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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멋진oh Nov 23. 2023

오사카, 너 이렇게 어려운 상대였니?

여행 첫날의 오사카-아이들과 함께한 무모한 도전기



‘우르르 쾅쾅’  하루 전만해도 쨍하기 그지 없었는데, 천둥과 번개가 핸드폰보다 빨리 모닝콜을 해준다. ‘날씨가 이런데 비행기가 뜰수나 있을까?’ 기류로 흔들리는 비행기에 커다란 공포감을 가지고 있던 나는 걱정이 태산이다. 5년만의 해외여행. 설레임반 걱정반으로 아이들과 칠흙같은 새벽에 집을 나섰다. 새벽 4시 30분 택시 탑승 완료. 낙엽비가 내리는 창밖을 보며 동네에게도 작별인사를 건네본다. ‘일주일간 일본에 다녀올께 그동안’


비 내리는 새벽을 깨우며 도착한 인천공항 제2터미널. 출국하기 전에 얼큰한 김치찌개를 먹으려고 했지만 모두 나와 같은 마음의 사람들 때문이었을까. 한식을 파는 식당만 만원이다. 하는 수 없이 빨리 나오는 돈가스를 후다닥 먹고는 느글거리는 속을 안고 비행기에 탑승했다.  순식간에 간사이 공항에 착륙했다.  5년 만의 첫 해외여행. 이국적인 풍경을 기대했기에 살짝 실망감이 밀려온다. 처음 만난 일본  오사카의 색은 회색이다. 흐린 날이어서였을까. 마치 1990년대 어디쯤에 멈춰 있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건물의 작은 유리창문의 모양도 건물의 실루엣도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20년 전으로 돌아온 것 마냥 옛스럽다.


공항버스를 한 시간여 달려 오사카의 번화가인 우메다에 무사히 도착했다. 복잡한 교통에 대한 이야기를 살짝 들었던 터라 걱정했는데 시작이 순조롭다. 게다가 우리가 묵기로 한 호텔은 리무진버스의 종점이라니 나의 현명한 숙소 위치 결정에 흐뭇함이 밀려온다. 뿌듯해 마지않던 나는 이제부터 시작될 길 찾기 대환장 파티를 그때만 해도 예상하지 못했다. 영화였다면 이 시점에서 스물스물 단조의 무거운 배경음악이 깔렸을 테지.


4박 5일간 우리의 이동을 책임져줄 ‘이코카 교통 카드’를 구입하기 위한 미션이 시작되었다. 이코카는 티머니카드와 같은 기능을 하는 카드다. 아무 편의점에서나 다 살 수 있는 우리나라와는 달리 주요한 역에서만 구입가능하고 특히 어린이용은 사무실에 직접 여권을 보여주고 사야 한다. 오사카역 지하는 마치 던젼이라고 불릴 만큼 복잡하다. 하지만 미리 일본전문 여행자카페에서 자세한 안내글도 읽고 캡처까지 해두었으니 이 정도쯤이야. 길눈이 밝은 거로는 자신 있는 나니깐. 일본어 통역을 위한 파파고 어플도 깔았고  영어도 어느 정도 할 수 있으니 자신 있게 아이들을 이끌고 지하세계로 내려갔다. ‘얘들아 엄마만 잘 따라와’


‘헉 헉’ 숨소리는 거칠어지고 다리는 후들거린다. 길을 헤맨 지 이제 막 40분이 넘어가고 있다. 역사 근무 직원 세 사람을 포함해서 벌써 예닐곱 명에게 길을  물어본 상태였지만 카드 발급 사무실을 도무지 찾을 수가 없다. 등에서는 식은땀이 주르륵 나기 시작한다. 날은 왜 이다지 더운 건지. 마치 미로에 갇힌 것처럼 한참을 걸었건만 같은 곳이 또 나왔을 때 한숨이 절로 나왔다. 지친 아이들의 불평과 원망 어린 눈빛에 그만  절제력을 잃고 말았다 ‘엄마가 훨~씬 더 힘들거든. 제발 투덜거리지 좀 말고 잘 좀 따라와 봐’라며 실눈을 뜨고 아이들을 째려보았다. 현기증이 난다.  이곳에 도착한 지 무려  한 시간이 지난 무렵 극적으로 사무실을 발견했다.  그로부터 30분의 줄을 더 선 이후에야 귀하디 귀한 이코카 카드를 발급받을 수 있었다. ‘네가 그 아이구나’이 소중한 녀석을 고이고이 크로스백 앞부분에 넣어 두었다.




예상했던 상황과 다를 때 사람은 흔히 말하는 멘붕 상태가 된다. 만만하게 여겼던 일본이라는 여행 상대. 1라운드는 나의 처절한 실패였다. 자신감으로 충만하던 나는 스르륵 사라져 버렸다. 우리나라는 신용카드 한 장만 있으면 지하철, 버스를 카드 한 장으로 탈 수 있는데, 일본은 대부분 현금으로 표 발매기에 가서 구입해야 한다. 같은 오사카 시내인데 도톤보리는 지하철을 타고 가지만 유니버셜은 기차를 타야 하며, 플랫폼 번호는 시시각각 달라지니 아무리 복잡함에 익숙한 나라도 몹시나 어려운 수학문제를 푸는 느낌이다. 분명 여행을 하러 왔는데 비싼 돈을 지불하고 사서 고생을 한다는 느낌이 울컥울컥 올라와 당황스럽다.


