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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비 May 24. 2020

천만원으로 결혼할 수 있을까?

우리는 13평의 작은 빌라에 신혼집을 꾸렸다.



결혼하는 데 필요한 돈은 얼마일까? 사람에 따라 혹은 생활수준에 따라 다르겠지만 집도 구하고 결혼식도 치르려면 최소 몇 천만원은 있어야 할 것이다. 주변에 결혼한 친구들을 보면 집을 사지는 못하더라도 작은 아파트 전세로 시작하는 친구들이 많았다. 나는 친구들에 비해 결혼이 늦은 편이라 그들이 결혼하며 겪는 과정을 보고 들으며 공감했다. 한편으로는 친구들과 나를 비교하며 '내가 결혼을 할 수 있을까?'라는 말못할 고민도 했었다. 그 애들은 나보다 훨씬 형편이 좋아 보였는데도 돈 때문에 고민하는 경우를 많이 봐왔기 때문이다. 서른이 넘었는데도 여전히 나는 돈이 없었고 친구들의 결혼 이야기는 나와는 아무런 상관없는 얘기처럼 들렸다.


20대 때 연애하며 막연히 결혼을 그렸던 것과는 달리 30대가 되고 나니 결혼에 대한 생각이 무거워졌다. 내 사정을 잘 아는 누군가 "돈 많은 남자 만나고 싶지 않아?"라고 물었던 적이 있다. 살아가는 데 돈은 필요하고 중요한 것이지만 나는 한 번도 돈을 기준으로 남자를 선택한 적은 없었다. 결혼을 위해 남자를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결혼하고 싶은 남자를 만나면 결혼을 생각하는 것이 순서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결혼보다는 내 삶의 안정을 찾는 것이 먼저였고 점차 안정을 찾아가고 있을 때쯤 남편을 만났다. 남편은 결혼할만큼 좋은 사람이었고 자연스럽게 결혼까지 흘러갔다. 둘 다 돈이 없었기에 결혼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돈에 대한 고민은 있었지만 큰 문제가 되지는 않았다.


결혼 준비를 시작하면 사소한 것 하나까지 돈을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다. 좋은 것은 그만큼의 돈을 지불해야 얻을 수 있다는 걸 매 순간 느끼게 된다. 웨딩드레스에 대한 환상이 없었던 나 역시도 막상 드레스를 입어보고 좀 더 예쁜 드레스를 입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 입어보기 전까지는 '드레스가 다 똑같지 뭐'라고 생각했는데 입어보니 좀 더 예쁘고 좋은 것에 눈길이 갔다. 결국 얼마의 값을 더 지불하고 더 좋은 것을 골랐다. 비단 드레스뿐일까. 한 번뿐인 결혼식에 좀 더 좋은 것으로 하고 싶은 마음이 드는 건 어쩌면 당연하다.


결혼에 대한 구체적인 계획을 세우기위해 노트북을 챙겨 카페에 갔다. 집을 구하고 결혼식을 준비하려면 각자 돈이 얼마나 있는지 확인이 필요했다. 우리는 둘 다 솔직한 편이라 바로 본론으로 들어갔다.


“우리 금전적인 문제를 먼저 의논해보자. 나는 지금 사는 집 보증금 천만원밖에 없어. 오빠는 지금까지 모은 돈이 얼마야?”


“꽤 모았는데 아버지 사업이 잘 안돼서 그때 좀 드리고 차 살 때 일부 내고 주식에 들어가 있는 돈 조금 외에는 없어”


"아.. 우리 생각보다 돈이 너무 없는데?"


서로의 집안 사정이나 지금 사정에 대해 어는 정도는 알고 있었지만 아예 없다는 말에는 조금 실망했다. ‘도대체 대책 없이 프러포즈는 왜 한 거지?’라는 생각이 잠시 스쳐 지나갔던 것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럼 천만원으로 집을 구해야 하는 거잖아?”


“그렇지... 그래도 당장 결혼하는 게 아니니까 그 안에 좀 더 모아보자.”


보증금 천만원이 우리가 집을 구할 수 있는 자산의 전부였다. 당시에는 남은 학자금을 갚고 있었고 남편 역시 차의 할부금이 꽤 남아있었다. 사실상 우리가 가진 돈은 제로에 가까웠다. 구체적인 돈 얘기가 오가다 보니 우리는 조금 시무룩해졌다. 이래서 다들 ‘결혼은 현실이라고 하는구나..’를 깨닫고 강력한 현타를 맞았다.


