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1월 다니던 회사를 그만뒀다.
야심 차게 <쿠바>와 <멕시코> 여행에만 올인을 하겠다고 사표를 낸 게 1월 20일. 그리고 바로 코로나 백수가 되었다.
그 무렵 1년 반을 사귄 남자 친구와 동거를 시작했다. 천안에서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서울에 올라와 다시 집을 얻는다고 생각하니 내겐 낭비였다. 쿠바와 멕시코를 자주 여행을 해야 할 테고, 그럼 집을 자주 비울 테고, 한국에 돌아와 남자 친구를 만나서 두 집을 오간다는 게 여간 피곤할 것 같지 않았다. 돈 낭비, 시간 낭비. 그래서 조심스럽게 남자 친구를 설득했다.
남자 친구는 약간의 뜸을 들인 후
"그래, 괜찮을 거야. 같이 살아보자"
그렇게 우리는 동거를 시작했다.
마흔여섯과 마흔아홉, 한국 사람과 아일랜드 사람이다.
나는 결혼을 경험한 적이 없는 싱글이자 동거가 처음이었고, 그는 한 번 결혼을 했던 경험이 있었고 아이는 없었다. 동거가 처음인 것 같지는 않았지만 묻지는 않았다.
천안의 짐을 최대한 줄여 그의 방 두 칸짜리 집에 꼬깃꼬깃 집어넣었다. 그도 내 공간을 만들기 위해 낡은 가구 몇 개를 버려야 했다. 혼자 살기에도 넓지 않던 공간이었는데 둘이 되니 꽉 찬 느낌이었다. 그래도 마법처럼 집은 정리가 되었다. 더 늘리지만 않으면 불편함을 없으리라. 방 두 칸, 화장실 하나. 아주 평범한 이 집의 매력은 아름다운 뷰를 가진 베란다였다.
<나는 1년에 몇 번씩 여행을 떠날 테고, 둘이 함께 있을 날은 그렇게 많지 않을 거야>라고 시작한 동거는 계획대로 되지 않았다. 학교에서 일을 하는 남자 친구의 모든 수업은 온라인으로 바뀌었고, 나의 모든 여행 계획은 취소가 되었다. 결국 하루 24시간을 붙어 살아야 하는, 예상치 않았던 일이 벌어졌다. 아침에 눈을 뜨면서 밤에 잠이 들 때까지 우리는 한 공간에 있었다. 그렇게 24시간 동거가 시작되었다.
남의 집에 얹혀사는 느낌, 나는 가장 먼저 이 생각을 지우려 노력했다. 짐이 된다는 생각보다 '함께'라는 정당성을 부여했다. 나와 전혀 생활 패턴이 다르고 스타일이 다른 남자 친구의 삶의 방식에 대해 관여하지 않으려 노력했다. 빨래하는 방식도 달랐고, 설거지하는 방식도 달랐다. 청소를 하는 방식이며 식사를 하는 패턴도. 각자 살아온 45년이 넘는 시간이니 같은 수 없는 게 당연했다. 그런 하나하나에 '왜'라는 생각을 하지 않으려 노력했다.
생각보다 나쁘지 않았다. 아침에 눈을 뜨면 남자 친구는 먼저 커피를 내렸다. 아침잠이 많은 백수 여자 친구의 커피도 항상 같이 내렸다. 제때 커피를 마실 수 없어 다시 데워서 먹어야했지만 그 정성이 고마웠다. 남자 친구는 잔소리가 없다. 내가 무엇을 어떻게 하든 자기와 다른 방식에 대해 뭐라고 하는 법이 없었다. 내가 게을러도, 내가 일을 제때 찾지 못해 종일 집에서 뒹굴어도, 작은 집에 덩치 큰 어른 둘이 종일 함께 있어야 해도 한마디 불평이 없었다. 그런 남자 친구에게 나 또한 어떤 잔소리도 하지 않았다. 서로가 다름을 인정하고 상대방의 불편함을 최소화하려 노력했다. 다시 보니 우린 둘 다 무난하고 무디고 약간은 게을렀다.
3개월이 지날 무렵 남자 친구에게 물었다.
"혼자 살 때보다 불편한 점 없어? 좋은 점 3가지, 불편한 점 3가지 말해봐"
"음, 불편한 점 없는데?! 같이 있는 거 다 좋아"
그렇게 9개월이 지났다. 이 악몽의 2020년은 3개월이 남았다. 조심스럽게 그리고 약간은 걱정스럽게 시작한 동거. 9개월의 시간을 함께 하면서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의 생활패턴에 적응하기 시작했고, 나를 배려하는 누군가의 사랑에 감동하고 있다. 코로나가 아니었다면 느끼지 못했을 감정적 경험이다. 내 남자 친구를 그리고 나를 찬찬히 다시 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