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증 우울증 환자의 보호자로 살기
“오늘 출근 안 하면 안 돼?”
가방을 메고 현관을 향하는데 몽글이 물었다. 마을버스 도착 5분 전, 지금 집을 나서야 지각하지 않는다. “출근을 어떻게 안 해.” 말하며 신발부터 구겨 신었다. 순간 일그러지는 몽글의 얼굴을 봤지만, 지체할 시간이 없다. “미안, 나 늦겠다.” 내리막길을 달려가는 내 발걸음에 가속도가 붙는 만큼, 불안한 마음에도 속도가 붙었다. 왜 출근하지 말란 거지? 또 번개탄을 사놓은 건 아닐까, 출근한 사이에 몽글이 죽어 버리면? 지금이라도 돌아갈까. 이러다 ‘2021년 11월 3일의 출근을 뼈저리게 후회하는 36세 이연정 씨’로 남는 게 아닐까.
오죽 힘들면 출근을 말릴까 싶다가도, 아침마다 들어줄 수 없는 요청을 해서 내 속을 뒤집는 그녀가 원망스럽다. 무엇보다 같이 있어주지도 못하면서 그녀만 원망하는 내가 밉다. 그깟 출근 뭐라고. 사람 목숨보다 귀한 건 없는데. 하다가도 ‘어제도, 그제도 그랬잖아, 매일 출근을 안 할 수는 없지.’하며 도착한 노란색 마을버스에 관성적으로 올라탄다. 교통카드가 찍히며 ‘띡’ 소리가 나는 순간, 선택이 끝났다는 안도와 함께 돌아갈 기회를 놓쳤다는 불안이 나를 감싼다.
지난 5월, 몽글이 자살 시도를 위해 번개탄을 산 후 많은 것이 변했다. 그 후 난 생계를 위해 꼭 필요한 일이나 부모님 생일 외에는 되도록 외출을 삼갔다. 부득이한 장거리 출장이 있을 때는 몽글과 종일 있어 줄 친구를 구했다. 쉽지 않았다. 사정을 아는 친구들은 바빴고, 사정을 모르는 사람에게 다 큰 성인이 왜 혼자 있지 못하는지 이해시키는 일은 어려웠다. 그럴 때면 ‘자살 충동’이라는 말을 입에 올려야 하는데, 몽글의 사생활과 고통을 그렇게까지 알려야만 도움받을 수 있다는 사실에 서글퍼졌다.
출근하는 날이면 한 시간에 한 번 알람을 맞추고, 문자를 보냈다. “몽글 뭐해?” 답이 없으면 속이 탔다. 통화 버튼을 누르고 누르다 당장 사무실을 박차고 나가야 하는 건 아닐까 고민했다. 일하다 집으로 갑자기 갈 수 있는 횟수가 정해진 것도 아니고, 몽글이 위험하면 언제든 가라고 동료들 모두 입을 모아 말하는데 난 다시는 없을 기회처럼 끝까지 망설이고 망설였다. ‘이러다가 나까지 일을 못 하면? 하지만 몽글이 없으면 일이 다 무슨 소용이야?’ 생각이 극단을 오갈 때 즈음 몽글에게서 문자가 온다. “미안, 깜빡 잠들었네.” 그제야 눈앞에 문서가 눈에 들어왔다.
한 번은 몽글의 상담 선생님한테 전화가 왔다. “응급입니다. 지금 집에 가실 수 있나요?” 사무실에 있던 나는 손에 든 서류를 고스란히 책상 위에 올려두고 집으로 달려갔다. 이런 날은 차라리 마음이 편하다. 언제 몽글에게 달려가야 하는지, 오늘은 외출해도 되는지 아닌지 누군가 이렇게 매번 선명하게 알려준다면 얼마나 좋을까. 대문을 열자, 계단에 앉아 담배를 피우던 몽글이 놀란 눈으로 나를 쳐다봤다. 급히 오느라 그녀에게 연락도 못하고 왔다. “뭐야? 어떻게 왔어?” 그녀를 보는 순간 눈물이 핑 돌았다. 오는 내내 “내가 죽으면 자기 놀라지 않게 문에 ‘들어가지 말고 신고해’라고 미리 메모를 붙여둘 거야 “라던 그녀의 말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메모가 아니라 그녀가 언제나처럼 거기 있어서 눈물이 났다.
