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kphrasis
El Paradiso (Suzanne Jackson, 1981–84)
완연한 봄
드리운 잎 아래
병의 입구가 하얗게 벌어져
푸른 혈관이 옅게 드러나고
나는 거기
빛을 올올이 풀어내며
반쯤 꺼낸 입맞춤을 걸어 둔다
흰 경사면을 타고
새순의 초록이 올라오다 멈추고
주황은
초대장의 봉랍처럼
또렷이 맺혀
너로 번져든다
사과 하나
색이 풀려 내려앉고
멍든 자주와 회갈빛이
속살을 더듬어
차갑게 눌러 둔다
잎맥은
살갗 밑의 지도처럼 선명해
손끝이 닿기 전부터 부서지고
흰 덩어리들은
거두지 못한 물감이 아니라
거두지 않기로 한 자리
푸른 여백 속에는
바다가 없다.
거두지 않은 빛의 잔상만이
파도처럼 맴돌고,
붓이 지나간 자리마다
희고 야윈 손톱달이
겹겹이 남는다.
어둠은 빛을 들여 더 짙어지고
빛은 어둠을 품어 더 낮아진다
낙원은
가까워질수록
닿기 직전의
간격에 머무는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