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문득 토마토 리조또 생각이 났다. 양파와 베이컨을 달달 볶고 집에 다른 야채가 있다면 추가하고, 소스에 졸졸 끓인 밥 한 공기 위에 구운 새우와 치즈를 얹는 음식. 불과 몇 년 전까지 김치찌개도 끓이지 못했다. 독립하고 식재료를 직접 만지기 시작하며 하나둘씩 만들어 본 메뉴들이 어느새 꽤 늘었다. 요즘은 인터넷에 검색만 해도 원하는 요리의 레시피를 쉽게 구할 수 있으니 누구나 먹고 싶은 걸 만들 수 있다. 맛은 나중 문제다.
아무튼 그 끈덕끈덕한 리조또 생각이 났으나 냉동실에 새우가 단 한 마리도 없었고, 종종 갑각류 알레르기가 일어나는 탓에 새우를 굳이 우리 집 냉장고에 들여놓고 싶지 않았다. (얼마 전 마침 약 1년 만에 새우를 먹고 두드러기가 났다.) 갖고 있는 식재료 중 토마토와 어울릴만한 것. 그리고 가급적 내 다이어트를 너무 많이 방해하지 않는 재료. 아, 닭가슴살이 있지 참.
닭가슴살 토마토 파스타의 재료는 간단하다.
닭가슴살 한 팩 / 베이컨 한 줄 / 토마토소스 (가미되지 않은) / 방울토마토 / 파스타면
마늘 / 양파 / 페퍼론치노 / 치킨스톡
우선 양파를 기름에 달달 볶는다. 흐물흐물해질 때까지 볶는 걸 선호한다. 마늘이 있다면 중간에 투입하면 되지만 하필 마늘도 뚝 떨어지고 간마늘만 있었다. 간마늘은 빨리 타기 때문에 최대한 볶는 단계의 마지막에 넣는다. 어느 정도 익으면 토마토와 베이컨을 넣고 또 열심히 볶고, 간마늘도 한 스푼 크게 넣는다. (사실 난 마늘 토마토 파스타로 이름을 바꿔도 좋을 정도로 많이 넣었다.)
맛있는 냄새 솔솔 날 때 토마토소스 100G을 붓고 페퍼론치노도 뿌린 뒤 조금 끓여준다. 그 사이 삶아 둔 파스타면을 건져서 넣고, 면수에 치킨스톡을 풀어서 조금씩 넣으며 간을 맞추면 끝. 파스타면을 통밀로 바꾸며 익는 시간을 늘 잘 못 맞추게 된 탓에 그냥 면수를 넉넉히 부으며 소스와 함께 조금씩 더 익히는 편이다.
이때, 다른 화구에서는 지글지글 계란 후라이 하나가 튀기듯 만들어지고 있다. 주물팬 위에서 끄트머리가 살짝 탄 후라이를 가장 좋아한다. 파스타가 완성되면 그 옆에 토핑처럼 후라이를 올리고 마무리. 마지막은 멋지게 파슬리를 뿌리거나 바질잎을 얹어주면 된다.
점심 식사는 내 하루 일과 중 가장 고귀한 영역이다. 나는 이 식사를 빠르면 일주일 전부터, 늦어도 전날 밤까지는 구체적으로 계획하고 준비한다. 마음이 바뀔 경우를 대비해 예비 식단까지 생각해 놓는다. 요즘 저녁에는 거의 고구마와 삶은 계란으로 배를 채우다 보니 점심 식사의 중요성이 더 커졌다. 자유식까지는 아니더라도 건강식이면서, 최대한 맛있는 것. 밤에 꼬륵꼬륵 주린 배를 붙잡더라도 다음날 먹을 오후의 식사를 떠올리면 견딜 수 있을만한 그런 메뉴. (다이어트 중 배고픔을 참는 법은 메모장에 먹고 싶은 음식을 적어놓으며 어린아이 달래듯 다음에, 다음에,라고 다독이면 대부분 어떻게든 지나간다. + 그리고 빨리 잔다.)
현재 메모장 음식 리스트업 :
고등어 양배추쌈 / 아보카도 계란 샌드위치 / 할라피뇨 베이컨 파스타 / 에그인헬 (계란 세 개 넣기) 과 호밀 식빵 / 잔치국수
매 끼니 소중하게 먹고 저녁에는 그걸 노트에 옮겨 적는다. 식사 일기장이라고 부르는 그 노트에는 대부분의 맛 표현이 '정말 맛있다' '너무 맛있다'가 반복된다. 단조로운 표현력이지만 일요일 밤에 빼곡히 적힌 한 주의 식사 기록 속에 총 몇 개의 맛있다는 문장이 등장하냐에 따라 만족스러운 표정을, 때로는 아쉬운 얼굴을 하기도 한다. 이만큼 밥에 진심인 나. (다이어트 괜찮은 걸까.)
오늘의 파스타에는 맛있다는 말을 세 번쯤 적어야겠다. 너무 이렇게 점심만 신나면 듣는 저녁이 서운하니 고구마도 먹을만했다고 해줘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