결혼식까지 생각할 겨를도 없이 집을 구할 수 있는 여건이 될지 알아보는 것이 먼저였다. 전세금은 최대 80%까지 대출이 되고 나머지 20%의 금액을 마련하는 것이 우리의 목표였다. 최대 2억의 금액 내에서 집을 구하기로 하고 결혼할 때까지 최대한 돈을 모아보자는 계획을 세웠다. 나는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마이너스통장을 3천만 원으로 늘려놓았다. 혹시나 결혼식 준비로 돈을 모으지 못할 경우를 대비하기 위해서였다. 그나마 희망적인 건 둘 다 돈을 잘 버는 편이었다. 결혼할 당시 둘의 한 달 수입을 합치면 600만원 정도였고 인센티브나 주식과 같은 추가적인 수입도 있었다. 수중에 돈은 없었지만 돈 벌 능력은 있으니 대출을 받더라도 둘이서 금방 갚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의외의 복병이 있었다. 돈 문제로 어려움이 생기니 항상 자신감있던 남편이 조금 소심해진 것이다.


"미안해. 진짜 나도 이렇게 생각하면 안 되는데 막상 결혼할 때 되니 별 생각이 다 드네. 이럴 줄 알았으면 아빠한테 돈 안드리는 건데..."


"에이. 그건 아니다. 그동안 아버님이 중국도 보내주고 미국 유학도 보내주셨는데 그 비용만 해도 최소 1억은 넘겠다. 당연히 드려야 되는 돈이라고 생각해."


"나도 그렇게 생각은 하는데 돈이 너무 없어서 집 구하는 게 힘들거 같아서... 미안해서 그래.."


"돈이 없는 건 나도 마찬가지지 뭐. 전세를 잘 구해보고 정 안되면 반전세나 월세가면 되지.”


"고마워. 아무것도 없는 나랑 결혼해줘서."


“오빠는 포텐셜이 있잖아. 그리고 우리 돈 잘 벌잖아. 빌라에서 2년동안 살면서 열심히 모아서 아파트로 이사가자.”


결혼 준비를 하면서 돈이 없는 것보다 더 힘들었던 건 기죽어있는 남편을 다독이는 일이었다. 남편은 금전적인 얘기를 시작한 이후로 내내 미안하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다.


나는 서울에서 대학때부터 자취를 했고 이사도 여러 번 다녔다. 항상 돈이 없었기 때문에 부동산에 집을 구하러 갈 때면 그다지 반갑지 않은 손님이었다. “그 돈으로는 원하는 집 못 구해요”라는 반응은 이미 익숙해져 있었다. 심지어 어떤 부동산에서는 그 동네 시세가 어떤지 알려주기 위해 예산과도 맞지 않는 좋은 집을 보여주며 기를 죽여놓은 곳도 있었다. 내가 보여달라고 한 것도 아닌데 말이다. 그래서인지 이런 상황이 나에게는 그다지 어렵게 느껴지지 않았다. 반면 남편은 서울에서 회사를 다니던 2년 동안 오피스텔을 얻어본 것이 전부였다고 한다. 남편은 걱정이 태산이었고 걱정이 되는만큼 나에게 미안함을 표현했다. 남편의 걱정과는 달리 나는 상황에 맞게 집을 구하면 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그다음은 크게 걱정되지 않았다.


“결혼은 타이밍이야”라고 얘기하는 결혼 선배들이 많았는데 우리의 결혼 타이밍은 정말 좋았던 것 같다. 결혼 준비를 시작하면서 회사에서 일이 잘 풀렸고 덕분에 인센티브를 많이 받게 되었다. 주식과 관련된 일을 하는 남편 역시 투자했던 주식이 잘돼서 고정수입 외 돈을 더 벌 수 있었다. 결혼을 하려고 열심히 일했던 건지 하늘이 도왔던 건지는 잘 모르겠다. 아마도 우리가 결혼할 인연이었던 것은 아닐까.


크고 작은 에피소드들이 있었지만 결혼식 준비도 비교적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었다. 다음 해 5월로 결혼식 날을 잡았고 살고 있던 집의 월세 계약이 끝날 즈음에 맞춰 신혼집을 먼저 구하기로 했다. 월세 계약은 다음 해 3월까지였고 전셋집은 일찍 알아봐야 된다는 주변의 조언을 듣고 우리는 12월부터 신혼집을 알아보기 시작했다. 투룸 빌라를 위주로 알아보기로 하고 각자 집에 대해 원하는 한 가지를 얘기하기로 했다.


