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이 남기는 모든 것
쿠바에 만정이 다 떨어질 때, 그럴 때가 있다.
가끔 정말 몸서리치게 쿠바가 싫어질 때가 있다. 며칠 전이 바로 그런 날이었다.
그는 나를 알지 못한다. 나는 그를 우리나라 최고의 살사 댄서라 생각했었다. 어쩌면 아시아 최고의 천재 댄서라 불러도 부족할 그라 생각했었다. 살사라는 춤이 대중적이지 못해, 그저 우리들만의 리그에서 최고일 수밖에 없는 그가 늘 안타까웠다. 그는 늘 보는 이들을 놀라게 하는 춤꾼이었고 예술가였다. 그런 그가 얼마 전 세상을 떠났다. 누구도 생각지 못한 때에, 누구도 생각지 못한 일이었다. 그는 그렇게 이 세상을 떠났다. 그런 그에겐 <쿠바>가 있었다.
그는 오래전부터 아프로큐반 Afro-Cuban을 선보였다. 아프리칸 흑인들의 삶과 혼이 담긴 춤과 음악을 사랑했다. 내가 쿠바를 알기 전부터 이미 그는 쿠바에 빠져 있었다. 그는 쿠바에서 춤을 췄고 음악을 배웠다. 그렇게 쿠바를 자주 오갔다. 그런 그가 쿠바 여행 후 갑자기 세상을 떠났다. 갑자기 아팠고, 갑자기 그렇게 떠났다.
그리고 그는 이렇게 말했다고 했다.
『그렇게도 좋아하던 쿠바에서 극심한 인종차별과, 강도도 당할 뻔했고, 결국은 돈이 목적이 아닌
진심으로 다가오는 사람을 단 한 명이라도 만나보고 싶었다.』
머리가 아팠다. 내가 알던 쿠바, 그런 쿠바에서 그가 보낸 그 힘들었을 시간 8개월.
'쿠바 때문이야'
떨쳐지지 않는 <쿠바 때문이야>. 내 머릿속을 끝없이 맴돌았다. 나를 괴롭혔다.
쿠바 때문이야. 미안하지만, 정말 미안하지만 쿠바. 너 때문이야.
지난해 11월부터 올 7월까지 그는 쿠바에 있었다. 이미 많은 쿠바 친구들이 있었을 터다. 그는 영어와 스페인어에 능통했다. 그에게 그 친구들은 이미 <아미고 Amigo> 이상이었을 게다. 쿠바 사람들은 정이 많고 친구를 사귀길 좋아하니까, 춤을 추고 노래하는 것을 좋아하니까. 그런 그가 쿠바에 받은 상처와 실망이 그를 견딜 수 없게 만든 게 아닐까. 나는 나의 경험과 내가 알고 있는 쿠바를 생각하며 그렇게 자꾸 핑계를 쿠바에 대고 있다. 그가 사랑했고 내가 사랑하는 쿠바를 의심하고 있다.
쿠바는 지금 코로나로 최악의 경제 상황을 겪고 있다. 그가 경험한 쿠바는 우리가 여행하던 그런 쿠바가 아니었을게다. 외국인은 모두 떠났고 공항은 문을 닫은 지 오래다. 당장 먹고사는 것이 가장 큰일이 된 지 오래다. 그들에게 절망적인 시간이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그의 친구 댄서들은 그들에게 남은 외국인, 그가 그들에겐 유일한 돈이 되는 방법이었게다. 그런 그들에게 우정 따위가 중요했을까, 아미고와의 의리가 남아 있었을까. 아니었을 것 같다.
슬프고 슬프고 또 슬펐다. 쿠바에 만정이 다 떨어졌다. 내가 그동안 사랑했던 나라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다고 말했던 그곳이, 어디와도 비교할 수 없는 매력적인 나라라 부르던 그곳이. 우리에게 그렇게 소중한 그를 지켜주지 못했을까, 정말.
쿠바가 한없이 원망스러웠고, 내가 쿠바를 다시 사랑할 수 있을까 몇 번을 다시 생각했다. 원망이 안쓰러움으로, 그 안쓰러움이 다시 슬픔으로 반복되었다. 누가 그들을 그렇게 만들었을까. 그렇게 살지 않으면 견딜 수 없는 그들의 가난은 누구의 책임일까. 누가 그들을 욕할 수 있을까. 기회조차도 얻을 수 없는 절망 같은 삶에서, 그들이라고 그 긴 시간을 버티기에 버겁지 않았겠는가. 그들이라고 그들의 친구가 이렇게까지 상처를 받았을 거라 생각인들 했겠는가.
이제 그는 이 세상에 없다. 쿠바가 그에게 어떤 곳이었건 그는 이제 이 세상에 없다. 그렇게 사랑하던 나라, 춤, 사람들. 이젠 그에게 중요하지 않다. 나는 며칠 동안 그렇게 쿠바를 미워했다. 안타깝게 떠난 그를 위로했다. 인종차별도 없고, 배신도 없고, 맘껏 춤추고 웃고 노래하길. 그저 행복하게 살 수 있는 그런 나라에 잘 도착했기를 바랐다. 쿠바에서 가장 행복했던, 그런 순간만 가득한 그런 나라에서 편히 쉴 수 있기를.
나는 다시 쿠바를 안아주게 되겠지. 그들의 그 암울한 삶에 뭐라도 내가 할 수 있는 게 없을까 고민하게 되겠지. 쿠바니까, 그게 만정이 떨어졌다가도 미워할 수 없는 나라 쿠바니까. 그런 곳이다, 내게 쿠바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