늙은 장애견 보리
“보리를 데려오고 싶어”
정신병원 퇴원 후, 유기견 보호소에 다녀온 몽글이 말했다. 보리는 그곳에서 10년째 입양을 가지 못한 개다. 늙고, 장애가 있고, 품종 없는 믹스견. 입양을 꺼리는 3조건에 검정개라는 이유까지 더해 입양 문의 한번 없었다. 몽글은 5년 전 그곳에서 일하며 일 년간 보리를 돌봤다. 새카만 털에 동그랗고 까만 눈을 가진 보리는 늘 기저귀를 찼다. 하반신이 마비되어 오줌이 새 나오기 때문이다. 보리가 구조된 곳은 사설보호소였다. 처음에는 불쌍하다는 생각에 한 마리씩 유기견을 거두지만, 갈수록 그 규모가 감당되지 않아 개들을 방치하는 사설보호소가 많단다. 개가 있다는 소문이 돌면 몰래 와서 버리고 가는 경우도 다반사다. 보리는 10년 전 그곳에서 허리가 부러진 채 발견되었다.
늙은 장애견, 사람들이 입양을 꺼리는 이유가 몽글에게는 보리를 데려오고 싶은 이유였다. 나를 사랑에 빠지게 했던 몽글의 따뜻한 마음이 지금 나를 뿌리째 흔드는 이유이듯. 처음 사람들이 보리의 입양을 꺼린다는 말을 들었을 때 난 혀를 찼다. 그래, 다 어리고 품종 좋은 개만 찾는구나. 개를 자기 소유물로 생각하는 거지. 참 문제야. 나는 이미 유기견 한 마리를 키우고 있으니까, 더 입양할 수는 없다는 번듯한 핑계가 있었다. 그런데 몽글이 보리를 데려오고 싶다는 게 아닌가. 이 대책 없는 사람을 봤나. 자기도 중증 우울증으로 아파서 휴직했으면서 쉬는 동안 개를 돌보겠다고? 그럼 나는? 밤낮없이 뛰어노는 회색 푸들 한 마리와 아픈 애인 건사하는데도 하루가 모자란데, 어쩌란 말인가.
보리의 똥오줌이 묻은 빨래를 매일 해대는 내 모습이 떠올랐다. 상상만으로도 숨 막혔다. 늙은 개라는 것도 마음에 걸렸다. 보리의 추정 나이는 열네 살. 수백에서 수천까지 적힌 병원비 영수증이 당장이라도 내 앞에 청구될 것 같았다. 무지개다리라도 건너면. 몇 년 전 같이 살던 개를 떠나보내며 겪은 그 고통을 다시는 겪고 싶지 않았다. “나는 지금도 벅차. 더는 못 하겠어.” 애매하게 뭉개서는 안 될 일이었다. 몽글은 “그래, 자기가 안 된다면 안 되지.”라고 말했지만 시선은 바닥을 향했다. 그 후로도 인스타에 올라온 보리 사진을 보는 걸 보면 미련을 버리지 못한 게 분명했다. 하지만 못 본 척했다. 세상 모든 개를 내가 다 거둘 순 없으니까. 유기견을 키우는 일이 위대하다는 건 알지만, 난 별로 위대해지고 싶지 않았다. 지금 이 불편한 마음을 견뎌야 내 일신이 평안하다고 다짐했다.
몽글의 우울은 갈수록 깊어졌다. 보리 때문인지는 모르지만, 퇴근해서 돌아와 보면 손목 상처가 늘었고, 옷장 안에는 번개탄을 숨겨놓았다. 사달이 난 건, 내가 1박 2일 출장을 가는 날이었다. 번개탄을 버려달라고 간곡하게 설득하다 꿈쩍 않는 몽글에게 “번개탄을 버리면 보리를 데려와도 된다”는 공수표를 날렸다. 몽글은 놓치지 않고 공수표에 바로 사인했다. 순간 반짝이던 몽글의 눈을 잊을 수가 없다. 최근 일 년간 그녀에게서 그런 생기를 느낀 적이 있던가.
