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글의 자살 시도
“김몽글 씨!” 택배가 오는 소리에 몽글이 부리나케 뛰어나갔다. “아침부터 뭐가 왔어?”라고 내가 묻자, 몽글은 “응, 내 거야.”라며 라면봉지만 한 박스를 들고 방으로 쏙 들어갔다. 그날 저녁 책상 위에 반듯하게 있던 그 박스를 내가 연 건 검정 가루 때문이었다. 친구들이 놀러 와 술을 마시다가 잠깐 방에 들어갔는데 책상에 알 수 없는 가루로 더럽혀져 있었다. 닦으려고 택배 상자를 드니 더 흘러나오는 게 아닌가. 놀란 마음에 박스를 여니 구멍이 숭숭 난 투명 봉지에 담긴 번개탄 두 개가 보였다.
몽글이 죽으려고 하는구나. 순간 눈앞이 하얘졌다. 두려움과 동시에 배신감이 들었다. 나한테 말도 하지 않고, 갑자기 나를 떠나려고 했구나. 나를 남겨두고 그녀만. 그러면서 동시에 이토록 허술하게 책상 위에 올려진 번개탄이라니, 몽글답다는 생각이 들었다. 숨기는 것조차 귀찮았거나, 내가 자기 물건을 함부로 뜯어볼 거라 생각도 못했거나. 몽글은 그런 사람이었다. 무엇보다 자기 영역, 애인인 나도 들어갈 수 없는 자기만의 공간이 중요한 사람. 고장 나 잠기지 않는 방문에 문걸이를 달면서까지 혼자 있을 시간을 사수했던 그녀였다. 내가 박스를 뜯은 걸 알면 난리가 날 게 뻔했다.
한편으로 그 허술함이 구조 요청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밑바닥을 박박 긁어서라도 몽글에게 생존 의지가 있다고 믿고 싶었다. 아무도 모르게 번개탄을 종량제 봉투에 담아 버렸다. 돌아온 뒤 책상을 걸레로 박박 닦았다. 검정 가루가 남지 않게. 불길함을 지워버리고 싶었다. 알고 있었다. 번개탄을 수십 번 버린다고 해결될 일이 아니라는 걸. 그녀의 중증 우울증이 계속 되는 한, 그녀의 자살 사고가 멈추지 않는 한 반복될 일이라는 걸. 그렇지만 번개탄이 집에 있다는 사실을 안 이상 몽글을 혼자 두고 화장실에 가기도 두려웠다.
“여기 있던 박스 어디 갔어?” 두 시간 만에 몽글이 물었다. 버렸다는 내 말에 몽글은 오초 정도 나를 빤히 쳐다봤다. 이미 취해 볼이 상기되어 있었고, 눈동자는 텅 비어 있었다. 화가 날수록 차분해지는 몽글이었는데, 그날만은 목소리를 높였다. 번개탄을 되돌려 놓으라고 화를 내던 그녀가 말했다.
“내가 죽으면 후회할 줄 알아”
그 말이 난 “자살을 방해하면 죽어버릴 거야”로 들렸다. 겁이 덜컥 났다. 내가 뭘 해도 그녀가 죽을 것 같은 공포가 나를 가득 채웠다. 미안하다고 앞으로 몽글 물건을 말없이 버리지 않겠다고 약속했다. 함께 있던 친구들은 그 상황을 바라만 봐야 했다. 돌아보면 어리석었다. 번개탄은 다시 사면 그만이었지만 한 번 잃은 신뢰는 다시 얻기 힘들었다. 그녀는 이제 나 몰래 회사로 번개탄을 시킬 것이다.
이틀 뒤, 나와 상담 선생님의 끈질긴 설득 끝에 그녀는 휴직서를 내고 폐쇄병동에 자진 입원했다. 끈 달린 운동화조차 신고 갈 수 없는 병원에서는 몽글이 죽을 방도가 없었다. 간호사가 약도 입에 넣어 먹여줬다고 한다. 입원 5일 차에는 새벽에 추워 이불을 하나 더 덮는다고도 했다. 전화로 그 소식을 듣고 난 기쁜 나머지 눈물을 흘리며 그 말을 일기장에 꾹꾹 눌러 적었다. 우울증이 악화되며 잘 때 추워도 아무 대처도 못하고 벌벌 떨던 그녀였기 때문이다. 10일 차에는 “살고 싶은 마음이 든다”고도했다. 20일 차 몽글이 퇴원했다.
그리고 한 달 뒤, 몽글이 다시 번개탄을 샀다. 몽글의 낡은 에코백에 담긴 번개탄을 봤을 때, 숨이 턱 하고 막혔지만 버리진 않았다. 대신 번개탄을 봤다고, 솔직하게 말했다. 도움이 필요할 때 얘기하면 번개탄을 같이 버려주겠다고도 했다. 삼일이 지나도 그녀는 번개탄을 버리자고 하지 않는다. 번개탄은 이 글을 쓰는 지금 여전히 가방 안에 있다. 지금은 저 번개탄이 그곳에 있는 게 오히려 안전하다는 생각도 든다. 적어도 거기 있다는 걸 내가 알고 있으니까. <미나리>에서 윤여정은 말했다. “보이는 것보다 보이지 않는 것이 더 무서운 거란다.” 긴장을 놓는 순간 보이지 않는 곳에서 몽글이 죽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촉각이 곤두선다. 며칠째 새벽 세 시에야 겨우 잠이 든다.
번개탄을 본 순간 어렴풋이 내가 출근하는 월요일에 자살할 계획이라는 걸 느꼈다. 번개탄 이야기를 나눈 이후부터 몽글이 내 눈을 피했기 때문이다. 주말에 갑자기 부모님을 만나고 오기도 했다. 몽글은 “우울증은 마음의 감기”라는 말에 분노를 표하고는 했는데, 요즘 내가 그 심정이다. 그녀 말대로 누군가에겐 우울증은 생명을 위협하는 질병이지, 시간이 지나면 낫는 감기가 아니었다. 약을 먹으며 평생 관리해야 하는 당뇨 같은 병이다. 방치하면 치명적이다. 일주일에 두 번 상담을 받고, 약을 꾸준히 먹는데도 그녀의 고통은 멈추지 않는다.
다행히 돌아오는 목요일이 내 생일이다. 몽글은 그날까지는 죽지 않겠다고 손가락 걸고 약속해줬다. 눈을 피하는 그녀에게 나는 눈을 보고 약속해달라고 말했다. “자기 생일까지는 죽지 않을게.” 매주, 매일이 내 생일이었으면 좋겠다. 생일이 지나면 난 무슨 명분으로 몽글을 붙잡을 수 있을까. 붙잡기는 한 걸까. 연애 초, 힘든 일만 생기면 “우울증 걸릴 거 같아”를 연발하던 내가 미우면서 그립다. 나는 이제 평생 그 말을 못 할 것 같다.
몽글이 산 번개탄에는 24시간 상담전화 번호가 적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