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봄 Nov 17. 2024

고3, 수능이 끝났다


수능이 끝난 지 삼일째 되는 날이다. 수능은 모의고사를 보는 느낌이었다. 그렇게 떨리지도 않았고, 시간도 아주 잘만 갔다. 끝나고선 후련했다. 그러면서 동시에 조금 허무했다. 생각만큼 잘 보지도 못했던 것 같았고 공부하지 않은 과목의 등급이 더 잘 나오기까지 해서 어안이 벙벙했다. 또 탐구 과목이 너무 어려웠어서 학교를 나오면서 망한 것 같단 생각이 들었다. 뭐든 다신 수능 치기 싫다는 생각을 하면서 울려대는 카톡 알림을 봤다. 카톡방에서 나랑 같은 탐구 과목을 친 친구들도 나랑 비슷한 반응을 보였다. 그나마 위안을 얻으면서 등급컷이 나오기를 기다렸다. 다행히 목표 최저는 맞추었다.


수능이 끝난 날에는 그냥 집에 누워서 쉬었다. 그다음 날엔 가장 친한 중학교 친구를 만나서 게임도 하고 <곤지암>도 봤다. 그다음 날엔 고등학교 친구 두 명을 만나 수다를 떨었다. 그리고 그날 밤엔 방청소를 하고 방금 말한 중학교 친구랑 영화 <4분 44초>를 봤다.(추천하진 않는다..) 오늘은 남자친구를 만나서 드라마 <선재 없고 튀어>를 봤고 엄마아빠랑 등산을 했고 도서관에서 책을 빌려 잠깐 앉아 읽었다. 읽고 싶어서 메모해 둔 책들이 있었지만 몇 권 검색해 보니 대출 중이어서 그냥 집히는 대로 책 세 권을 빌렸다. 요즘은 지금 현재 떠오르는 내 마음을 따라 살고 있다. 그렇게 사는 게 행복한 것 같다. 지금은 저녁을 먹고 카페에 와서 책을 읽다가 글을 쓰고 싶어 져서 쓰고 있다. 글을 너무 안 썼더니 조금 어색한 것 같다. 그런데 계속 쓰고 싶은 마음은 분명하다.



국수영 공부가 없는 하루들을 보내는 날이 이어지면서 점점 실감을 하게 된다. 정말 나의 십 대가 끝나간다는 생각도 든다. 이제 대학 발표만을 기다리고 있다. 지금부터 3달 정도는 친구들과 놀고 운동도 하고 알바도 하고 자격증 공부도 하고 글도 쓰면서, 그렇게 지낼 것 같다. 수능이라는 10대의 마지막 목표를 끝맺으니 이제 학교에서 뭘 하는 게 좋을까 고민 중이다. 4교시밖에 안 하니까, 그 4시간 정도는 무언가 생산적인 걸 하고 싶다. 그래서 그나마 생각한 게 컴활이랑 한능검 공부다. 사실 이 공부를 하는 게 정말 최선인지 잘 모르겠다. 빈 시간들을 무엇으로 채워야 할지, 온전히 내 몫인 이 시간들. 일단 나는 지금 이것들을 빈 시간에 채워 넣고 싶다. 목표는 계속해서 내가 만들고 이뤄가야 한다. 누군가 던져주지 않는다. 누군가 던져주더라도, 그것이 최선인지는 그 누구도 알 수 없다. 물론 추천받고 싶기도 하다. 나도 내게 무엇이 맞는지, 생각해보지 않고 해보지 않으면 알 수 없으니까. 실컷 도전하고 경험하고 싶다.


나는 이 최선의 선택을 알 수 없는 상황이 좋기도 하다. 내가 이루고 싶은 목표를 자유롭게 정하고 성취감도 느낄 수 있으니까. 인생에 답은 없다. 지금 내가 사는 삶이 만족스럽다면, 그것이 옳은 것이겠지.




10월부터 자기 전에 하는 루틴이 있다. 타임 테이블을 작성하고 3분 명상을 한다. 그리고 긍정확언을 세 가지 정도 작성하고 일기를 쓴다. 한 달 넘도록 엄마랑 하고 있는 루틴이다. 가장 핵심은 3분 명상인데, 눈을 감고 힘을 풀고 앉아있는 그 시간이 생각보다 길다. 짧게 느껴질 때는 정리할 생각들이 많은 하루였던 거다. 그런데 대부분 길게 느껴진다. 그러면서 이 생각도 한다. ‘시간은 정말 많구나. 이루고 싶은 것을 다 이루기에 충분하겠구나’ 수능 공부 할 때도 도움을 많이 받았다. 생각 정리 할 것도 없는 것 같은 날에도 그냥 타이머를 설정하고 눈을 감아본다. 당연한 행동처럼, 관습처럼 해본다. 그러면 정말 신기하게도 생각이 조금씩 흘러나온다. 내가 나를 돌아보는, 오늘 하루를 돌아보는 시간이기도 하다. 타이머가 울리면 3분 동안의 의식의 흐름을 써내려 간다. 적으면서 내게 필요했던 것을 떠올리기도 하고, 쓴 것들을 엄마에게 공유하면서 떠올리기도 한다. 이 루틴은 하루의 마무리인 셈이다.


마지막으로, 마땅히 살아야 할 삶을 살았는가?라고 질문을 던진다. 찝찝한 마음이 든다면 무언가 놓치고 있는 것들이 있다는 신호다. 마음은 거짓말할 수 없다. 그리고 그 마음은 곧 나다. 내가 무언가 불편한 게 있다는 신호는 놓치면 안 된다. 내가 충분히 바꿀 수 있는 문제일 테니까, 왜 찝찝한 마음이 드는 것 같은지 또 질문을 던진다. 답을 곧바로 못 찾더라도 괜찮다. 내가 찝찝함이라는 존재를 알아챈 것만으로도 크다. 누구든 그 존재를 파헤치고 해결할 수 있다. 결국 내 마음에서 비롯된 것이니까.



글을 어떻게 끝내야 할지 모르겠다. 오늘은 그냥 힘을 빼고 의식의 흐름대로 끄적여보고 싶었다. 그리고 앞으로 무엇을 어떻게 해 나갈지 생각하는 시간이 필요했다. 지금까지 이 세상에서 잘 살아왔다고 내게 칭찬하는 시간도 필요했다. 남은 시간도 마땅히 살아보자고 다짐하는 시간도 필요했다. 나는 오늘 마땅한 삶을 살았다.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