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쇄병동 입원기
몽글이 정신병원 입원을 고민할 때마다 난 고개를 절래 절래 흔들었다. 몽글은 정신병원에 갇혀야 할 만큼 '미치지' 않았다고 믿고 싶었다. 내가 아는 정신병원의 모습은 거칠게 저항하는 환자의 손발을 강제로 묶거나 방에 홀로 가두는 영화 장면이 전부였다. 이러단 정말 몽글이 죽을 거 같아 입원을 결정했을 때도 주변에 말하기가 망설여졌다. “우리 언니도 입원한 적 있어." 내 얘기를 들은 친구들은 오히려 자기 경험을 풀어놓았다. 생각보다 많은 친구와 그 가족들이 정신병원에 입원한 경험이 있었다. 병에 덧씌어진 부정적인 이미지만 걷어내면 몽글이 입원해야 하는 이유는 단순했다. 그 정도로 ‘미쳐서'가 아니라 '아파서'였다.
몽글이 정신병원에 입원하기 전날, 서랍 속 깊숙이 넣어놨던 교통카드를 꺼내 편의점에 가서 3만 원을 충전했다. 몽글과 소통할 수 있는 유일한 통로인 공중전화 요금으로 쓰일 돈이었다. 폐쇄병동에는 핸드폰을 포함한 전자기기가 금지되는 대신 공중전화를 통해 하루 한 통을 걸 수 있었다. 입원할 때 물으니 간호사는 "통화는 주치의 선생님이 결정하는데 대체로 가족에게만 허용돼요"라고 했다. 내가 몽글의 전화를 받은 건 입원 4일 차였다. 몽글의 생리컵과 수건, 속옷, 버터크림빵, 쑥떡, 마가렛트를 들고 병원에 가던 길이었다. 전화기 너머 몽글의 목소리를 듣자마자 "어떻게 전화했어?"라고 소리 질렀다. 버스 기사님한테 혼이 나 맨 뒤로 자리를 옮겨야 할 정도로 큰 목소리였다. “의사 선생님한테 내가 말했지. 내 애인 아니면 통화할 사람 없다고." 나는 주치의의 유연함과 센스에 탄복하며 한참 고마워했다.
그날 내가 가져간 물건은 병원 로비에서 간호사를 통해 전달했다. 코로나 때문에 면회는 금지였다. 한 중년 여성은 큰 캐리어 한 개를 가져왔다. 나는 에코백 두 개, 옆에 중년 남성은 배낭 하나를 메고 왔다. 카트를 끌고 온 간호사가 캐리어에 담긴 물건들부터 하나하나 검사했다. 온갖 사람들이 오가는 병원 로비에서 티셔츠와 속옷, 수건, 양말이 헤집어졌다. 환자의 사적 물건들을 이렇게 공개적인 곳에서 열어도 되나 싶어 난 안절부절못했다. 내 차례가 오자 애써 준비한 물건이 반입 금지당할까 봐 또 안절부절. 결국 나는 쑥떡을, 중년 여성은 잘 늘어나는 재질의 티셔츠를 돌려받았다.
몽글은 통화할 때마다 "심심해서 (이미 걸렸지만) 우울증 걸릴 거 같은 거 빼고는 다 괜찮아"라고 했다. 낯가림이 심한 몽글은 5인실에서 일주일 동안 혼자 책을 읽거나 멍을 때리며 지냈다. 그런데 어느 날인가 '루미큐브'를 했다며 목소리에 활기가 돌았다. "루미큐브?" "응. 병실 언니들하고 하는데 재밌어. 나 나가면 우리도 같이 하자." 병실 사람들과 친해진 뒤로 몽글은 눈만 뜨면 루미큐브를 했다. 가끔 알코올 중독인 언니가 손을 떨다가 패를 엎으면 같이 정리하고 아무렇지 않게 게임을 이어갔다. 한 언니는 병실에 귀신이 산다며 주기적으로 소리를 질렀는데 그때도 게임은 이어졌다. 소등 전까지 자칭 ‘또라이 모임’의 루미큐브는 계속됐다.
