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들 건강하세요, 도비는 이제 자유예요.

2호선 무표정한 사람들 사이에서, 마지막 출근.

by 최꽃봄

적당히 눈치가 있는 편이었지 싫다, 부당하다는 말을 참는 사회생활은 아니었다.


상사들을 웃게 하는 것 또한 어렵지 않았다. 다들 나를 좋아했고, 나도 대부분이 좋았다. 이 소속에서는 그 나름의 입지를 다졌다 자부했고, 힘든 때야 있었지만 대체로 할만했다.


8년 차가 되던 해에는 처음으로 상사들이 측은해 보였다. 그날도 어김없이 아무 말을 쏟아내던 그 입. 그 쓸모없는 농담 역시 일종의 공감대 형성을 위해서이지 않았을까, 생각하니 그 어리숙함이 불쌍해 보였다.


이쯤 되면 업무상의 장애도 전화 한 통이면 풀리게 된다. 신입사원의 끙끙대던 전화를 내가 이어받으면, 안되던 게 되게 된다. 잠시 존경스러운 선배가 되는 것이다.

일을 하다 망설이는 시간은 줄어든다. 집중해야 할 것과 포기해야 할 것들이 헷갈리지 않는다고나 할까. 사실 이는 번지르르한 허울이고, 단념이 빨라진다. 안되면 되게 하라? 시대가 변했다. 현세의 도비는 안된다 싶으면 얼른 되는 걸 해야 한다. ‘언변술사’에겐 두려운 보고도 없다.


그러던 어느 유난히 따뜻했던 겨울, 22년 12월 23일, 나는 마지막으로 2호선 사람들을 비집고 퇴근하였다. 이유야 많았다만 다 꺼내놓진 않았다. 엄마로서의 삶에 충실하겠다고만 말하였고, 모두 나를 동정했다. 진심이 담긴 동정을 받는 것은 조금 미안한 감이 있었지만, 어느 종류의 진실은 그저 마음에 담아두는 편이 낫다 생각했다.


사람들이 터져 나오는 잠실에서는 버스를 놓칠세라 역시나 뛰었다. 땀 흘리는 버스 안. 아, 마지막이었다. 까만 한강이 내려다 보였다. 퇴사를 결심했던 그 잠실대교다. 하늘 위엔 초승달이 옅게 웃고 있었다. 늘 서서 보며 ‘이번 달도 바쁘겠네’ 하던 달이다.


빨간버스에도 하차감이 존재한다. 고된 하루를 보낼수록 하차감은 달콤하다. 1000번 버스의 마지막 하차감은 상쾌했다. 케케 한 머릿속을 열어 환기시킨 기분. 공기 속에 섞여있는 나무의 날숨이 힘겨웠던 이별을 위로해 주는 듯했다.


드디어 작별. 다들 건강하세요, 도비는 이제 (잠시) 자유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