돌봄 받는 일보다는 돌보는 일이 몽글을 살리리라는 기대로 보리를 데려오기로 했다.(이래저래 보리를 위해서란 생각은 없었다.) 대신 임시 보호라고 못을 박았다. 몽글이 출근하는 내년에는 꼭 돌려보내겠다는 약속도 받았다. 은근히 뭉갤 생각하면 안 된다고 몇 번이나 확인했다. 지금 키우는 봄이도 나의 확실한 동의 없이 같이 살면서 나는 많은 대가를 치렀다. 같은 오줌, 똥을 치워도 기꺼이 내가 원해서 하는 일과 왜 해야 하는지 모르겠는 일은 힘듦의 차원이 다르다.
이주 뒤, 집에 오니 낯선 검정개가 꼬리를 흔들며 나를 맞았다. 못 보던 방석과 허리까지 오는 커다란 사료 포대도 보였다. 기저귀도 쌓여 있었다. 모두 보호소에서 보낸 물품이었다. 보리는 간지러운지 기저귀 찬 곳을 자주 핥았다. 기저귀를 갈아줄 때마다 오줌이 뚝뚝 흘렀다. 기저귀를 빼고 홀가분해질 때는 산책 시간이었다. 산책할 때마다 몽글은 “보리가 걷는 건 기적”이라고 말했다. 구조 당시에는 걷지 못할 거라고 모두 생각했단다. 보리는 봄이에게 뒤처지지 않고 걸었다. 자세히 보면 앞발의 힘으로 뒷발을 끌다시피 걷는다. 빗물받이가 나오면 과감하게 점프도 했다. 뒷발이 구멍에 걸리고, 곧꾸라져도 입을 벌리고 헉헉거리며 웃는다.
울창한 풀밭을 만나면 등을 바닥에 대고 대굴대굴 굴렀다. 세상 행복한 강아지를 애니메이션으로 표현하면 나올 법한 장면이었다. 보호소에서도 많은 사랑을 받았지만, 1일 1 산책은 꿈도 못 꿀 일이었다. 한 달에 한두 번 나가더라도 주택가 콘크리트를 도는 일이 최선이었다. 그래서인지 만지면 뼈가 잡힌다. 말라서라기보다는 근육이 없기 때문이다.
보리를 만나고 나서야 내가 사랑하던 집 근처 산책로가 장애견에게 얼마나 불편한지 알았다. 곳곳에 계단과 빗물받이는 왜 그렇게 많은지. 그걸 다 점프했다간 보리 다리가 남아나지 않았다. 몽글이 보리를 안으면 배가 눌려 오줌이 질질 샜다. 산책하고 나면 몽글은 오줌 범벅이 되어 집으로 돌아왔다. 예상한 대로 빨래는 늘었지만, 몽글은 뭐가 그리 좋은지 보리가 누워서 배만 보여도 까르르 넘어간다.
오늘도 풀밭에 대굴대굴 구르는 보리를 보면, 저 몸으로 내 이불에서도 구를 거란 생각에 한숨이 나오지만, 온몸으로 표현하는 저 환희를 내가 선물한 것만 같아 가슴이 벅찬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보리는 몽글이 키우는 거다, 나는 모른다” 해놓고 이러는 내가 매우 찔린다. 보리는 이런 복잡한 내 마음을 알까. 아직 보리가 낯설어 난 손바닥이 아닌 검지와 중지로 머리를 살짝 만진다. 끙 소리를 내며 몸에 힘을 빼는 늙은 개. 내 이럴 줄 알았다. 겨우 일주일 지냈는데, 보리를 보낼 날이 다가오는 게 두렵다.
다리가 짧아 한 쪽 다리를 들고 잠든 보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