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어떤 사람인가
임용고시를 결정하고 가장 먼저 임용고시 학원을 등록했다.
1-2월은 온라인으로 듣기로 결정하고,
3월부터 현장강의를 신청했다.
현장강의를 신청한 3월, 스터디원들을 만났고
1년동안 열심히 공부했다.
어떻게 그 1년을 버텼을 까 생각해보면,
좋은 스터디원들을 만나 함께 견뎌내어서 가능이었다.
그들은 지금까지도 참 좋은 동기들이자 동료들이다.
또 인생은 끊임없이 나에 대해 알아가는 과정이라고 했던가.
임용을 준비하면서 나는 내 성향을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었다.
같이 강의를 듣기로 한 대학원 친구는 절대 스터디에 들어가지 않았다.
자신은 내향적이고 혼자 공부하는 스타일이 맞다고 했다.
나는 그 이야기를 듣고 ‘오 쟤는 자기에 대해 정확하게 아네? 그럼 난 어떻지?’
하고 생각해보다
망설임없이 스터디에 지원했다.
나는 외향적이고 사람들이랑 함께 공부해야 시너지가 나는 사람이었다.
지금도 나는 새로운 공부를 시작하거나
자격증에 도전할 때도 스터디를 만들어서
함께 공부하는 것을 선호한다.
이런 성향을 정확하게 파악하는 것은
임용같은 시험에 아주 중요했는데,
스터디원들에게 얻는 에너지가 공부하는 힘의 원천이 되었기 때문이다.
1차 시험을 망친 것 같았을 때, 크게 낙심하지 않을 수 있었던 이유도
2차 집단토의와 면접에 자신있었기 때문이다.
경기도 임용시험은 당시 ‘집단토의’가 필수였는데,
집단으로 한 주제를 놓고 토의하는 것은
내게 스트레스가 아니라 큰 즐거움이었다.
자신있고 당당하게 그리고 문맥에 맞게 즐겁게 말하기.
‘관리번호 1번 기조발언 시작하겠습니다’ 로 시작했던
즐거운 말하기는
현재 상담수업과 강의를 꿈꾸는 내 미래를
예견해주었던 것 같다.
학교상담현장에서는 점점 더 상담교사에게
수업을 요구하고 있다.
‘수업’을 하지 않는 교사는 교사가 아니라는
인식이 강해서일까.
하지만 나는 수업을 하는 것에 크게 거부감은 없는 편이다.
다만, 상담을 해야하는 나의 본연의 업무에
수업이 너무 방대한 비중을 차지한다면
그건 조절해야겠지만.
굽어돌아가더라도, 내길이 아닌것 같더라도
어떤 길을 마주하던
그 길 속에 내가 있다.
어떤 일을 하든,
나를 끊임없이 알아가고자 하는 노력은 변함이 없고
임용이라는 큰 틀에서 나는 나를 더욱 알아갔다.
학교현장에서 아이들을 만나며,
내가 만나는 아이들이 나와의 상담을 통해
조금 더 나 자신에 대해
알아갈 수 있는 시간이길 ..
오늘도 그런 바람으로 아이들을 만나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