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여주기가 아닌 진짜 내가 원하는 것으로부터.
내가 회사를 다녀오거나, 일이 있어서 밖에 나갔다 오면 언제나 방이 깨끗하게 정리되어 있었다. 예전에는 별 이상함을 느끼지 못했다. 그냥 엄마가 집을 청소하는 김에 내 방도 치워주셨구나 하고 생각했다.
작용이 있으면 반작용이 있는 법. 엄마가 내 방을 치우고 난 후에는 항상 잔소리가 이어졌다. 방 좀 깨끗이 써라. 물건 정리 좀 해라. 방 꼬락서니가 이게 뭐냐. 어지르는 사람 있고 치우는 사람 따로 있다. 등등... 퇴근하고 와서 그런 말을 듣고 있자면 나는 더 피곤해졌다. 그리고 고마움보다도 '누가 치우라고 했나... 그냥 놔두지 그럼.', 이런 삐뚤어진 마음이 자꾸 비집고 올라왔다.
나는 내향적인 성격이어서 밖에 나갔다 들어오거나 평일에 일을 끝내고 오면 오롯이 침대에 혼자 누워있고 싶을 때가 자주 있다. 그럴 때마다 내가 닫아놓은 방문을 부모님은 노크도 없이 문을 불쑥 열어젖힌다.
"혼자 방에서 뭐 해?"
그럴 때면 없었던 화가 치밀어 오르기도 한다. 도대체가 이 분들은 내 사생활은 없다고 생각하는 것인지. 아니면 그럴 필요가 없는 것이라 느끼는 것인지 알 수 없다. 나는 부모님과 실랑이를 하고 나면 힘이 주욱 빠져버린다. 도대체가 왜 나를 혼자 놔두지 못해 안달이신 걸까.
계속 이런 생활을 반복하다 보니 어디서부터 잘 못 됐는지 알기가 힘들다. 며칠을 곰곰이 생각해 봤다. 도대체 나는 왜 내 방이 있음에도 자꾸 공간을 침범받는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을까. 이 불편한 마음을 어떻게 없앨 수 있을지. 어떻게 하면 그들에게 나의 공간을 독립적으로 지켜낼 수 있을지 계속해서 생각했다.
나는 이 방에 대한 이 공간에 대한 모든 권리를 나에게로 가져와야 한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그래서 청소고 뭐고 다 내가 알아서 해야 할 일이라고 느꼈다. 그래서 나는 이제 방청소는 내가 해야겠노라 마음먹었다. 나는 주말저녁 가족과 저녁을 함께 먹으며 말을 꺼냈다. 나는 더 이상 나의 공간에 대한 책임과 권한을 엄마나 아빠에게 더 이상 주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내 방을 내가 돌보겠노라 말했다.
"엄마 이제 내 방 내가 청소할게요. 내 방은 청소 안 해도 돼."
돌아오는 엄마의 대답은 비관적이었다.
"네가? 그래놓고 안 치우려고? 나중에 그럼 또 내가 치워야 되잖아."
"아니야. 진짜야."
그 이후로도 내가 치운다고 말은 했지만, 엄마는 믿지 못하는 눈치셨다. 그렇지만 나는 내 방의 주권을 되찾기 위해 스스로 청소를 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귀찮기도 하고 힘이 들기도 했다. 업무가 늘어난 느낌이랄까. 특히 평일에는 직장생활을 하다 보면 너무 힘들고 지칠 때가 많다. 그럴 때면 청소를 넘기기도 했다. 엄마가 매일 지켜보고 있다는 압박감과 내 방을 내 것으로 만들려는 노력이 버겁게 느껴지기도 했다.
엄마에게 내 권리를 주장하기 위해 보여주기식의 청소는 오래가지 못했다. 내가 원해서 시작한 청소였지만, 남에게 보여주기 위해 해야 하는 이 청소가 점점 싫어졌다. 이것을 굳이 해야 하는지, 도대체 누구를 위해서 해야 하는 일인지 매번 의문이었다. 그렇게 정리되던 방은 시간이 갈수록 더 어질러지기 시작했다. 정신 차리고 돌아보니 방은 정말 엉망진창 그 자체였다. 물건은 제 자리를 찾지 못해 쌓여있었고, 옷장은 어떤 옷이 있는지 모를 만큼 뒤죽박죽이 되어있었다.
나는 정말 돼지우리처럼 어질러진 방을 보고 도대체 왜 이런 것에 스트레스를 받고 에너지를 쏟고 있는지 스스로가 이해되지 않았다. 내 방은 내가 청소하는 것이 당연하고 내 방은 나 자신이 머무르는 공간이고 내가 치유받고, 스스로 많은 것을 할 수 있는 곳인데 왜 이토록 방치해 두고 엄마와의 기싸움을 하고 있었는지, 스스로가 한심했다. 나는 엄마에게 보여주기 위해서가 아니라 진심으로 나의 공간을 나의 것으로 다루어내야겠다고 생각했다. 내가 마음 놓고 쉴 수 있는 공간을, 집중해서 책을 읽고, 작업을 할 수 있는 공간으로 만들어야겠다고 다짐했다.
'그래, 청소를 해야겠다.'
나는 나를 위해 청소를 하기로 마음먹었다. 주말에 날을 잡고 방을 뒤집었다. 필요한 물건과 필요 없는 물건을 분류했다. 쓰지도 않고 처박혀 있던 물건들이 눈에 하나둘씩 보이기 시작했다. 그런 물건들은 버리거나 나눠주었다. 항상 쓰는 물건들은 내 곁에 두었고, 또 항상 쓰지는 않지만 필요로 한 물건들에게는 그 물건들의 자리를 만들어주었다. 서서히 하나둘씩 정리되어 가고 있는 내 주변이 마음에 들었다.
정리를 하고 보니 청소하기는 더 쉬워졌다. 매일 물건은 제자리에 두면 되었고, 청소기를 돌리고 방을 닦는 데에 걸리는 시간은 그렇게 오래 걸리지 않았다. 나는 내방을 청소하고 정리하면서 스스로를 사랑하고 돌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매일은 아니더라도 일주일에 3-4번씩 방을 정돈하고 청소했다. 그럴 때면 복잡한 마음도 조금은 해소되는 느낌이었다. 이렇게 하는 청소는 곧 습관이 되었다.
사소한 행위일지라도 스스로를 위한 것임을 알았을 때, 나의 주변의 환경들이 점차 나를 존중해 주는 것으로 변화하고 있음을 느꼈다. 누군가에게 보여주기 위해서 시작하면 그 마음은 오래가지 않는다. 스스로 자신만의 내적 동기를 찾는 것, 그리고 그 내적동기를 좋은 에너지로 발산하는 것이야 말로 진정한 자립이 아닐까.
방에 애정을 갖게 되니, 방에서 하는 나의 모든 행동들과 모든 행위들도 좋게 느껴졌다. 부정적이고 우울했던 생각들은 어느새 정리가 되어있었고 책상에 앉아 무언가 할 때 집중이 훨씬 더 잘 되었다. 스스로 방을 책임 있게 돌보았기 때문일까, 아니면 나의 내면적인 변화 때문일까. 어쩌면 둘 다 일지도 모르겠으나, 어느샌가 부모님이 내 방에 함부로 들어오는 일은 사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