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회>
의금부 도사들이 밤낮없이 들락거렸다. 심문이 이어지고, 그 뒤로는 고문이 뒤따랐다. 자백을 재촉하는 고함이 옥사 안을 가득 메웠다. 만신창이가 된 호는 피와 먼지가 뒤엉킨 벽에 몸을 기댄 채, 의식이 까마득히 흐려져 갔다. 까무룩히 잠이 들려던 그때, 어둠 속에서 누군가 그의 이름을 불렀다.
“도련님...”
호는 힘겹게 눈을 떴다. 등불 아래, 유모가 앉아 있었다.
“뜨끈한 국물 조금 드셔 보세요.”
유모가 싸 온 음식을 떨리는 손끝으로 펼쳤다. 호는 힘없이 그릇을 들어 국물로 입을 적셨다. 유모는 그의 얼굴을 한참 바라보다가 나직이 물었다.
“...내가 원망스럽지요?”
호는 고개를 저었다.
“도련님은 분명 제 뱃속에서 난 분인데... 하는 짓은 마님을 꼭 빼닮으셨습니다.”
호는 희미하게 웃었다.
“그렇습니까...”
유모는 그 말에 눈을 떨구고 긴 숨을 내쉬었다.
“내 나이 열일곱에, 사모하던 분과 혼사가 정해졌습니다. 그때 얼마나 설렜는지 모릅니다. 부모님 몰래 연서도 주고받으며 혼롓날만 기다렸지요.
그런데 집안이 하루아침에 무너졌습니다. 내의원에서 일하던 아버지가 역모에 연루됐다는 고변 때문이었지요.
야속하게도... 아니, 처음부터 한패였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정혼자는 결국 우리 집안을 풍비박산 낸 그 집안과 혼례를 올렸습니다.
아버지와 오라비들, 어린 남동생까지 모조리 참수당했고... 어머니는 화병으로 먼저 세상을 떠나셨습니다.”
유모의 목소리가 떨렸다.
“계집이라 겨우 목숨을 부지한 저는... 몇 번이나 추노꾼에게 붙잡히기도 했습니다만, 끝내 도망쳐 옛 정혼자를 찾아갔지요.
옛정을 생각해 제발 버리지만 말아 달라고, 그 사람의 약한 마음을 붙들고 매달렸습니다.”
그녀는 떨리는 손으로 술을 따라 단숨에 들이켰다. 잔을 내려놓고도, 입술 끝이 잔잔히 떨렸다.
“그 후 곧 태기가 있었습니다. 나리는 기뻐했지요. 하지만... 그 아이는 나리의 아이가 아니었습니다.
달수를 채우지 못하고 태어난 아이는 계집아이였습니다. 갓난애가 내지르는 울음이 그칠 줄을 몰라, 이불로 덮어도 그 숨은 끊어지지 않았지요.
나는 그 어린 목숨보다... 아이가 나리의 씨가 아님을 들킬까 더 두려웠습니다. 그래서 어둠을 틈타 밤새 걸었습니다. 한겨울 찬바람이 살을 애던 새벽녘이었지요. 예전 노비로 살던 집 앞에 그 아이를 내려두고는... 그대로 돌아섰습니다.”
유모는 잠시 말을 멈추었다.
“가문의 죄로 천벌을 받은 걸까요. 안방을 차지한 마님은 끝내 아이를 낳지 못했습니다. 마님은 내가 가진 아이를, 마치 제 뱃속에서 나올 자식인 듯 애타게 기다렸습니다. 배를 부풀리고 복대까지 둘러 가며...”
유모의 입가에 씁쓸한 비웃음이 스쳤다.
“남의 배 빌려 얻은 아들인데도, 마님은 얼마나 아끼고 사랑했는지 모릅니다. 나는 그만, 도련님이 잠든 사이 목에 두 손을 목 위에 올려 본 적도 있지요.
마님이 피를 토하며 괴로워하는 꼴을 보고 싶었던 겁니다. 하지만 손끝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습니다. ‘정만은 두지 말자’ 다짐했건만...”
유모는 떨리는 숨을 길게 내쉬었다.
“마님은 내가 아무리 모질게 굴어도 사람 좋게 웃었습니다. 서방을 빼앗겨도 울지 않았고, 아들이 집을 나가도 눈물 한 방울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 웃음은 긴 세월 동안 단 한 번도 흐트러지지 않았습니다.”
그녀의 눈빛이 흔들렸다.
“도련님이 의원이 되어 돌아오신 모습을 보고, 마님은 마음 깊이 흡족해하셨습니다. 내 아비의 의술을 물려받은 아들을 보며...
