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장애와 함께 살아가기
연애 초반, 영화를 보자고 하니까 몽글이 말했다. "제가 높은 층에서는 영화를 못 봐서요." 잘 보이고 싶은 마음에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아예 지하에 있는 영화관을 찾았다. 집에서 1시간 거리였다. 그전에는 몰랐는데 대부분 영화관들이 6층 이상 고층에 있었다. 영화를 보고 나온 뒤 조심스럽게 물었다. 왜 높은 층에서는 영화를 못 보느냐고. "높은 층에 가면 지진이 난 것처럼 건물이 흔들리는 거 같아요. 그러면 2시간 내내 영화에 집중이 안 돼요." 그 후 내 머릿속에는 서울 시내에 있는 3층 이하 영화관 리스트가 입력됐다. 몽글과 나는 지금 2층에 사는데, 이사를 간다 해도 아파트 로열층에 사는 일을 없을 것이다.
몽글은 작은 소리에도 잘 놀랐다. 길 가다 자동차 경적음만 들려도 멈춰서 놀란 가슴을 달래야 했다. 바쁜 출근길에 그러면 난감했다. 그녀와 만나면 만날수록 그런 민감함이 불편하게 다가왔다. 가끔은 편하게 집 가까운 곳에서 영화를 보고 싶다. 난 사실 보안이 취약한 저층보다는 고층에 살고 싶다. 무엇이든 선택지가 좁아지니 괜히 손해 본다는 생각이 들었다. 몽글이 놀랄 때마다 나도 덩달아 놀라 불편했다. 표현하지 않았지만, 그냥 좀 안 놀라면 안 되나 자주 생각했다.
그 모든 게 불안장애 증상이라는 걸 몽글이 쓴 글을 보고서야 알았다. 몽글은 16살에 난소암 진단을 받았다. 항암치료가 끝나면 백혈구 수치가 떨어져 일주일 넘게 무균실에 격리됐다. 독한 항암치료 때문에 아무것도 먹지 못해 몸무게가 38kg까지 빠진 상태였다. 종일 하얀 천장만 보고 누워있다가 간호사가 들어오면 가지 말라고 붙잡던 16살의 몽글. 몽글은 그때 처음으로 과호흡 증상이 시작됐다고 글에 썼다. 숨이 막히고 병실이 빙글빙글 돌아 당장 죽을 거 같은데 병실에는 새하얀 벽과 천장 말고는 아무도 없었다. 15년이 지난 지금도, 병실 불이 꺼지는 7시만 되면 몽글은 죽을 것만 같은 불안을 느낀다. 지하철에서 큰 가방을 맨 사람만 봐도 무슨 일이 일어나지 않을까 안절부절 못한다. 나에게는 별 것 아닌 자동차 경적 소리가 그녀에게는 세상이 무너질 것만 같은 소리였다.
몽글이 동료들과 장례식장에 가던 날이었다. 지하철 안에서 갑자기 과호흡이 와 혼자 플랫폼에 내렸다며 전화가 왔다. 숨이 찬 목소리로 겨우 소리를 내서 "도와줘, 봄밤"이라는 몽글의 말에 애가 타는데, 멀어서 갈 수가 없었다. 동료에게 보이고 싶지 않은 모습을 보였다는 속상함, 다시 일터에서 공황이 오지 않을까 하는 불안이 겹쳐 그날은 삼십 분 넘게 과호흡이 이어졌다. 나는 주문한 칼국수를 그대로 둔 채 전화를 붙잡고 괜찮아질 거라며 몽글을 달랬다.
그럴 때면 이 고통이, 불안이 그녀를 잠식하지 못하게 무엇이든 하고 싶은데 뭘 할 수 있는지 모르겠다. 함께 있을 때 발작이 오면 "괜찮아, 괜찮아질 거야"라고 말하지만, 그런 내가 너무 무력하다. '우울증은 오로지 자신에게만 내리는 비와 같다'는 리단 작가( <정신병의 나라에서 왔습니다>의 저자)의 말이 내 마음을 파고든다. 상담 선생님은 발작이 오기 전에 미리 알아차리고 약을 먹을 수 있게 도우라고 하는데, 무지한 나는 매번 몽글에게 내리는 비가 폭풍이 되고서야 알아차린다.
게다가 오늘은 내가 사고를 쳤다. 집에 블루투스 스피커가 있는데 음량이 최대치인 줄 모르고 음악을 틀었다. 갑자기 들린 쿵쿵 소리에, 신나게 택배 상자를 뜯고 있던 몽글이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소리를 지르며 한참 숨을 몰아쉬던 몽글이 진정되자마자 나에게 말했다. "또 과호흡 올까 봐 숨을 꾹 참았어." 미안한 나는 아무 말도 못 하고 몽글을 꼭 안았다. 사실 요 며칠 몽글이 상태가 좋아 보여 방심했다. 이전에는 유튜브를 보거나 믹서기를 돌릴 때마다 "소리 나요"라고 미리 말했던 나였다. 전화 벨소리에도 몽글이 놀라기 때문에 내 전화는 늘 진동모드였다.
그런데 최근 며칠 몽글의 컨디션이 좋아 보였다. 산책도 자주 하고, 택배 기사님이 문 두드리는 소리에도 놀라지 않았다. 그 모습을 본 난 "오, 자기 이제 안 놀라네"하며 감탄도 했다. 몽글이 나아지는 거 같을 때 낙관하지 않겠다고, 이 병은 금방 끝나지 않을 거라고 몇 번이나 다짐하듯 외웠지만, 소용없었나 보다. 자꾸 몽글의 사소한 변화 하나하나에 주의를 기울이며 '이제 다 나았나?' 하며 병이 나을 기색만 기다리게 된다. 병과 평생 함께 산다는 말은 그럴싸 하지만, 불편하고 힘든 병과 평생 같이 산다는 걸 받아들이는 게 참, 쉽지 않다.
15년 전, '불안장애'라는 병이 있는 줄도 몰랐던 몽글의 엄마는 그녀의 나약함을 탓했다고 한다. "다른 환자들도 다 잘 치료받는데 왜 너만 그렇게 나약하냐", "너처럼 맨날 아프다고 누워 있으니까 정신병에 걸린 거 아니냐." 표현을 덜 했을 뿐 처음 몽글을 만났을 때는 나도 그렇게 생각했다. 불안은 다스릴 수 있는 거니까, 마음을 좀 강하게 먹으면 덜 놀라지 않을까, 덜 불안하지 않을까 하며 마음속으로 답답해했다.
몽글과 동거 2년, 이제는 그녀의 불안이 실제라는 걸 안다. 비를 같이 맞진 못해도, 비가 내린다는 건 믿기로 했다. 몽글처럼 지진을 느끼진 않지만, 영화관은 꼭 지하에 있는 시네큐브를 가는 이유다. 뒤에서 갑자기 부르면 놀라는 몽글을 위해 난 팔을 휘휘 저으며 온갖 기척을 내면서 다가간다. 몽글이 너무 놀라지 않을 정도로 조용히, 그러나 나를 알아차릴 만큼 적당히. 몽글이 다시 놀라서 숨을 꾹 참지 않게. 나약한 건 몽글이 아니니까. 아니, 나약해도 비난당할 이유는 없으니까. 자신만 느끼는 지진 속에 그녀는 이미 충분히 외로웠으니까. 찬찬히 다가가 그녀를 꼭 안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