더군요. 직접 연애를 해보고 아무리 사랑할지라도 그 사람의 단 하나의 단점을 생선 가시처럼 견뎌하지 못하고 아파하며 엄살떠는 스스로를 바라보며 십자가의 의미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 볼 수 있었습니다. 한 사람을 한결같이 사랑할 수는 없겠지만 그리 하려고 노력할 수는 있기에 사랑한다는 것 자체가 그런 의미에서 앓음이라면, 사랑은 앓음 다운, 참으로 아름다운 십자가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사람들은 이 진실을 잊어버렸어. 하지만 넌 잊지 말아야 해. 언제나 네가 길들인 것에 책임을 느껴야 해. 넌 네 장미에 대해 책임을 느껴야 해."
여우가 말했다.
“나는 내 장미에 대해 책임을 느껴야 한다.”
잊지 않으려고 어린 왕자는 되뇌었다.
저는 신해욱의 <손>이라는 시를 무척 좋아해요. 별로 궁금하지 않으시겠지만 제 이상형은 손을 진심으로 잡아주는 남자예요. 시인 김춘수에게 이름을 부르는 행위가 꽃이 되는 것이 듯, 저에게 있어 손을 잡는다는 것의 의미는 스킨십 그 이상의 의미를 지니게 된답니다. 어린 왕자 식으로 말하면 서로가 서로에게 나는 당신을 길들일 준비가 되었어요, 하는 무언의 속삭임인 것이에요. 개인적으로는 천천히 손을 잡아주는 사람을 좋아하지만 일단 손을 잡으면 추진력 있게 밀어붙이는 남자에게 이성으로서의 매력을 느낍니다. 그리고 그 손 함부로 놓지 않을 남자에게 저는 기꺼이 길들여지고 길들이고 싶어 져요.
손
신해욱
너의 손가락으로 내 손을 잡고, 내 얼굴을 만지고,
그리고 네 얼굴을 만지는 것
사랑은 왜 세 사람이 할 수 없을까
왜 세상에는 너와 나밖에 없는 것일까
장갑을 벗고 창문을 짚었다
조심스럽게 떼어낸다면
손금이 유리에 옮겨 붙을 것이다
제멋대로 자랄지도 모른다
그래도 운명은 지켜져야 할 테니
창문이 깨지지 않도록 테이프를 붙이고
다시는 장갑을 벗지 말도록 하자
장갑 속에는 손이 두 개
하나는 나의 것 하나는 너의 것이었으면 좋겠다
그리하여 사랑은, 그것이 진정한 사랑이라면 열정 이상의 것이어야 하지 않을까요? 때로 어설픈 열정은 바람 앞의 촛불처럼 쉬이 꺼지기도 하며, 산불처럼 걷잡을 수 없는 열정은 바람이 불면 불수록 위태로워지듯 파국으로 치닫기도 하지요. 위기 앞에 쉽게 무너지거나 위기를 파국으로 몰아가는 열정. 기어이 모든 것을 앗아가 버리고 상처만 남기는 위험한 만남을 사랑이라 부르기엔 사랑은 그 이름만으로 너무나 고귀하고 영원합니다. 그렇다면 어떤 남자와 만나야 하는 걸까요? B형 남자만 피하면 될까요?
설마....... 정말 B형 남자가 나쁜 남자 이겠어요~ 단지 복잡한 성격의 부사를 좀 더 친근하게 설명하기 위해 애꿎은 B형 남자를 희생시킨 점 사과드립니다......ㅠ.ㅠ 실컷 B형 남자 욕하고서 이렇게 사과하는 저, 소심한 A형 같지만 전 대범하고 외향적이라고들 하는 O형입니다. 그러나 보시다시피 전 전혀 대범하지 않으며 외향적이기 보다는 방콕 하면서 책 읽고 글 쓰는 것을 좋아해요. 봐요, 혈액형은 정말 성격과 관련이 없다는 말이 맞지요?
따지고 보면 누구에게나 적용할 수 있는 나쁜 남자에 대한 정의는 없는 것 같아요. 오히려 겪어 보기도 전에 나쁜 사람이라고 편견을 갖는 것 만큼 나쁜 일도 없는 거잖아요. 단지 나와 맞지 않은 사람과 나와 더 잘 맞는 사람만이 있을 뿐이지요. 자신이 좋아하는 사람에 대한 기준을 분명히 하면 나와 어울리는, 운명적인 사람을 만날 확률이 더 높아지지 않을까요?
그런 의미에서 구인광고. 제 손 잡아주실 분을 찾고 있는 중이랍니다:)
-아직도 운명적인 사랑을 믿는, 영원히 철들고 싶지 않은 스물아홉의 처자 올림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