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kphrasis
선으로부터 (이우환,1980)
푸른 소멸의 궤적
완연한 봄
흐르는 것은
이름 붙이기도 전에
그저 빈 곳에서 태어나
아스라히 스러져간다.
첫 푸름은 생애 첫 부름인 양
가장 뜨거운 온도를 머금어
입 안에서 오래 굴린 이름을
끝내 삼켜버린 흔적처럼 진하다.
붓은 중력에 몸을 맡긴 채
제 몸의 푸름을 덜어 내며
사라지는 쪽으로만
다시, 다시— 성실해진다.
붙잡지 않기에
비로소 선명해지는 길.
내려갈수록 야윈 춤사위.
결 사이로 캔버스의 살결이 드러날 때
고독은 울타리가 아니라
닿지 못한 것들 사이에 생겨난
얇고 정확한 간격이 된다.
나는 그 소멸의 궤적을 보며
내가 얼마나 많은 날을
맥을 긋듯
스스로를 그어 왔는지 깨닫는다.
마지막 획은
흐려지는 것이 아니라
나직이 가라앉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