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인에게 휩쓸리지 않고 단단하게 중심을 잡는 법
집에서 생활하면서 여러모로 엄마와 아빠의 의견에 부딪혔다. 결혼 이야기는 더 이상 꺼내시지는 않았지만, 갑자기 자신들의 사위에 대한 이상향을 말씀하시던가 아니면 다른 집 딸 결혼식에 대해 말씀하시고는 하셨다. 그때마다 불편했다. 계속해서 이 문제에 대해 직접 부딪히고 나와 이야기하기보다는 회피하는 걸로 느껴졌다. 나도 지지않고 반박했기 때문일거라 생각된다. 그래서일까 집에서 일어나는 사소한 문제들까지도 나에게는 스트레스가 되었다. 예전에는 부모님이 다 나를 위해 한 말씀이기에 내가 참고 따라야 된다고 생각한 것들이 막상 다시 생각해보면 "내가 원하지 않은 일"일 때도 많았다. 그럴 때마다 속에서 울화가 치밀어 오르기도 했다.
나는 고민하다 답답하고 괴로운 마음을 달래기 위해 서점으로 향했다. 나는 지금의 나의 상태에 대해 알 필요가 있었다. 그리고 왜 이렇게까지 울화가 치미는지 알아야 했다. 그래야 해결할 수 있을거라 생각했다. 나는 답답할 때면 서점이나 도서관을 갔다. 거기서는 위로와 공감을 받기도 하고 예상치 못한 해결법을 얻기도 한다. 물론 주변에 물어보고 도움을 청하는 것도 좋지만, 가끔은 제3자가 하는 말을 듣고 싶을 때가 있다. 주변 사람의 충고도 감사한 일이지만, 각자의 입장차이라는 것이 있어서 나를 흔들거나 헷갈리게 할 때도 있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주변에 조언을 구하기도 했다. 답답한 마음을 털어놓는 곳도 필요했다. 동생들은 당연히 부모님편이었다.(지금은 아니지만) 부모님이 거절할 수 밖에 없는 이유를 그들도 눈치는 채고 있었다. 부모님께서 그러는 것에는 다 이유가 있는 게 아닌가라고 말했다. 물론 왠만한 어른들의 의견은 비슷했다. 재정적인 차이가 작은 문제는 아니니 다시 생각보라는 의견이 강했다. 친구들은 꽤 내 편을 많이 들어주었다. 또래였기 때문인지 공감대가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이렇듯 모두의 의견은 달랐다. 혼란만 가중할 뿐 진짜 내가 원하는 것은 무엇인지 스스로도 알 수가 없게 되었다. 어쩌면 내 편을 찾는데만 치중할 수도 있었다. 그래서 나는 현자들이 모여있는 서점을 선택했다.
심리와 철학 코너에서 서성였다. 솔직히 내가 어떤 문제를 가지고 있는지, 그리고 나의 마음이 이렇게까지 답답한 이유가 무엇인지 알지 못했기 때문에 어떤 책을 읽어야 이 문제가 해결될지 알 수가 없었다. 확실하지 않은 채 마음을 비우고 그냥 오늘 읽을 책이라도 고르자 하는 마음으로 책들을 하나하나 뒤적였다. 그렇게 30분쯤 지났나. 심리학코너에서 빨간표지의 책이 눈에 확 띄었다. 제목은 "홀로서기를 위한 심리학". 로리 애쉬너와 미치 메이어슨이 쓴 책이다. 이 책이 마음에 든 이유는 첫째로는 빨간표지에 문이 열려있는 그림이 마음에 들었고, (마음이 편안해지는 기분?) 둘째로는 부제목이 마음에 들었다.
" 타인에게 휩쓸리지 않고 단단하게 중심을 잡는 법"
내가 찾던 문구였다. 결혼문제도 결혼문제였지만, 모든 면에서 결정을 쉽게 하지 못하고 나의 의견을 피력하는 것에 어려움을 느끼고 있는 나에게 꼭 필요한 책이라 느꼈다. 나는 그 책을 집어들자마자 구입해버렸다. 그리고 이틀만에 그 책을 끝까지 읽어 버렸다.
