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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날 Dec 02. 2022

엄마와 땅콩

“집이가? 땅콩 방금 택배 보냈는데 내일이나 모레 도착하지 싶다.”

“뭐하러 택배를 보내요. 그냥 조금 사먹으면 되는데.”

“올해가 마지막 땅콩일 수 있는데 먹어봐라. 씻어서 보냈으니까 그냥 삶아도 된다.”

벌써 몇 년째일지 모르는 엄마의 ‘마지막 농사’이야기를 하며 통화를 마쳤다.

올해는 일정이 맞지 않아서 일손을 도와드리지도 못했는데 택배로 보내주신다고 하셨다.

그리고 다음날 도착한 뽀얀 땅콩 한봉지는 우리 식구들에게 행복한 시간을 선물했다.  

  

엄마는 매년 봄이 되면 “올해가 마지막 농사지 싶다. 시간날대 쪼매만 거들어주면 된다.”라며 밭농사를 시작하신다. 팔순을 바라보는 엄마는 아직도 밭에 가면 즐겁다고 하신다. 작물이 자라는 것을 보는 것도, 자식들에게 나눠주는 것도 좋다고 하신다.

“땅콩은 왜 자꾸 심어요? 캐기도 힘드는데”

“내가 좋아하니까 안하나. 땅콩이 손도 덜 가고 팔기도 쉽잖아”하신다.

땅콩은 초기에 비둘기가 씨앗만 빼먹지 않는다면 별탈 없이 잘 자라는 작물이다. 

몇 년전부터 땅콩을 캘 시기가 되면 친정에 이삼일 머물러서 일손을 도왔다. 시골에서의 아침은 예나 지금이나 빨리 시작한다. 아침을 먹고 나서 엄마는 소투리에  새참을 주섬주섬 담으며 “너는 천천히 하고 온다” 라고 말하고는 소쿠리를 오토바이에 싣고 밭으로 가버린다. 준비를 하고 걸어서 10분거리에 있는 밭에 도착하면 엄마는 벌써 저만치 앞에서 콩을 뽑고 있다. 엄마랑 이야기 하며 땅콩을 뽑다보면 어느새 긴줄이 끝난다. 잠시  쉬면서 삶아 온 땅콩도 먹고 둘이서 커피도 한 잔 씩 마시는데 엄마랑 밭에서 마시는 커피는 유독 더 맛있게 느껴진다.

비가 유난히 내리지 않았던 몇 년 전, 내 기억으로 가장 힘들게 땅콩을 수확했다. 땅이 굳어져서 호미로 땅을 파서 한포기씩 뽑아야했다. 뽑히지 않는 땅콩을 잡아당기면 콩은 땅에 박혀서 나오지 않고 뿌리만 덜렁 나왔다, 다시 호미로 빵을 파서 알맹이를 골라냈어야했다. 팔은 물론이고 손가락 마디마디가 아팠다. 점심을 먹을 때 손이 떨려서 젓가락질을 할 수가 없을 정도였다. 

그 모습을 본 엄마가 “내가 일을 안해야 너희들이 고생 안할건데”하셨다. 

“내년엔 안 할거지요?”  

“내년에는 내가 일 하겠나. 올해가 마지막이지싶다.”

하지만 그 다음해도 땅콩을 심고 수확했다. 

나는 이삭줍기한 땅콩을 좋아한다. 땅콩을 뽑고나서 호미로 주변 땅을 파보면 나오는 땅콩을 통에 따로 모은다. 왠지 더 토실토실해보이기 때문이다. 집에 가지고 와서 삶아 먹고 반찬도 해먹는다. 한소쿠리 삶아서 모임에 들고 가서 엄마표땅콩이라고 자랑을 한다. 


아이들이 이유식을 시작할즈음 엄마는 말린 땅콩을 갈아서 보내주셨다. 이유식을 끓일 때 넣어서 끓이면 고소해서 아이들이 잘 먹었다. 그래서 우리 아이들은 아직도 땅콩죽을 좋아한다. 몇 년전 부터는 농업기술센터에서 탈피기를 빌려서 손쉽게 땅콩껍질을 벗기지만 예전에는 밤마다 온 식구가 하는 모여 마른 땅콩 껍질 벗기고 알을 고르는 것이 일이었다. 손가락이 아파오면  발꿈치로 눌러서 껍질을 벗겼다.

엄마는 과수원을 할때부터 빈 땅에 땅콩을 심었다. 사과를 팔고 들어온 돈은 아빠 몫이었지만 땅콩같은 잡곡 수익은 엄마와 할머니가 유용하게 쓸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일찍 홀몸이 되어 세 남매를 키워야했던 엄마에게 땅콩은 먹거리가 아니라  빡빡한 삶에 조금은 숨통을 틔울 수 있게 하는 수단이 되기도 했다. 자식들이 이제는 일을 그만하시라 권하고 있지만 엄마는 아직은 움직일 수 있다며 밭을 일구고 씨앗을 넣고 모종을 심는 걸 멈추지 않으신다.

며칠전 친정에 다녀왔다 “내년에는 땅콩을 일찍 심어서 일찍 수확하고 거기다 배추 심어야겠다. 배추를 늦게 심어서 알이 실하지 않다.”하셨다. 난 내년에도 엄마표 땅콩을 먹을 수 있을 것 같다. 올해도 엄마의 건강은 괜찮았나보다. 내년을 계획할 정도로 행복하셨나보나. 우리 엄마의 내일이 건강하고 즐겁고 행복하기를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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