"나는 해가 잘 들었으면 좋겠어."


"나는 그래도 거실은 있었으면 좋겠어."


인터넷에서 2억 미만의 전세를 찾아 여러 동네로 집을 보러 다녔다. 해가 잘 드는 곳을 찾다 보니 용산구 후암동에 괜찮은 매물이 많았다. 그때는 후암동이 그렇게 언덕이 심한 지 잘 몰랐는데 언덕이 어마 무시한 곳이었다. 언덕을 올라 도착한 빌라는 신축이라 깨끗하고 해도 잘 들어 좋았지만 언덕이 높은 것이 아무래도 고민이 되었다. 우리가 고민하는 것을 눈치챘는지 집을 보여준 부동산 중개인이 "효창공원역 부근에 신축빌라 많이 생겼는데 그 동네로 한 번 가보세요. 후암동보다 시세는 2~3천만 원 정도 비싼 편인데 거기는 평지라서 살기 괜찮을 거예요"라며 효창동을 추천해줬다. 그렇게 우연히 알게 된 효창동의 부동산을 찾아 집을 보러 갔다.


효창동은 동네 분위기부터 조용해서 마음에 들었다. 우리가 집을 구할 당시에 신축빌라들이 우후죽순 생겨나고 있을 때라 매물도 꽤 많은 편이었다. 하루에 8개의 집을 볼 정도로 매물이 많았고 그중 한 집에 들어서자마자 남편과 나는 동시에 "이 집 좋다!"를 외쳤다. 햇살이 포근하게 들어오는 집이었고 작지만 주방 외 거실 공간이 있었다. 우리의 예산보다 조금 오버하는 금액이었지만 욕심이 나는 집이었다.


"이 집 너무 맘에 드는데 가격이 좀 부담이 되어서요. 혹시 조금 조정 가능한 지 확인해주실 수 있을까요? 천만원만 깎아주시면 바로 계약금 입금할게요."


"제가 바로 알아보고 연락드릴게요. 아 그리고 신축빌라라 건축주가 입주 축하금으로 100만 원을 준다고 했는데 그것도 줄 수 있는지 알아보고 말씀드릴게요."


운 좋게 일 잘하는 부동산을 만났고 전세보증금 천만원을 깎을 수 있었다. 게다가 생각지도 못하게 입주 축하금 100만원까지 받게 되었다. 맘에 드는 집을 꽤 순조롭게 구하게 되었다. 신혼집은 공실이었기 때문에 언제든 입주를 할 수 있었다. 신혼집을 계약하자마자 살고 있던 집을 부동산에 내놓았고 거의 바로 방이 나갔다. 그리고 12월의 마지막 날 신혼집으로 이사를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결혼식 전에 먼저 신혼집에 들어간 것이 훨씬 더 좋았던 것 같다. 같이 살면서 신혼집을 하나씩 채워가는 것이 꽤 재밌었으니까. 집이 크지 않은 것도 좋았다. 집이 크지 않으니 필요한 가전제품이나 가구가 많지 않아 돈이 적게 들었다. 그마저도 가족들이 조금씩 보태줬고 나머지 작은 살림들은 살면서 그때 그때 필요한 만큼 채워갔다. 거의 6개월 정도의 월급을 신혼집을 꾸미는 데 썼던 것 같다. 작은 것을 살 때도 서로 상의했고 다행히 취향이 비슷해 둘 다 마음에 드는 스타일로 집을 꾸몄다. 물건 하나하나에 추억이 쌓여갔고 소소한 행복들이 늘어갔다. 그리고 2년 뒤 돈을 열심히 모아 아파트로 이사를 했다.


13평의 작은 빌라에 살 때도 무척 행복했지만 아파트로 이사를 할 때는 정말 기분이 좋았다. 서울에서 10년 넘게 사는 동안 아파트에 사는 상상을 해본 적이 없었기때문에 남다른 기분이 들었다. 여전히 전셋집에 살지만 무언가 이룬 것 같은 작은 성취감을 느꼈다. 지금처럼 남편과 함께 조금씩 무언가를 이뤄가는 과정이 재미있고 행복하다. 돈이 많았다면 지금의 소소한 행복을 경험할 기회가 없었을테니 돈이 없는 것도 그다지 나쁜 일은 아닌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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