그때, 내 안에 꾹꾹 눌러 두었던 감정이 끓어올랐습니다. 마님이 그토록 애지중지하던 귀한 아들을, 당신 손으로 무너뜨리면... 그때도 울음 하나 없이, 그 얼굴로 웃으며 버틸 수 있을까 싶었습니다.”
유모의 목소리는 점점 떨려갔다.
“...시술이 끝나도 달포쯤은 더 살 줄 알았습니다. 그러면 마님이 어떤 일을 저질렀는지, 어떤 후회와 한을 안고 저승길을 걸어야 하는지... 그 눈으로 똑똑히 보게 될 거라 여겼습니다.
그런데 정작 살아서 지옥 불을 걷고 있는 건 저입니다. 어째서일까요. 왜 나만 이 불행 속에서 헤어나오지 못하는 걸까요.”
그 말을 들은 호는 유모 앞으로 다가가 그녀를 꼭 끌어안았다.
“어머니... 이제 그만 하세요. 그 무거운 짐은 이만 내려놓으세요. 그 고통은 지금껏 겪으신 것만으로도 이미 충분합니다.
한 분이 저를 낳으셨지만, 두 분이 저를 길러주셨습니다. 제가 무얼 하든 기뻐하시고, 상처 입은 저를 위해 눈물 흘리시던 그 모습은... 두 분 모두, 자식을 품은 어머니의 모습이었습니다.”
유모는 이를 악물고 어깨를 떨었다, 끝내 참지 못하고 흐느끼며, 단 한 번도 ‘아들’이라 부르지 못했던 호의 품에 안겨 처음으로 무너져 울었다.
다음 날 새벽, 유모는 조용히 집을 나섰다. 그 후로 그녀를 본 이는 없었다. 양이와 달이 어멈이 사방으로 찾아다녔지만, 유모의 발자취는 끝내 찾아지지 않았다.
누군가는 새벽녘 뒷산을 오르는 여인을 보았다고 했고, 또 누군가는 강가에서 곱게 벗어 놓인 신발 한 켤레를 보았다고 했다. 그러나 그 모두, 유모의 것은 아니었다.
늦은 밤, 양이는 반닫이 속에서 작은 함을 꺼냈다. 그 안에는 오래전에 집을 떠나던 날, 어머니가 스승 호에게 맡겨 두었던 땅문서가 들어 있었다. 훗날 스승은 그것을 다시 건네며 말했다.
“네가 가지고 있다가, 진정 필요한 곳에 쓰거라.”
그때는 그 말의 깊이를 다 헤아리지 못했다. 몇 번이나 사양하다 결국 받았던 그 문서를, 이제는 떨리는 손끝으로 펼쳤다. 등잔불 아래, 양이는 붓을 들었다.
어머님께.
홀로 지내실 어머니, 이 불효한 딸을 너그러이 용서해 주십시오. 멀리서나마 마음을 다해 안부를 올립니다. 울음을 삼키며 집을 떠나던 그 날, 대문을 너머까지 들려오던 어머니의 애절한 울음이 오래도록 제 가슴을 따나지 않았습니다. 그 허전한 숨결을 떠올릴 때마다 제 마음은 저도 모르게 울었습니다.
어머니의 품 안에서만 살던 제가 세상으로 나와 처음 맞이한 현실은 생각보다 더 넓고, 더 거칠었습니다. 그 넓음은 자유가 아니라, 제가 스스로 감당해야 할 무게였습니다. 사람들은 땀과 눈물로 하루를 견디며 한 끼의 밥에도 감사했지만, 그 삶은 어머니께서 들려주시던 이야기처럼 다정하지만은 않았습니다.
가문의 그늘 아래 머물던 때에는 몰랐습니다. 세상이 이토록 거칠고, 사람의 하루가 이렇게까지 벼랑 끝에 가까운 줄은요. 굶주림과 분노, 하루를 견디기 위해 서로를 밀쳐내며 살아가는 이들을 바라보며 저는 문득 어머니의 말씀을 떠올렸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온실 속 화초를 허약하다 비웃지만, 그 그늘에 머무는 동안만은 천하가 평안한 법이지. 그러니 그 또한 감사할 일이다.”
그땐 몰랐지만, 어머니의 말씀이 세상을 향한 탄식이 아니라, 세상의 거친 바람을 아직 모르는 딸을 지키려는 마음이었음을 이제야 압니다. 그 평안함이 허약함이 아니라, 어머니의 사랑이 드리운 마지막 그늘이었다는 것을요.
저는 태어나기도 전에 정해진 운명과 가문의 틀에서 벗어나, 한 인간으로 살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조선의 여인으로서 그 자유를 온전히 누리기란, 하늘에 걸린 별 하나를 손에 쥐는 일처럼 아득했습니다. 더욱이 저처럼 어린 나이에 정혼하고 홀로된 여인에게는, 그 별빛조차 멀고 희미했습니다.
