흙이 된 문장들/ 아나 멘디에타

Ekphrasis

by 완연한 봄
Ana Mendieta.png

Ana Mendieta/ Imagen de Yagul, from the series Silueta Works in Mexico (1973-1977, 1973)


흙이 된 문장들


말들은 너무 오래 발음되지 못한 채 입안에 고여있었다

출구를 찾지 못한 문장들이 부유물처럼 겹겹이 쌓여

기어이 목구멍을 가로막아 나의 진심은 단 한 번도 외출을 허락받지 못했다


침묵은 무심한 시간의 톱니와 맞물려 제 몸의 두께를 견고한 지층으로 다져갔고

나는 그 침묵의 부피에 비례해 세상과 겁을 달리하는 외딴섬이 되어 굳어갔다


입술을 건너가려 수없이 달싹이며 모음을 골라보기도 했으나

이미 뒤틀리고 굴절된 관계의 문법 속에서 나의 언어는 늘 한 음절쯤 모자란 채 끝이 났다


침묵은 그 어떤 유창한 언어보다 더 많은 뜻을 품고 있어

나는 빛이 닿지 않는 그늘 쪽으로 기울어진 몸을 기댔다

그러던 어느 날 발밑 어딘가에서 무언가 꿈틀대며 올라와

정강이를 스치며 비밀스러운 속말처럼 나직이 간질였다


그것은 썩어가는 퇴적물이 아니라

침묵의 계절을 견디고 살아남은 말이 벗어놓은 투명한 허물

나는 그 연약한 허물들을 조심스레 모아

볕 드는 자리 한 켠에 건내지 못한 안부들을 심듯 아주 깊숙이 묻어 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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