여러 사례들과 그들이 가지고 있는 마음의 상처들, 그리고 거기서 파생되는 자신들의 결정들과 그 결과에 대해 이야기 하고 각자에 맞는 솔루션을 제공하는 책이었다. 읽으면서 "어, 이거 내 이야기인데.", "이런 마음이 드는 이유가 이런 것 때문이었구나." 하며 매 페이지마다 공감을 했다. 읽으며 나에게 필요한 조언은 메모해두었다. 책을 읽다가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나오기도 했다. 이 책은 나에게 큰 위로가 되었고 실질적인 마음의 기둥이 되어버렸다. (아직도 마음이 답답할 때면 이 책을 펼쳐보고 마음을 가다듬기도 한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며 가장 크게 느낀 점이 있다면 바로 사랑도 내가 원하지 않는 사랑은 폭력임을 알게 되었다. 처음에는 다 나 좋으라고 하는 말씀, 나 좋으라고 해 주시는 음식, 나 좋으라고... 라는 말에 그들이 주는 모든 것들은 옳고 바른 것이 되었다. 그들의 마음은 정말 나를 위한 것이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제안도 내가 거절할 수 있는 것임을 알게 되었다. 그러려면 지금 내가 그것을 원하는지 원하지 않는지 잘 알아야 했다.
나는 노트를 펼쳤다. 그리고 부모님이나 다른 타인이 나에게 어떤 것을 권하면 불편한지 적어봤다. 그리고 왜 불편한지도 생각해봤다. 예를 들면, 부모님께서 저녁을 권유할 때가 있다. 하지만 가끔은 그 저녁이 먹기 싫을 때도 있고 부담스러울 때도 있다. 거절하면 부모님께서 꽤 서운해하신다. 그러면 나는 어쩔 수 없이 먹게 된다. 나는 이로써 내 주장이 존중받지 못한다고 느낀다. 나보다는 부모님의 기분이 우선인 듯 싶어서 꽤 불편했던 것이다. 그래서 나는 이제 그런 일이 생긴다면 정중하게 그러고 싶지 않다고 말씀드릴거라 다짐했다.
그리고 다음날 나는 이 거절한다는 표현을 해야 할 일이 생겼다. 마음을 굳게 먹고 나의 의견을 말씀드렸다. 부모님은 여전히 말했다. 그래도...하시며 두번은 더 권하셨다. 하지만 나는 지금 그럴 마음이 들지 않는다고 말하고 방으로 들어갔다. 방에 들어와 책상에 앉아있는데 마음이 두근거렸다. 마치 뭔가 잘 못한 게 있는 아이처럼! 하지만 나는 심호흡을 하고 스스로를 달랬다. 잘했다. 언제든 겪어야 하는 일이다. 나를 스스로 챙겼다는 것이 자랑스럽다고 스스로를 안심시켰다. (그래도 정말 어려운 과정이다. 이때 내가 죄를 지은 것 같은 기분에 가끔 우울해지기도 했다. '그냥 내가 잠깐 불편하고 말지. 이런 기분을 느끼는 게 너무 괴롭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래도 꾹 참고 불편함을 표현했다. 나에 상태에 대해 표현할수록 나를 더 꼼꼼히 살필 수 있는 기회가 왔다.)
죄책감이 따라왔지만, 그 이후에는 아무일도 생기지 않았다. 내가 거절한다고 해서 무너지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나는 그렇게 천천히 불편함을 표현하고 거절하는 방법을 익혀갔다. 그 거절과 불편함을 표현하는 의미는 스스로 지금의 상태가 어떤지, 그것들을 원하는지 그렇지 않은지 스스로에게 물어보고 답한 뒤에 나를 표현하는 행위였다. 이제는 부모님도 한번 물어보시고 내가 거절하면 두번은 잘 물어보시지 않는다. 친구나 사회의 지인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래그래 했던 대답에서 나는 더 디테일하게 나의 상태에 대해 표현했다. 나는 스스로 더 존중하고 배려한다고 느껴서인지 모르겠지만, 내 의견을 들은 대부분의 사람들도 나의 의견을 존중했다.
나는 그렇게 자립의 첫 발을 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