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행기 타기 전에 신발 벗어야 하는 거 알고 있지?” 난생처음 비행기에 타게 됐다. 친구는 놀리듯 말했다. 고소공포증이 있어 잔뜩 긴장해 있는 나를 보며 장난친 것이다. 무서움을 무릅쓰고 가려는 곳은 제주도. 고등학교 때 아팠던 탓에 제주도를 한 번도 가보지 못했다. 22살. 처음으로 비행기에 몸을 싣고 제주도로 향했다. 2박 3일의 짧은 여행이었다.
제주도서에서의 첫 목적지는 강정마을이었다. 뉴스에서 어렴풋이 강정마을에 대해 본 기억이 있었다. 올레코스 중 가장 아름답다는 7코스에 해군기지를 짓는다는 뉴스였다. 처음엔 얼마나 아름답기에 마을 주민들이 다 난리인가 싶어 잠깐 들렸다가 서귀포 중문에 가려고 했다.
버스에서 내리자 강정마을이 보였다. 노란 배경에 빨간 글씨로 ‘해군기지 반대’라는 문구가 쓰인 플랜카드가 온 마을을 뒤덮고 있었다. 마치 오면 안 될 거 같은 곳에 온 느낌이었다. 나는 누가 봐도 ‘관광객’이었다. 나풀거리는 원피스에 캐리어를 들고 선글라스를 낀. 나는 캐리어를 끌고 강정마을 이곳저곳을 돌아다녔다. 1시간이면 마을 전체를 돌아볼 수 있는 작은 마을이었다. 한참 걷다 보니 마을 회관 앞에 사람들이 모여있었다. 뭔가 싶어 걸음을 멈추고 나도 무리에 섞였다. 내가 도착했던 그날은 마침 ‘해군기지 반대 대집회’가 열리는 날이었다. (운명일까?)
마을회관에 모여 사람들은 ‘해군기지 결사반대 평화의 섬 돌려놔라’라는 구호를 외치고 있었다. 몇 차례 구호를 외치더니 노래에 맞춰 사람들이 춤을 추기 시작했다. 그 유명한 강정 4종 댄스였다. 나는 시위 현장이 익숙했다. 노사모였던 아빠 탓에 중학교 때부터 집회에 참여했기 때문이다. 근데, 여기는 달랐다. 매서운 눈빛으로 ‘해군기지 결사반대’를 외치다가 춤을 추고 그러다가 다시 ‘평화의 섬 돌려놔라’라며 외쳤다.
캐리어를 옆에 두고 사람들을 구경했다. 그런데 갑자기 사람들이 강정포구까지 거리행진을 시작했다. 눈치를 보다가 나도 따라나섰다. 내 옆에 걷던 아주머니는 “캐리어를 끌고 어떻게 걸어~ 줘!” 하더니 내가 들고 있던 캐리어를 역시 ’해군기지 결사반대’라고 프랜카드가 걸린 슈퍼에 맡겨 주셨다. 한결 가벼워진 나는 그새 팔뚝질을 하며 ‘해군기지 결사반대 평화의 섬 돌려놔라’를 외치고 있었다. 그리고 정신 차려보니 강정 4종 댄스를 신나게 추고 있었다. 그렇게 여행의 첫 목적지가 마지막 목적지가 되었다. 춤을 추고 다시 마을회관으로 오던 길에 나는 돌아가는 비행기 표를 취소했다.
그렇게 2박 3일이던 제주도 일정이 2주로 늘어났다. 2주 동안 강정마을에만 있었다. 마을 회관에서 잠을 자고 지킴이들을 위한 식당에서 밥을 먹었다. 아침이면 해군기지 정문 앞에 앉아 공사를 저지했다. 나는 서울로 돌아갔다 일주일 만에 다시 강정에 내려왔다. 그렇게 1년을 강정마을에 있었다.
“공장에서 쫓겨난 노동자가 원직 복직하는 것이 평화, 두꺼비 맹꽁이 도롱뇽이 서식처 잃지 않는 것이 평화. 가고 싶은 곳을 장애인도 갈 수 있게 하는 것이 평화. 이 땅을 일궈온 농민들이 더 이상 빼앗기지 않는 것이 평화. 성매매 성폭력 성차별도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세상. 군대와 전쟁이 없는 세상 신나게 노래 부르는 것이 평화~”
아침에 일어나 해군기지 정문 앞으로 간다. 해군기지 안으로 들어가려는 공사차량이 줄을 지어 서있다. 지킴이들이 하는 일은 공사 차량이 해군기지 공사장으로 들어가는 것을 막는 일이다. 지킴이들과 마을 주민은 많아야 15명. 이들을 진압하려는 경찰은 300명. 스크럼을 짜고 앉아 있어도 금세 들려 나가기 일쑤였다. 경찰들은 공사장 앞에 있는 사람들을 들어 올려 옮기곤 아무 데도 가지 못하게 둘러싼다. 여러 명 한꺼번에 둘러싸면 우리가 다시 시도할까 봐 한 명 한 명 따로따로 고착시킨다 (고착 : 아무 데도 가지 못하게 경찰이 둘러싸는 것) 우리가 모여 있으면 힘이 생긴다는 걸 경찰이 제일 잘 안다. 짧게는 30분, 길게는 1시간 동안 아무 데도 가지 못하고 경찰에게 둘러 쌓여 있는다. 너무 억울해 울부짖기도 하고, 경찰들과 욕설을 퍼부우며 싸우기도 한다. 그래도 고착의 시간은 길다. 그날도 고착당한 채로 울고 있었다. 근데 어디선가 노랫소리가 들려왔다. 문정현 신부의 노랫소리였다. 평화가 무엇이냐. 그렇게 울음을 그치고 들려오는 노랫소리에 맞춰 춤을 췄다.
강정에서의 1년은 마치 컨트롤 C, 컨트롤 V 한 듯 같은 일상을 반복했다. 매일 스크럼을 짜고 고착당하고 울고 노래하고 춤추고. 낯가림이 심한 내가, 어떻게 아무도 모르는 난생처음 가보는 마을에서 1년을 먹고 잤는지 모르겠다. 동네 삼춘들에게 자전거를 얻어 타고 다니고, 귤농사짓는 삼춘 하우스에 가서 귤을 따고, 모르는 사람과 스크럼을 짜고 함께 노래했는지 모르겠다.
제주도의 눈부신 햇살만큼 뜨거웠던 하루하루를 보냈다. 내 운동의 8할은 강정마을이다. 강정마을에 있으며 환경단체, 동물보호 단체에서 활동하고 싶었다. 환경을 지키고 바닷속 동물들이 그들답게 살았으면 해서 강정마을에 있었다.
결국 강정마을엔 해군기지가 들어왔고, 이제는 제2 공항이라는 명목하에 공군기지도 들어설 작정이다. 결론적으론 실패한 운동. 하지만 아직도 강정마을에는 지킴이들이 있다. 해군기지를 몰아내고 평화의 섬을 만들고자 외치는 활동가들이 있다.
그렇게 1년을 버티고 나와 강정마을을 가지 않았다. 용기가 없었다. 하지만, 평화가 무엇이냐를 들으며, 외치며 다시 강정마을에 가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