“자기야, 나 죽고 싶어.” 오랜만에 친구와 만나고 온 몽글이 잔뜩 취해 집에 왔다. 술 취해서 하는 소리인 걸 알면서도 화가 났다. “날 사랑하는데 왜 죽어? 죽으면 우리 영영 못 보잖아.” 내일이면 몽글은 기억도 못 할 소리를 하면서 내가 우는데 몽글이 따라 울면서 자기 장례식에 삼십만 원을 내라고 했다. 엄마, 아빠가 가난해서 불쌍하다고, 꼭 삼십만 원을 내야 한다고 했다. 삼십만 원이 너무 적은 돈이라서 나는 또 눈물이 났다. 백만 원도, 천만 원도 아니고 왜 하필 삼십만 원이람. 따지려는데 몽글이 코를 골았다. 눈가에 흘러내린 눈물을 닦아주며 통통한 볼을 쓰다듬었다. 그녀를 죽이려는 건 그녀인 걸까, 그녀의 병인 걸까. 그녀가 죽지 않길 바라는 건 내 사랑인 걸까, 욕심인 걸까.
연애 초반, 내가 두통에 시달리자 몽글이 밤새 내 팔과 등을 손으로 쓸어 준 날이 있다. 그저 손바닥으로 쓸어주는 것뿐인데 마음이 가라앉고 머리가 맑아졌다. 15년 전, 몽글이 암 투병을 할 때 자원활동가들이 찾아와서 아픈 몸을 그렇게 쓸어줬다고, 주무르지 않아도 시원해서 자기도 신기했다고 했다. 지금은 완치됐지만, 십 대에 겪었던 항 암 치료는 그녀에게 불안장애와 우울증을 남겼다. 두 병은 호시탐탐 그녀를 노렸고, 15년 가까이 몽글은 그 병에 시달려 왔다.
내가 외출의 어려움을 주제로 글을 쓴다고 하니 몽글이 말했다. “나도 너무 불안해. 혼자 있으면 내가 무슨 짓을 할까 봐.” 그 말에 머리를 한 방 맞은 듯했다. 그동안 나는 “죽으려는 몽글”만 보느라 “살려는 몽글”을 보지 못했다. “왜 죽고 싶을까”만 생각했지 이렇게 힘든 와중에 “어떻게 살아남았나”라는 질문을 해본 적이 없다. 생각해 보면 이 아슬아슬한 외출의 가장 가까운 조력자는 몽글이었다. 내가 출장 갈 때마다 같이 있어 줄 사람을 함께 수소문하고, 혼자 있는 시간을 안전하게 보낼 방법(상담을 잡는다든지, 강아지와 산책을 하다든지, 부모님 댁에 가 있다든지)을 의논한 것도 그녀였다. 이 끝없는 싸움에서 몽글은 내가 지켜야 할 사람이 아니라 하나뿐인 동지였다.
해질 무렵 퇴근 시간. “오늘 한 잔 할까요?” 누군가 물으니 사람들이 신이 나서 하나둘씩 짐을 쌌다. “봄밤은요? 오늘은 같이 갈 수 있어요?” 묻는 말에 내가 희미하게 웃자 “그래요. 봄밤, 잘 가요.”라고 인사하는 동료들. 한 번은 누군가 “봄밤은 가정에 충실한 사람”이라고 말해서 깜짝 놀란 적이 있다. 충실이라니. 닥치는 상황을 쳐내기 바쁜 내게 어울리지 않는 단어였다. 적어도 충실은 굉장히 주체적인 선택이 아닌가. 만약 무언가를 선택할 수 있는 상황이라면, 나는 무엇에 충실한 사람이었을까. 몽글은? 아프지 않았다면 몽글은 지금 무엇에 충실하며 살았을까. 생각하는 동안 사람을 가득 채운 노란색 마을버스가 뚜레쥬르 앞에 섰다. 교통카드를 찍는다. ‘띡’ 소리와 함께 오늘의 불안한 외출이 끝이 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