어느 날 몽글이 격양된 목소리로 전화를 했다. "자기야, 나 여기서 제일 '미친년' 됐어.", "엥? 자기가 왜 제일 '미친년'이야?", "아니, 언니가 너는 여기 어떻게 들어왔냐고 묻는 거야. 자살 시도하고 응급실에서 바로 왔냐고 묻길래 자진 입원했다고 했지. 그랬더니 정신병원에 제 발로 들어왔다고 내가 제일 '미친년'이래." 이런 게 자조와 해학일까. 듣는 나는 혼란스러운데 몽글은 깔깔대며 웃었다. 그리고는 모두가 병원 밖으로 나갈 날만 얼마나 손꼽아 기다리는지, 누가 나가기라도 하면 펑펑 울면서도 "다시 만나지 말자"라고 이야기한다고 말해줬다.
몽글은 식사 시간마다 손을 떠는 언니 옆으로 식판을 들고 갔다. 손 떠는 걸 보기가 싫다며 식사를 거부하는 언니를 설득하기 위해서다. "같이 밥 먹어요, 언니"라며 다가가 다정하게 등을 쓸어도 매번 싫다는 소리만 돌아왔다. 어떤 날은 한두 숟가락 먹기도 했지만 대체로 식판을 물리고 누워버렸다. 어느 날은 그 언니가 몽글 손목의 상처를 보며 등짝을 때렸다. "죽긴 왜 죽어, 이 지지배야". 그 말을 전해 듣고, 나는 왜 한 번도 그 말을 하지 못했을까 싶었다. 내가 들은 타박 중 제일 따뜻했다. 누군가 밤에 소리를 지르거나 난동을 피우면 몽글은 화가 나는 게 아니라 ‘언니가 오늘 많이 아프고 힘들구나’ 싶어 안쓰러웠다고 했다. 아픈 사람은 아픈 사람을 알아보았다. 병실에서 몽글과 언니들은 매일 게임하고 실없는 농담을 하며 웃고, 서로 안아주고, 얘기하고, 등을 쓸며 그 시간을 버텼다.
루미큐브에 한창 빠졌던 어느 날, 몽글은 내게 "새벽에 자다가 추워서 이불 하나 더 덮고 잤어"라고 말했다. 전화를 끊고 난 뒤 나는 엉엉 울었다. 우울증이 심해져 무기력했던 몇 달 동안 몽글은 자다 추워도 아무런 대처를 못하고 벌벌 떨며 잤기 때문이다. 퇴원 전날은 "살아보고 싶은 건지도 모르겠어"라고 더듬더듬 말했다. 제일 '미친년'인 몽글이 가장 먼저 퇴원하는 날 언니들이 했던 말은 "우리 다신 만나지 말자."였다. 누구보다 퇴원을 꿈꾸는 그녀들이었지만 부럽다는 말은 아무도 하지 않았다. 집에 온 몽글의 짐에는 선물로 받은 요구르트 5개와 색칠놀이 책과 잡지를 찢어 쓴 편지들이 들어 있었다.
3주간의 병원 생활을 마친 몽글은 퇴원 하자마자 루미큐브를 샀는데, 그때 그 맛이 나지 않는지 몇 번 해보고는 서랍 깊숙이 넣어버렸다. 그녀들은 오늘도 루미큐브를 하고 있을까. 퇴원하는 누군가를 배웅하며 다시 만나지 말자는 다짐을 몇 번이나 더 했을까. 아니면 꿈꾸던 일상으로 돌아갔을까. 그때 무엇이 몽글을 조금이라도 죽음이 아닌 삶으로 방향을 틀게 했을까 알 수는 없지만, 그런 생각이 들 때마다 난 얼굴도 모르는 '또라이 모임' 언니들이 떠오른다.
폐쇄병동 입원 안내문. 입원 전날 운동화만 가득한 신발장에서 끈 없는 신발을 찾느라 혼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