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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멍 Nov 19. 2024

나는 삶에서 무엇을 기대했나

스토너 - 존 윌리암스

  아이들과의 점심시간에는 먹을 것에 정신이 홀려 주로 무의식에서 툭툭 나오는 대화를 주로 합니다. 하나 무의식의 대화가 때로는 삶을 관통할 때가 종종 있습니다. 어제가 그랬죠. 시작은 초등학교 졸업하면 제가 짜장면을 사주기한 약속을 잘 기억하고 있냐는 다분히 사채업자스러운 아이들의 말이었습니다. 그리고 20살이 되면 2학년 담임 선생님이셨던 초록쌤이 자기들에게 치킨을 사주기로 했다나 뭐라나. 그 말을 시작으로 우리는 미래에 대해 이야기하기 시작했습니다.


"우리가 선생님 나이가 되면 뭘 하고 있을까?"

"나는 캐릭터 디자이너가 되어서 게임을 만들었으면 좋겠다."

"나는 축구 해설사!"

"나는 그냥 백수로 맨날 놀건대."

"야 사람이 일을 해야지."

"선생님은 어릴 때 꿈이 뭐였어요?"


  아이들의 뇌를 거치지 않은 질문에 저도 뇌를 거치지 않고 대답을 했습니다. 제 대답은 2년 동안 6학년 아이들을 가르치면서 줄곧 생각해 왔던 생각이었습니다.


"선생님은 어렸을 때 만화가가 되고 싶었어. 근데 나는 꿈이랑 하고 싶은 직업이랑은 다르다고 생각해. 만약 꿈이 직업이라면 내가 그 직업을 얻게 되면 꿈이 사라져 버리잖아."

"그럼 꿈이 뭔데요?"

"캐릭터 디자이너가 돼서 어떤 게임을 만들고 싶은지, 어떤 축구 해설사가 되고 싶은지, 백수도 어떤 백수이고 싶은지.... 이런 게 꿈이 아닐까."


  이 이야기를 들은 승훈이는 이렇게 정리를 해줬습니다.


"그니까 꿈은 '어떤 사람으로 살지'인 거네요?" 그리고 이렇게 덧붙였습니다.

"그럼 선생님은 지금 꿈을 꾸고 계세요?"



난 내 삶에서 무엇을 기대하고 있지?


  스토너도 비슷한 물음을 던집니다. 실패에 가까운 스토너의 인생. 그는 학자로서 명성을 떨치지도 못했고, 교육자로서 학생들의 인정을 받지도 못했으며, 사랑에 성공하지도 못했습니다. 그는 선하고 참을성 많고 성실한 성격이었으나 현명하다고 하기는 힘듭니다. 불굴의 용기와 지혜로 난관을 극복하기보다는 조용히 인내하며 기다리는 편입니다. 스토너는 계속 참고, 악의 무리는 승승장구합니다. 그는 죽음을 앞둔 병상에서 같은 질문을 몇 번이나 되뇝니다. 


"넌 네 삶에서 무엇을 기대했나?"


  어떤 사람이 될 것이냐, 어떤 사람으로 살아갈 것이냐, 네 삶의 의미는 무엇이냐... 이와 같은 질문은 모두 실존에 대한 질문입니다. 존재의 이유를 묻는 것이죠. 요즘 같은 시대, 특히 대한민국에서는 멸종되어 가는 질문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어릴 때부터 실존에 대해 묻기보다 '뭐 먹고살 것이냐' 따위의 생계에 대한 질문 만을 물어왔습니다. 30 언저리까지 살아오니 저도 이제 어렴풋이 느끼는 게 있습니다. 비싼 초밥으로 끼니를 채우는 사람이나 100원짜리 빵으로 허기를 달래는 사람이나 뒤지는 것은 매한가지라는 것입니다. 공평한 죽음 앞에서 삶은 공평하게 허무합니다. 내가 무엇을 먹는지 따위로는 이 허무함을 떨쳐낼 수 없습니다. 곧 져버릴 이 짧은 생을 어떤 이야기로 채워갈지 고민하는 실존의 질문이 생계의 질문보다 중요한 이유입니다.


  생명의 거대한 흐름 속에 나는 여러 모양으로 존재합니다. 나의 모양은 매 순간 변하기에 하나의 모양에 집착하는 태도는 어리석고, 덧없습니다. 하지만 이것이 지금의 모양, 이 순간의 나라는 존재 자체가 덧없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세상만물은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서로에게 영향을 줍니다. 조건으로 만들어진 존재가 다시 조건이 되어 또 다른 존재를 피워냅니다. 그러니 나는 존재만으로 세상만물에 영향을 주는 아주 중요한 존재인 것입니다. 예를 들어 구름이 비를 내리게 하고, 비는 강물을 흐르게 한다면, 구름도 비도 다른 존재를 만드는 중요한 존재인 것처럼 말입니다. 내가 이렇게 존재만으로 세상만물에 영향을 준다면, 어떻게 존재할지 스스로에게 되묻는 것이 중요할 것입니다. 나는 사람이기에 어떤 사람으로 존재할 것인지, 어떤 사람이 되기로 선택했는지, 내가 지금 하는 일이 무엇인지 답을 찾고자 고민할 필요가 있습니다. 나라는 사람이 무의미할 때는, 내가 스스로 무의미한 존재로서 살아갈 때뿐입니다. 봄바람에도 순식간에 사라질 먼지지만, 어떤 먼지로서 존재할지의 선택은 나에게 있고 그 선택을 고민하는 일은 충분히 의미가 있습니다.


  그럼 여쭙겠습니다. 당신은 어떤 사람으로 살고 싶나요? 당신은 삶에서 무엇을 기대하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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