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 난 논밭으로 둘러 쌓인 3층 짜리 무궁화아파트에 살았다. 그 시절 나와 친구들은 어디서나 놀았다. 비 오는 날에는 아파트 놀이터에서 모래 물길을 만들었고, 날이 좋으면 건물 사이 좁은 틈에서 족구를 하거나 논밭에 나가 개구리나 소금쟁이를 잡았다. 겨울 볏단 속은 술래를 피해 숨기 안성맞춤이었고, 가을 콩을 털고 남은 콩대에 불을 놓아 입술에 숯가루를 묻히며 미처 털리지 못한 콩을 구워 먹었다.
초등학교 2학년 즈음 우리 동네 유일한 고층 건물이었던 무궁화아파트가 재개발된다는 소문이 들려왔다. 그즈음 아파트 맞은편 논에 5층짜리 빌딩이 지어지고, 건물 1층에 기존에 있던 인호슈퍼보다 세 배는 크고 열 배는 많은 형광등이 달린 굿모닝마트가 들어섰다. 아파트 뒤편에 있던 밭에는 큰 트럭들이 드나들기 시작했다. 모래와 돌, 철근을 잔뜩 쌓아놨다가 어느 날은 잔뜩 실고 나갔다. 나는 친구들과 그 공터에서 놀았는데, 논밭이 사라지기도 했고 놀이터와 달리 어른들의 시선에서 벗어날 수 있기 때문이기도 했다. 잔뜩 쌓은 모래 위를 기어올라 정상에 오르면 가슴이 벅찼다. 동그란 터널처럼 생긴 콘크리트 자재 사이를 통과할 때는 모험이라도 하는 듯 짜릿했다. 집 앞 놀이터에서는 느낄 수 없던 스릴이었다.
입 밖으로 꺼내진 않았지만, 우리는 누구도 이곳에 와서 논다는 사실을 어른들에게 알리지 않았다. 트럭이 들어올 때마다 각자 콘크리트 자재나 근처 나무 뒤로 숨었다. 공사장에는 이따금 새로운 자재들이 추가됐는데, 그날은 철근이었다. 130센티였던 내 키보다 크고 무거웠을 그 철근을 나는 보자마자 호기롭게 번쩍 들었다. 그리고는 무게에 못 이겨 휘청였다. 챙그랑, 쿵 날카롭고 둔탁한 소리를 내며 철근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그때 옆에 서 있던 민주가 이마를 맞았다.
처음엔 민주도 나도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몰라 멍하니 서 있었다. 빗맞은 건지 민주의 이마에서 피가 나진 않았다. 대신 골프공 하나가 들어간 것처럼 부풀며 푸른빛이 돌았다. 흩어져 놀던 친구들이 모여들며 무슨 일이냐고 묻자 그제야 민주가 울음을 터트렸다. 옆에 있던 지애가 “얘가 이걸로 얘 때렸어.”라고 말했다. 때린 게 아니라고 설명하고 싶었지만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미안하다는 말도 울음도 나오지 않았다. 얼마나 큰일이 벌어진 걸까. 민주는 병원에 가야 하는 걸까. 또 얼마나 혼이 날까. 두려움에 온몸이 얼어붙었다.
나는 울음을 그친 민주에게 집에 가자고 했다. 내가 민주 손을 잡고 걸어 나가자 아이들이 양쪽으로 갈라졌다. “민주 어떡해.” 걱정하는 애들 틈에서 민주는 순순히 나를 따랐다. 가는 내내 민주 엄마의 치켜 올라간 눈을 생각했다. 그 눈으로 내게 무슨 일이냐고 물으면 뭐라고 답할까. 민주는 다시 동네가 떠나가라 울었다. 아는 어른이 보고 무슨 일이냐고 물을까 봐 가슴이 조마조마했다. 집에는 민주 동생밖에 없었다. 진정한 듯 울음을 가라앉힌 민주를 두고 도망치듯 집으로 왔다.
