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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mberMist Apr 05. 2024

망망대해에 혼자 표류하는 것 같은 날에도

돌아보면 너는 절대 혼자 표류했던 적이 없었다...

사회생활을 시작하고 커리어를 쌓는 동안 숱하게 길을 잃었었다. 버텨야 할지, 다른 시도를 해봐야 할지, 어떻게 성장할 수 있을지, 성장이 가능은 한 것인지, 내가 원하는 성장이란 무엇인지...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문득 여긴 어디, 난 누구... 하고 현타가 오면서 막막해지는 순간들을 숱하게 겪었다....


온마음을 다해 열정을 불사르며 일하던 조직에서 해고되던 때에도, 안정적인 장기체류 비자도 없이 매달 백만 원이 훌쩍 넘는 렌트비를 날려가며 구직에 대한 희망으로 버티던 싱가포르에서도... 다시 또 맨땅에 헤딩하는 마음으로 미국 취업 시장에서 실패의 고배를 마시고 또 마시며 구직활동을 할 때에도... 늘 길을 잃은 기분이었다.


Take pride in how far you've come. Have faith in how far you can go... 트렁크 달랑 2개 들고 한국을 떠나 싱가포르행 비행기에 몸을 싣던 나에게 스스로 해주던 말... 이 문구를 무거운 발걸음으로 터덜터덜 걷던 푸라자 싱가푸라 쇼핑몰 장식품 가게의 책갈피 소품에서 발견하고는 눈물을 흘렸더랬다... 그래서 싱가포르에서의 삶을 정리하고 다시 미국행 짐을 꾸리며 마지막 직원 혜택을 쓰면서 주문했던 아이패드에도 이 문구를 각인했었다.


오늘 새벽잠도 덜 깨서 반만 떠진 눈으로 회의에 들어가 멍하게 팀 사람들의 논의를 듣다가 문득 지금 나는 이 팀에 꼭 필요한 사람인가... 나는 여기서 더 성장할 수 있을까... 혹시 나의 한계는 여기까지인 것일까... 싶으면서 수만 가지 생각과 감정이 교차했었다.. 또다시 길을 잃고 망망대해를 홀로 표류하는 기분이 나를 덮쳤다... 조직이 여러 차례 변경되는 와중에 새로운 업무를 맡게 되었고, 이미 다른 팀원들이 매우 잘하고 있는 일이지만 업무량이 너무 많아서 내가 나눠 받아야만 하는 상황이 쉽게 적응이 되지 않는다... 그동안 내가 쌓아온 것들이 모래바람에 휩쓸려 사라져 버린 듯한 허무함과 새로운 것에 대한 막막함이 겹쳐서... 20년 경력에 40대 중반 아줌마가 다시 신입이 되어버린 기분...


이른 아침 미팅들을 마치고, 사무실로 출근하면서 새벽에 들었던 기분을 곱씹어 보았다.... 그러다가 문득 고마운 얼굴들이  떠오른다...


객관적 잣대로 좀 더 나은 내가 되어보고 싶어서  그저 늘 간절하고 초조했던 20대의 나, 30대의 나의 나날들.... 미숙하고, 부족하고, 어리고 그래서 거침없고, 무식해서 용감하고 자신감에 가득 찼던 돌아보면 부끄러움과 미안함이 가득한 그 시절.... 돌아보면 나의 여정에는 늘 그렇게 미숙한 나를 고운 시선으로 봐주고 응원해 주던 선배, 상사, 동료들이 있었다. 나라면 그렇게 무식 용감하고 건방진 후배를 고운 시선으로 봐줄 수 있었을까 자신이 없는데... 그때 그들은 늘 나를 응원하고 믿어 주었었다.


또다시 마흔 중반에 길을 잃고 헤매고 있지만.... 그때의 그들이 또 나를 응원하고, 너는 잘할 줄 알았다고 해주어서... 나는 여기서 주저앉을 수가 없을 것 같다.


엔지니어도 아니고, 유명은커녕 아무 미국학교 학위 한 장 없고, 영어도 자신은 없지만 그래도 포기하지 말고, 모르는 일을 하게 되어서 자신은 없지만... 그저 노력하는 모습하나로 곱게 봐주고 나를 응원해 주던 그들을 생각하며... 오늘도 곱씹는다. 버티는 것도 능력이다... 그리고 Have faith in how far you can 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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