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 10. 봄
나는 봄 냄새를 맡을 수 있다.
나 말고도 꽤 많은 사람들이 봄 냄새를 맡을 수 있어서 글의 서두에 자랑하듯 쓴 저 문장의 타이핑이 채 끝나기도 전에 약간 부끄러워졌지만, 봄 냄새를 맡을 수 있다는건 내가 좋아하는 내 능력 중에 하나라서 써 보았다.
은근하게 따스한 기운을 실은 바람에서 꽃도 아닌 풀도 아닌 달큰한 냄새가 난다. 피부에 닿는 공기가 몽글몽글하다고 느껴지면 어김없이 아 봄이 오고있다! 라고 생각이 든다.
올해는 언제쯤이었을까, 정확히 기억은 나지 않지만 길을 걸어가다 문득 봄냄새를 맡았다.
기분 좋은 순간. 내가 제일 좋아하는 계절이 왔구나.
예전에는 겨울을 좋아했었다. 내 생일이 있고 크리스마스가 있고. 내가 일년 중 가장 좋아하는 두 날이 다 들어있으니 겨울은 단연 내 편애를 받을 수 밖에 없는 계절이었다.
누군가 어떤 계절을 좋아해요? 라고 물으면 내 일생의 대부분 순간을 고민없이 겨울이요. 라고 대답했었다.
그러다 어느날 나는 정말 겨울을 제일 좋아하는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관성적인 대답말고 나는 어떤 계절에 가장 행복하지? 하고 생각해보니 단연코 봄이었다.
내가 좋아하는 캠핑도 갈 수 있고 한강에 돗자리 깔고 누워 뒹굴거리다 라면도 먹을 수 있고,
여기저기 푸릇하게 돋아나는 잎사귀와 봉우리를 터트리는 꽃들을 보고 있자면 어느새 나는 웃고 있다.
라일락이 피는 4월, 5월이 되면 더 좋다. 라일락 꽃에 코를 파묻고 숨을 크게 들이마시면 아찔하게 행복하다.
자전거를 타고 훅 지나가다가도 어디선가 라일락 향기가 나면 페달을 멈추고 주변을 둘러본다.
어디서 이 좋은 향기가 나는걸까.
올 봄이 시작될 때 나는 설레면서도 지레 아쉬웠다.
올해는 꽃놀이도 제대로 못 갈거고, 친구도 못만나고, 이래저래 봄을 맘껏 즐기지 못할 것이라는 생각에 시작하기 전부터 올 봄이 아까웠다.
아니길 바랬지만, 4월의 절반이 지나가고 있는 지금- 올 봄은 정말로 그렇게 지나가고 있다.
한강에 돗자리 한 번 못 펴봤고, 어느밤 여의도 윤중로 벚꽃길에서 무서운 빛을 내는 조명에 턱을 대고 사진도 못찍었다.
매주말 들로 산으로 떠나도 모자른 이 아까운 봄에 집을 청소하고 침대에서 뒹굴거리고 종일 유튜브를 보다 이렇게 살면 안되지! 자책만 했다.
지난 해 기온을 보면 5월부터는 낮 기온이 조금씩 오르면서 여름의 길목에 접어들게된다.
그럼 올해의 봄은 이렇게 끝나게 될 것이다. 조금은 아쉬운 2020년의 봄으로 기억되겠지.
내년에는 조금 다른 봄을 맞이할 수 있기를.
봄, 하고 입으로 소리를 내보았다. 입술에서 꽃봉오리가 터졌다.
내년 봄은 다시 또 좋은 날이 올 것 같은 기분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