밤새 당장이라도 민주 엄마가 우리 집 벨을 누르고 따지러 올 거 같았다. 하지만 그런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 나는 얼마나 큰 잘못을 저지른 걸까. 다행히 다음날은 일요일이었고, 나는 종일 집에 붙어 있을 생각이었다. 하지만 언제 민주 엄마가 찾아올지 모른다는 생각에 여전히 마음을 졸였다. 엄마가 슈퍼에서 설탕을 사 오라고 시켰을 때 난 울음을 터트렸다. 영문을 모르는 엄마는 심부름이 그렇게 싫으냐면서 툴툴대며 나갔다. 종일 방에서 전래동화를 읽고 디즈니만화를 보며 공사장과 민주의 혹을 잊어갈 즈음 바깥에서 음악소리가 들렸다.
그렇다, 일요일은 스프링 목마가 오는 날이었다. 아저씨가 끌고 온 흔들거리는 말 중 하나를 200원을 내면 탈 수 있었다. 나는 그간의 근심을 까맣게 잊고 엄마를 졸라 밖으로 나갔다. 내가 거기서 민주와 민주 엄마를 만난 건 당연했다. 그날은 온 동네 아이들이 몰려나오는 날이니까. 민주 엄마를 보는 순간 심장이 덜컹했다. “네가 그랬다며?” 민주 엄마가 쏘아붙이는 듯한 말투로 내 이마를 살짝 손가락으로 튕기며 말했을 때 나는 얼어붙었다. 엄마가 무슨 일이냐고 묻는데도, 민주 엄마가 잔뜩 긴장한 나를 놀리듯 “봄밤이가 장난치다 민주 이마에 멍이 들었지 뭐야~”라고 말할 때도, 민주가 자기 엄마 뒤에 숨어 다시 울음을 터트릴 것 같은 표정을 지을 때도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민주가 아니라 내가 다쳤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그날밤 기도했다. 다음에는 제가 다치게 해 주세요.
그 뒤로도 며칠간 친구들이 “민주 이마 왜 그래?” 물을 때마다 뜨끔한 마음에 도망치고 싶었다. “네가 그랬다며?” 쏘아붙이듯 말했던 민주엄마를 또 만날까 봐 민주네 근처는 얼씬도 안 했다. 우는 민주 앞에 선 난 친구 울린 나쁜 아이일 뿐이었다. 동네 놀이터에서는 자주 다치는 애들이 생겼고, 그 빈도만큼 큰 소리로 혼나거나 끌려나가는 애들이 있었다. 어린 우리에게도 사정이 있다고 생각하는 어른은 없었다. 민주가 다쳐서 나도 속상하다고 토로할 곳은 어디에도 없었다.
그날 이후 난 공사장에 가지 않았다. 몇 주 뒤 민주와 나는 평소처럼 놀이터에서 그네를 탔다. 그네 하나에 민주는 앉고, 나는 서서 탔다. 민주가 발로 땅을 구르고, 나는 무릎을 접었다 펴며 그네의 반동을 더했다. 우리의 동작에 그네가 탄력을 받으며 뒤로 꺾어질 듯 올라갔다 내려올 때였다. 갑자기 그네가 가벼워지면서 민주가 붕 뜨는 것을 느꼈다. 줄에서 손을 놓친 건지 민주가 반원을 그리며 날아가 모래로 추락했다. 민주가 큰 소리로 “엄마”를 부르며 울기 시작했다. 순간 달려가 입을 막고 싶었다. 누구든 달려와 다 괜찮다고 안아줬으면 했다. 하지만 무궁화아파트 놀이터에서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내 안에 있던 풍선이 압력을 견디지 못하고 펑하고 터져버리듯 나는 그 자리에 주저앉아 울어버렸다. 공사장에서 터트리지 못한 울음까지 더해 동네가 떠나가듯 최선을 다해 울었다. 아무것도 해결된 게 없는데도 후련했다. 그 순간만은 민주 엄마가 달려와 또 너냐고 따끔하게 혼내도 상관없을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