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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봄 Nov 17. 2023

인플루언서 봄작가의 영향력 있는 하루

2028년 11월 17일 금요일, 바람은 차갑지만 햇살이 눈부신 날

수경을 단단히 고쳐 쓰고 깊은 숨을 한 번 '후~' 내뱉었다.


이른 아침이라 아직 들어온 사람이 없는 H호텔 실내수영장. 고요한 공간에서 찰랑이는 깨끗한 물을 보고 있자니 머릿속이 차분히 정리되며 하루를 열심히 살아낼 밝은 기운이 발끝에서부터 올라오는 기분이다. 가볍게 몸을 풀고 그대로 따스한 물속에 몸을 풍덩 맡긴다.


바깥의 온도가 떨어질수록 이곳의 수온은 더 따뜻해진다. H호텔 수영장은 사시사철 언제나 기분 좋게 수영할 수 있는 수온을 유지하는 것으로 정평이 나 있다. 이곳은 물에 들어가기 전 차가운 물을 몸 여기저기 뿌리며 닭살 돋은 몸이 진정하기까지 기다릴 필요가 없다. 발을 담그는 순간 느껴지는 따스한 물결은 몸속 깊숙이 숨어있는 긴장마저 풀어줄 것 같다. 부드러운 물결에 몸을 맡기고 천천히 헤엄쳐 나가다 보면 뜨겁지 않은 찜질방에서 뒹굴뒹굴하는 느낌이다. 처음 물속에 들어갔을 때부터 몇 십 분을 계속해서 수영을 해도 전혀 덥거나 답답한 느낌 없이 끝까지 부드럽게 몸을 감싸주는 적당한 온도.

  

그래, 바로 이거지~


여기서 유유히 헤엄칠 때면 저절로 나지막한 탄성이 나온다. 매일같이 오는데도 이 나른하면서도 에너지가 끌어 오르는 느낌이 어찌나 좋은지 매번 감탄한다. 그 기분을 잊지 못해 매년 H호텔 회원권을 결제하고, 새벽이면 몸을 일으켜 이 수영장에서 고요하고 상쾌한 하루를 시작한다.


어느덧 쉰에 가까운 나이, 예전보다 다양한 직업을 갖고 분초를 다투며 사는 분주한 삶 속에서도 끊임없이 긍정적 기운을 발산하며 즐겁게 살 수 있는 건 이 수영장에서 하루를 시작하는 덕분인 것 같다.


브런치 에세이스트, 번역가, 블로그 연재소설로 출판과 드라마 판권을 계약한 작가, '엄마와 아이가 함께 성장하는 글쓰기'를 주제로 강의하는 강연가이자 온라인/오프라인 글쓰기 학당을 운영하는 원장, SNS에 올린 짧은 구절들이 인기를 끌며 '명언 제조기'로 알려진 팔로워 1만의 인플루언서. 특유의 서늘한 입담으로 종종 방송 출연도 하고 있고, 내년부터는 문예창작과 겸임교수로 대학 강단에도 서기로 되어 있다.


직업이 워낙 많다 보니 스스로 '인플루언서 작가'라 통칭을 정해 사용 중이다. 정보미 작가라는 풀네임보다는 '봄작가'라는 애칭으로 불리는 걸 선호한다. 새싹이 돋아나는 봄, 설렘 가득한 그 이름은 새로운 일에 늘 도전하고 싶은 의욕을 담기에 안성맞춤이다.


일단 부딪혀 보는 엄마를 보고 자라서인지 이제 고등학생이 되는 아이의 꿈도 계속 커지고 있다. 아이는 오랜 고민 끝에 유학을 염두에 두고 국제학교를 선택했다. 아직 국내에서 공부할지 정말 해외로 갈지 결정은 하지 않았지만, 아이는 본인이 개발하고 싶은 로봇과 관련된 아이디어를 계속 발전시키며 희망하는 학교를 찾고 있는 중이다. 이렇게 스스로 알아서 잘할 텐데, 아이가 어렸을 때는 수학문제 하나, 영어단어 하나에 뭐 그리 애간장을 태우며 살았는지 머쓱해진다.


남편은 여전히 회사를 다니고 있지만 5년 전처럼 사무실에서 해결 못한 과제를 안고 와서 한숨을 푹푹 내쉬지 않는다. 남편도 그동안 많이 성장해서 일처리나 의사결정을 하는 속도가 빨라졌고, 그렇게 절약한 에너지는 본인이 하고 싶었던 사이드잡에 좀 더 할애한다. 본인이 직접 곡을 만들지는 않지만 음악을 듣는 센스가 있는 남편은 우리나라에서도 인기를 끌만한 외국곡의 저작권을 가져온다. 나와 함께 감각적인 가사를 붙이고 엔터테인먼트 사에 소개해서 K-pop으로 재탄생시켜 역수출을 하는 것이다. 원석을 캐고 멋지게 세공까지 할 줄 아는 엔터계의 보석상인 셈이다.


5년 전 나의 삶은 소비하고 소모하는 하루하루였다. 나의 시간을 소모해서 얻은 대가로 소비를 하는 삶이었고, 나의 에너지는 끝도 없이 회사로 가족으로 빨려 들어가며 내 존재는 조금씩 삭아들고 있었다.


지금도 나의 하루는 분주하지만 바쁘게 보낸 시간은 그저 사라져 버리지 않고 나의 명성과 부의 형태로 계속 쌓인다. 5년 전 글을 쓰기로 결심하기 전까지는 그저 정신없이 흘러가기만 했던 순간들이 소중한 글감이 되어 브런치 서랍 속에, 블로그의 임시저장 글에, 다이어리 한쪽에 차례차례 자리 잡는다. 때가 되어 글감에 생명을 불어넣으면 빛나는 작품이 되어, 촌철살인의 한 문장이 되어, 누군가의 마음속에 잊을 수 없는 구절로 또 쌓인다.


그리하여 오늘 나의 하루는 누군가에게는 용기를 주고, 다른 이에게는 꾹꾹 놀러 참고 있던 뜨거운 눈물을 터뜨리게 하고, 또 어떤 사람에게는 잊었던 꿈을 되살리게 하는 영향력 있는 하루로 쌓인다. 차곡차곡.





제목 사진: 작가 직접 촬영

본문 사진: Unsplash의 Bernard Herma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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