절박한 상황에서 사람은 어떻게 변화하는가? 사람들 낯을 가리는 내 본래 자아는 슬며시 사라지고, 결연함이 디폴트 값이 되어 다른 모습으로 나타난다. 평소에 소심한 나라면 ’저 사람들 바빠 보이는데 귀찮게 물어보지 말자. 그냥 내가 좀 더 찾아보지 뭐‘하고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는 걸 망설였겠지만 이곳에서는 달랐다. 절박하니 체면이고 뭐고 없다. ‘체면 너 먹는 거니?‘ 말 그대로 살짝 인상만 좋아 보이면 마구 들이대듯 물어본다. ’익스큐즈미~‘로 시작하는 나. 이곳에서는 남편도 없이 나 혼자 초등 두 아이를 책임져야 하므로 진화하는 나를 만나는 순간이다.


첫 일정의  목적지인 도톤보리는 과연 어떻게 가야 하지? 기차역 플랫폼 수는 너무나 많고 어떤 길로 가야 하는지 몰라서 허둥되고 있었다. 퇴근시간이라 다들 바쁜 걸음으로 다니는 사람에게 다가가기가 사뭇 어려웠다. 이내  레이더에 포착된 두 사람에게 스르륵 다가갔다. ‘혹시 도톤보리를 가려면 이쪽으로 가면 되나요?’ 절박하니 체면이고 뭐고 없다.  ‘이렇게 기쁜 일이 있을까’ 본인들 숙소가 그 근처라 함께 가자고 말하는 것이 아닌가. 그녀들의 뒤편에서 찬란한 빛이 나오는 것만 같다. ‘얘들아. 얼른 저분들을 따라가자’ 마치 양치기 목자를 졸졸 따라가는 어린양들 마냥 우리는 부지런히 그들의 뒤를 따라갔다.


남바역에서 빼꼼 걸어 나와 하염없이 두 사람의 뒤를 따라갔다. 청계천 같은 개울이 나오고 유튜브와 책에서 수없이 보았던 바로 그 장면 속에 우리는 서 있었다. ‘우와 저것 봐. 저게 유명한 글리코상이잖아.‘ 센스 있는 그분들의 배려로 우리는 글리코상과 함께 하는 멋진 우중 가족사진도 건질 수 있었다. 그런데 그곳은 일본이 아니라 마치 한국 같다. 타코야키를 사는 줄의 앞과 뒤에서도, 이치란 라면을 기다리는 줄에서도 한국말이 들려 마치 명동에 와있는 착각을 일으킨다.





많은 현인들이 여행을 인생에 비유했었지. 예상치 못했던 일들이 뻥뻥 터지는 여행의 순간들이 인생의 여정과 퍽이나 닮아 있다. 길 잃은 미아처럼 헤매이고 다닐 때  잠시 멈춰서 마음을 가라앉히려고 노력했다. ‘심호흡을 해보자’ 후욱 숨을 들이마시고 또 내쉬었다.  평소에 아이들에게 자주 했던 말이 있다. 어떤 종류의 문제가 발생하면 ‘어떻게 하면 될까?’라는 질문을 던져 보라고 말이다. 말은 쉬웠지만 낯선 곳에서 길을 잃었을 때의 불안함은 참으로 컸다.


면허를 따고 운전연수를 받을 때 직진하는 것도 어려워 벌벌 떨었던 나. 고속도로 톨게이트를 처음 통과할 때 얼마나 무서웠는지 나는 영영 운전을 못할 것만 같다고 생각한 순간이 있었다. 하지만 수년이 지난 지금은 시어머니로부터 본인의 아들보다 운전을 잘한다는 칭찬을 듣고 있다. 낯선 나라에서의 길 찾기도 아주 조금씩 익숙해져 감을 느낀다. 처음의 두려움은 조금씩 작아져서 나를 두렵게 하진 않았다. 물론 첫날의 자그마한 자신감을 비웃듯 이후에도 더  많은 헤맴이 있었다는 건 비밀. ‘얘들아 엄마 이제 일본에 좀 익숙해진 것 같아’ 하고 흐뭇해했지만 바로 다음날 실수 연속이었으니 말이다.




얼큰한 이치란 라면을 한 그릇 뚝딱 먹고 나니 이제야 좀 살 것 같다. 맛이 어떠냐는 질문에 엄지 척을 날려주는 귀여운 녀석들. 다행이다. 너희들 입맛에 맞아서. 이제야 일본여행을 시작하는 실감이 난다. 오동통한 문어가 들어가는 타코야키도 호호 불어서 먹으며 주변을 부지런히 서성이며 돌아다녔다. 유람선이라고 하기엔 마치 큰 뗏목 같은 느낌의 배에 앉은 사람들에게 서로 손도 흔들어 주며 비 오는 도톤보리의 길을 걸어 다닌다.


비장한 각오의 첫날이 그렇게 저물고 있었다. ‘반갑다 오사카. 남은 날들을 잘 부탁할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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