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호자 명찰

정신병원에 입원하며

by 봄밤


번개탄 사건 이후, 몽글은 나와 상담 선생님의 설득으로 정신병원에 자진입원을 했다. 몽글이 입원하는 날, 우리는 병원 로비에 앉아 배낭 속 짐을 한 번 더 확인했다. 정신과 폐쇄병동에는 반입 금지 물품이 많다. 칼, 가위 같이 대놓고 위험한 물건뿐 아니라 치실, 끈 달린 운동화, 스프링 노트처럼 평범한 물건도 반입 금지다. 짐을 싸면서야 자살 충동을 느끼는 몽글이 집에 혼자 있는 일이 얼마나 위험했는지 깨달았다. 마음 같아서는 언제 퇴원할지 모르는 몽글을 병실까지 바래다 주고 짐 푸는 일도 돕고 싶지만 병원에서는 혈연 관계가 아니면 이 간단한 일을 할 수가 없다. 병실까지 가고 싶은 나의 소박한 바람은 병원 직원만 난감하게 했다.


“보호자는 같이 안 왔어요?”

입원 수속 창구의 직원이 몽글에게 물었다. 내가 나서 “제가 같이 왔어요”라고 답하자 대뜸 “무슨 관계에요?”라고 묻는다. 내가 “동거인이에요”라고 하자 남자가 미간을 찌푸린다. “단지 집에서 같이 산다는 것뿐?” 단지라는 부사가 마음에 걸렸지만, “네”라고 답하는 수밖에. “그럼 가족분이 아무도 없는 거예요?”라며 그가 한숨을 쉰다. “제가 보호자라고요”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그가 찾는 건 서류상 가족임을 알기에 입을 다물었다. 몽글이 포기한 듯 손에 든 번호표를 움켜쥐며 “올 수 있는 가족이 없어요”라고 말했다. 판단을 마친 그가 간단히 상황을 정리한다. “그럼 8층까지만 가세요. 병동은 못 들어가요, 보호자님.”


이 상황이 아이러니하게 느껴졌다. 그는 결국 날 “보호자님”이라고 불렀지만, 병동에는 들어갈 수 없단다. 그가 보기에도 지금 그녀를 보호할 사람은 나뿐이지만, 서류에 등재된 가족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 절차가 더 야속한 건 “우리는 가족이 아니다”라는 걸 기어코 제 입으로 내뱉고 나서야 어찌 됐든 다음 절차가 진행된다는 것이다.


“우리 외국 가서 혼인 신고할까? 아니 차라리 내가 자기를 입양해?” 돌아서자마자 씩씩대며 말하는 몽글의 어깨를 손으로 감싸 쥐었다. 우리가 이성애자였다면 병실에서 웃으며 헤어질 수 있었을까. 아픈 와중에 마음이 상한 그녀를 보니 괜히 미안했다. 하지만 내가 나라서 미안하다고 할 수 없는 노릇이었다. 우리를 속상하게 하는 건 우리가 아니라고, 우리를 없는 사람 취급하는 이 절차라고 애써 되뇌였다.


8층 폐쇄병동 앞에서 가볍게 포옹하고 헤어졌다. 몽글은 “전화할 수 있으면 할게.”라고 말했다. 혈연가족에게만 통화가 허락되기 때문이다. 검정 찍찍이 운동화를 신은 몽글이 손을 흔든 뒤 두꺼운 방화문 뒤로 사라졌다. 집에 가려고 돌아서니 보호자 명찰을 찬 사람들이 휴게실에 앉아 무심한 표정으로 TV를 보고 있었다. 나도 언젠가는 보호자 명찰을 차고 저렇게 무심하고 지루한 표정을 지을 수 있을까. 생각할 때 TV에서 흘러나오는 작위적인 웃음소리에 섞여 어디선가 우는 소리가 들려왔다.


육십대로 보이는 여성이 의자 위에 쭈그리고 앉아 울고 있었다. 그녀는 핸드폰 너머 누군가에게 아이가 밥을 먹지 않는다고, 크림빵이 먹고 싶다고 해서 병원 근처 빵집을 다 뒤졌는데 팥이 섞인 거밖에 못 찾았다고, 그 빵이 아직 냉장고에 그대로 있다고 아이처럼 엉엉 울었다. 그 순간, 아 여긴 병원이구나, 온갖 속상한 사람들이 여기 다 모여 있구나 싶었다. 그 사실에 긴장이 풀려 참았던 눈물이 터졌다.


몽글은 아픈데, 같이 사는 나는 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었다. 면회도, 통화도 가족이 아니면 안 됐다. 입원 동안 산재 처리를 위해 제출할 병원 기록도 두 시간 거리에 사는 몽글의 언니에게 부탁해야만 했다. 산재 담당 직원도, 입원 수속 창구 직원도, 간호사도 늘 먼저 “무슨 관계냐”라고 물었다. 궁리 끝에 내놓은 “동거인”이란 최선의 답은 “단지 같이 산다는 것뿐”인 일로 평가절하당했다. 이 초조한 심문의 끝은 항상 “혈연가족 아니면 안 된다”는 답으로 돌아왔다. 서러웠다. 병원에 있는 내내 나와 몽글은 어디에도 속하지 못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병원에 오기 전부터 울지 말자고 몇 번이나 결심했었다. 사람들에게 우린 그저 동성 친구로 보일 테니까. 각별한 관계로 보이는 사람들만 울 수 있다고 나도 모르게 생각했다. 그런데 그 여성이 눈물을 터트리자 나도 눈물이 났다. 거기에는 어떤 자격도 없었다. 그저 아끼는 이를 잃을까 노심초사하는 마음이 있었다. 끈 달린 운동화마저 위험해져 버린 나의 애인, 몽글을 병실까지 데려다주지 못한 서러움까지 더해 힘차게 울었다. 나도 그 속상한 사람 중 한 명이라는 게, 그 속상함에 속해있다는 게 이상하게 위로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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