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자리

by 봄눈별

2023년 12월 단체에 신입 활동가가 들어왔다. 수연은 MTF(Male to Female) 트랜스젠더이다. 몇 년 전 한국에서 수술을 받고 성별정정까지 마쳤다. 나는 생애 처음으로 밀접한 관계로서 트랜스젠더를 만났다. 혹시나 실수하진 않을까 걱정이 되었다. 트랜스 이슈에 대해 많이 아는 바가 없어 내 무지가 드러날까 조마조마했다. 타고난 지정 성별과 내가 정체화하고 있는 성별 정체성이 일치하는 시스젠더인 나는 내가 가진 권력에 대해 생각했다. ‘시스젠더 권력 시스젠더 권력…’ 나는 자주 되뇌었다. 나의 무지로 실수해 트랜스젠더인 그녀에게 상처를 줄까 봐 나를 하나하나 검열했다.


단체의 큰 행사인 총회를 3일 앞둔 어느 날이었다. “총회 장소를 바꾸고 싶어. 모두의화장실이 가능한 곳으로” 수연이 말했다. 모두의화장실은 성별에 상관없이 사용가능한 (그 성별 범주에 여성과 남성만 있는 것이 아닌) 화장실이다. 나도 너무 동의한다. 트랜스젠더도 자유롭게 화장실을 가야 한다. 하지만 지금은 총회가 3일밖에 안 남았는데? 공간을 다시 알아봐야 하고, 예약하고, 참석자들에게 장소 변경 공지까지 다시 해야 하는데? 수연은 담담해 보였다. 내 마음은 기름에 물방울이 튄 거처럼 소란스러웠다. 나는 이것이 불필요한 실무를 가중시킨다는 생각에 조금 짜증이 났다. 다른 행사를 할 때도 모두의화장실을 찾아 헤매느라 시간을 다 쏟았다. 싸고 넓고 쾌적한 공간보다 모두의화장실이 중요해질 때 나는 그녀가 불편했다. ‘이제 여성으로 보이는데 화장실 문제가 뭐가 대수지?’ 그냥 대충대충 넘어가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화장실 문제로 이렇게 골몰할 시간이 없다고 수연을 닦달하고 싶었다.


수연은 내가 피는 담배의 향을 좋아했다. 내가 담배를 피울 때면 옆에 붙어 씁하씁하 적극적인 간접흡연을 했다. 그날도 수연은 담배 피우러 나가는 나를 따라 나왔다. “봄눈별은 약 늘릴 때 어떻게 결정해?” 수연은 정신과 약에 대해 물었다. “의사 샘이랑 상의해서 늘리지…” 수연은 며칠 전 약을 늘렸다며, 자신의 의사는 힘들다는 말만 하면 약을 늘려준다며 투덜거렸다. 원래 나였으면 물었을 것이다. “약을 늘렸어? 무슨 힘든 일이 있었는데?” 근데 그날은 묻고 싶지 않았다. 수연의 깊은 우울에 대해 알게 되면 나는 지금처럼 지내지 못할 거 같았다. 트랜스젠더로서 사는 것의 고단함에 연루되고 싶지 않아 얼른 담배를 껐다.


수연은 그다음 날 죽었다.


수연이 죽고 나서야 그녀의 삶에 대해 생각한다. 내가 시스젠더로서 얼마나 큰 권력을 가지고 있었는지 이제야 진짜로 알 거 같다. 성차별주의자가 이상한 농담을 하며 웃자고 한 얘기에 죽자고 달려든다고 한다면 난 어떨까? 대충대충 넘어가자고 말할 수 있을까. 근데 왜 수연은 대충 넘어갔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을까. 늘 배제되고 차별 상황에 놓여지며, 때때로 삶의 위협까지 받는 그녀의 삶을 나는 이제 알아야 한다. 뒤늦은 질문을 던진다. “수연, 어떤 것이 널 그렇게 힘들게 했어?” 나는 이야기하고 싶다. 수연에게 설명하고, 설명받고 싶다. 하지만 그럴 수 없다는 걸 깨달을 때마다 그날 담배를 쉽게 꺼버린 나를 탓하며 한숨을 내쉰다.


“모두 각자의 자리에서 파이팅!” 수연이 마지막으로 단체상근자방에 남긴 메시지이다. 나는 수연의 죽음 딛고, 페미니스트로서, 트랜스젠더 앨라이(차별에 대해 함께 연대하는 자)로서 살아가야 한다. 그것의 나의 자리인 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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