이처럼 여인으로 살아 보기도 전에 삶의 문이 닫혀 버린 저를 대문 밖으로 내보내 주신 어머니의 뜻 덕분에, 저는 다시 태어나 비로소 저 자신으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스승님은 지금 옥에 갇혀 계십니다.
서양 의술로 사람의 몸을 열어 병을 고쳤다는 이유로, 세상의 질서를 어지럽혔다는 죄를 받으셨습니다. 그러나 저는 압니다. 그분이 살리고자 한 것은 한낱 육신이 아니라, 어머니의 사랑처럼 제도와 신분 이전에 깃들어 있던 ‘희망’이었다는 것을요.
어머니, 저는 이제 감히 그분과 나란히 걸으려 합니다. 그분은 분명 원치 않으시겠지만, 저는 이대로 물러설 수 없습니다. 스승님은 조선의 제도라는 높은 담장 너머의 세상으로 저를 이끌어 주신 분입니다. 저 또한 그분이 스스로를 ‘죄인’이라 여기지 않도록, 그 곁에서 힘이 되고 싶습니다.
어머니께서 “요긴히 쓰라” 하시며 맡기셨던 그 땅문서로, 저는 그분의 생명을 되찾고자 합니다. 홀로 살아내겠다고 약속드렸건만, 결국 저는 다시 가문의 이름에 기대게 되었습니다. 이 절박함이 죄송스럽습니다. 그러나 그보다 앞서는 것은, 그분을 잃을 수 없다는 제 마음입니다.
부디 평안히 지내시고, 한동안 소식이 닿지 않더라도 저는 여전히 어머니의 딸입니다. 언젠가 다시 뵈올 날을 고대하며, 이만 붓을 놓습니다.
그리운 어머니께,
양이 올림
양이는 서찰을 고이 접어 큰절을 올렸다. 창으로 스며든 바람이 등잔불을 스치며 흔들렸다. 양이는 조심스레 문을 열고 어둠 속으로 걸음을 내디뎠다. 두려움보다 결심이 앞섰기에, 그녀의 발걸음에는 주저함이 없었다.
"호가 데리고 있던 그 아이로구먼."
당숙은 드문드문 난 염소수염을 쓰다듬으며 양이를 흘깃 바라보았다. 방석 위에 단정히 앉은 양이는 작은 함을 앞으로 밀며 조심스레 말했다.
"어르신께 도움이 될지 모르겠습니다만, 정성을 다해 준비해 보았습니다.“
당숙은 함을 끌어당겨 열었다. 전표를 하나하나 넘기던 그의 눈빛이 순간 번쩍였다. 생각보다 액수가 컸던 것이다.
"... 애썼구나!“
그는 함을 덮고 곰방대에 불을 붙였다.
"작은 성의는 잘 받았다. 이제 그만 가 보거라.“
양이는 고개를 숙여 공손히 절을 올리고 물러났다. 그녀가 사라지자, 집안 살림을 맡은 청지기가 방으로 들어와 함을 조심스레 들었다.
당숙은 곰방대 끝의 재를 툭툭 털며 나직이 물었다.
"호는... 아직 숨이 붙어 있는 게냐?“
청지기가 고개를 숙인 채 대답했다.
"듣기로는 아직 형이 집행되진 않았습니다만, 며칠 전부터 숭례문 근처에 처형장을 세운다는 말이 돌고 있습니다.”
당숙은 잠시 눈을 감았다가,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호는 여러모로 아까운 아이였지."
그의 목소리는 담담했지만, 끝자락에는 미세한 연민이 얇게 스며 있었다.
양이는 치마와 저고리를 벗고, 통이 넓은 바지를 입었다. 윗옷은 모래바람에 휘날리지 않도록 허리끈으로 단단히 묶었다. 머리에는 흰 천을 두르고, 그 위에 붉은 천을 꼬아 만든 터번을 눌러 썼다. 벗어둔 치마와 저고리는 가지런히 짐 속에 넣었다. 행장을 어깨에 멘 양이는 천막을 나섰다.
잔잔한 모래바람이 불어왔다. 붉은 사막 위로 일출이 눈부시게 떠 오르고 있었다. 그 빛은 길처럼 수평선을 따라 번져, 양이의 발끝까지 흘러내렸다.
그 찬란한 아침 빛을 등에 지고 걸어 나오던 순간- 낙타 등에 오르던 호가 몸을 돌려, 양이를 향해 손을 내밀었다.
※긴 시간 함께해 주신 모든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