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답게 쓰기, 그게 전부다

by 릿다


모임에서 누가 말했다.
“글쓰기 좋아하시면 브런치에서 써 보세요.”


귀가 솔깃해 검색해 봤다. 그런데 글을 좋아한다고 누구나 쓸 수 있는 곳은 아니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메일 한 통이 왔다.
“안타깝게도 이번에는 모시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정중하지만 결국은 “당신 글, 별로예요.”라는 뜻이었다. 그래도 뭐, 나도 먹고사느라 바쁜 몸이니 한가롭게 상처받을 여유는 없었다. 괜찮다고 스스로 다독였지만, 역시 제외되면 기분이 좋을 리는 없었다.

그렇게 나는 계속하던 독서를 이어가며 ‘유능한 독서가’로 살아가던 중이었다. 그러다 또 다른 모임에서 누군가 글쓰기 모임을 하자고 제안했다. 글을 써서 독립출판을 하자는 거였다.

하지만 솔직히, 그 모임의 수준은 나를 포함해 누가 책을 사서 읽을 정도는 아니었다. 게다가 출판비가 너무 비쌌다. 자연스럽게 화제는 ‘브런치북’으로 옮겨갔다. 정보를 나눌수록, 가성비가 좋았다.

나는 다시 브런치에 도전했고, 몇 번의 탈락 끝에 겨우 ‘작가방’을 얻었다. 이곳에서 내가 좋아하는 글을 쓰고, 누군가 읽어 준다면 그만큼 감사한 일도 없다. 게다가 인터넷이지만 ‘브런치북’이라는 책도 만들 수 있다. 내 예명으로 검색하면 글도 뜬다. 하하하!


정말 작가가 된 기분이었다. 그리고 시중에 출판되지 않은 숨은 작가의 글을 발견했을 때, 유능한 독서가로서 느낀 그 기쁨이라니—
마치 콜럼버스가 신대륙을 발견했을 때의 마음 같았다. 조금 과한 표현일지도 모르지만, 그만큼 기쁘고 좋았다는 뜻이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고 브런치에 익숙해질수록, 묘한 불안감이 찾아왔다.
‘구독자 급등 작가’, ‘완독률 높은 작가’, ‘브런치 추천 작가’…
요즘은 ‘팝업에 초대된 VIP 작가’라는 말도 있다. 평생 신용카드 VIP도 못 돼 본 나는, 그런 단어들이 낯설었다. 낯설다 못해, 뉴스에서 말하는 ‘권력 V0’와 헷갈릴 정도였다.

‘구독’이나 ‘좋아요’ 같은 건 유튜브에서나 보던 단어였다.

그런데 어느새 나도 그 숫자들을 신경 쓰고 있었다. 그래도 나는 여전히, 반응이 거의 없는 곳에서 혼자 무언가를 끄적이고 있다. 좋아요가 없어도, 구독자가 늘지 않아도, 글의 끝—그 완결된 형태에 닿으면 그것이 내게 충만한 행복을 가져온다.


대부분의 작가가 공감과 반응 속에서 글을 이어간다면, 나는 그 무관심 속에서 오히려 문장의 질서를 세운다. 글은 내게 ‘대화’가 아니라 ‘정돈의 행위’다. 세상의 혼돈과 마음의 결을 다듬기 위해, 나는 문장을 구조로 세운다.


누군가에게 위로받기 위해서가 아니라, 삶의 의미가 흐트러지지 않게 내 안의 질서를 붙잡기 위해 쓴다. 그래서 내 글은 언제나 완결을 향한다. 끝이 있어야만 세계가 닫히고, 닫힌 세계 안에서 나는 잠시 숨을 고를 수 있기 때문이다.

이렇듯 반응이 없어도 글을 멈추지 않는 이유는, 글이 나로 하여금 다시 세상을 바라보게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바란다. 내 글의 시간은 느리지만, 오래 남기를.


그러니 나답지 않은 생각들은 잠시 내려놓자. 지금 이 자리, 이 장소에서 나다운 글을 쓰면 되지 않겠는가.

置かれた場所で咲きなさい.

(놓여진 곳에서 꽃을 피워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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