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에서 S로

N에서 S로 혹은 J에서 P로

by 도나리


새틴원단으로 꽃을 만들어 보면 어떨까? 20대 초반만 해도 난 상상력이 뛰어났다.

공연예술학부 대학 축제 행사 때 착용할 의상을 직접 만드는 작업에 참여했고 주제는 '숲'이었다. 숲 속 요정, 숲에 있는 꽃, 숲에 있는 나비 등을 형상화하여 의상, 분장 등을 하고 대학로에서 퍼레이드를 하는 행사였다.


내가 담당한 배역은 '꽃'이었다. 사실 요정은 자신 없었고 꽃 정도는 할 수 있겠다 싶었다.

꽃을 어떻게 만들까 고민하다 보니, 밀짚모자로 원형틀을 잡고 새틴 원단에 와이어를 넣어 꽃잎을 표현하고, 꽃잎을 붙여서 꽃봉오리를 만들면 꽃처럼 보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고, 공강인 날 동대문으로 향했다.


내가 원하는 원단을 찾기란 서울에서 김서방 찾기 정도였달까,

동대문 종합상가 2,3,4층 다 돌아봐도, 층마다 원단 별로 나눠져 있어도, 눈에 띄는 원단은 없었다.

그 와중에 보였던 세일코너 자투리 원단으로 눈길이 저절로 갔고 알록달록 한 반짝거리는 주황+핑크빛의 원단이 있었고, 이거다 싶었다.


작업지시서 같은 건 필요 없을 정도로 어떤 모양이 나올지 머릿속에 이미 도안이 있었다. 이미 상상으로 만들었고, 머릿속으로 이 꽃모자를 쓰고 대학로에서 런쓰루(run-through)까지 했다. 어쩌면 아주 계획적인 유형이었을 수도.



480b0fe3-8214-44b8-97ef-dc94cddbc9f8.png 재학시절 당시 만들었던 새틴원단 꽃 모자



정반대로 지금의 나는 180도 변화했다. 어떤 계기로 변했는지는 알 수 없으나, 어떤 상황을 두고 그 상황이 이러면 어떨까 또 저러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더 이상 하지 않게 되었다. 그냥 그 상황은 그럴 수도 있는 자연스러운 일로 넘기거나 인정하고 넘어가게 되는 성향으로 바뀌었다.


현실적으로 모든 상황을 보이는 대로 받아들이는 게 어떻게 보면 철이 들어서 장점이 된 걸 수도 있고, 나만의 스킬이 변한 부분에 대한 아쉬움도 공존했다. 한동안은 전자에 취중 하여 생각했고, 점점 번아웃이 오면서 후자의 생각으로 치우치고 있다.


퇴사와 이직을 생각하며 이 회사에서 내가 버틸 수 없는 이유들을 나열해 보기도 하고, 나의 업무적인 장/단점을 점검하는 단계까지 오게 된 것 같다.


난 어떤 스킬을 갖고 있을까, 또 이것을 가지고 나는 또 다른 어떤 일을 잘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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