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송하다'는 공감의 문

학부모상담을 하며

by 봄비설기

한 아버지가 잔뜩 인상을 쓰고 눈도 잘 마주치지 않고 상담실에 들어오셨다.

지속적인 불만을 얘기하실 때마다

'뭐가 문제지' 마음속에서 갸우뚱했다.

풀리지 않는 응어리를 가득 들고 오신 것 같아

우선은 그 응어리부터 만져드리기로 했다.


'죄송하다'라는 표현이 내 잘못을 인정하는 꼴이 되어

혹여나 불미스러운 일에 휘말릴 수 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여러 선생님들이 겪는 민원들을 심심찮게 보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럴 때는 '죄송하다'라는 표현 밖에 할 말이 없었다.

그렇게 감정이 상했다면 '죄송해요'

그렇게 말이 들리셨다면 '죄송해요'

이전 일에 대해서는 제가 대신 '죄송한 마음을 전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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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송하다는 표현은 '죄스러울 정도로 미안하다'라는 뜻인데

사실 죄스러울 정도로 미안한 마음인지는 잘 모르겠다.

쉽게 사과해도 되는 건지도 잘 모르겠다.

그럼에도 '죄송하다'라는 말 한 마디에

눈 녹듯 표정이 녹아내리며 급격히 수다스러워지신 학부모님.

들어올 때 표정과 나갈 때 표정이 이렇게 다를 수 있다면

내가 참 괜찮은 일을 했구나 싶다.

그저 죄송하다로 시작해서 잘 들어드렸을 뿐인데.


'네 마음이 그랬다면 분명 이유가 있었을 것'이라고 아이들을 만나주면서

정작 그 아이들의 거울인 부모를 대할 땐

그 공감의 기준이 높아지는 것을 깨달았다.


아이들에게는 어른들의 부족함과 모남에 대해 미안하다고 사과하면서

아이들의 전부인 부모를 대할 땐 '이게 그렇게까지 죄송한 일이야?' 하고 반문하며

쉽게 사과하지 못하는 내 모습도 발견했다.


논리적이고 이성적인 조언 없이도 충분히 공감받았을 때 상대는 스스로 답을 찾을 수 있다고 한다.


'죄송하다' 는 표현이 공감의 표현은 아니지만

상대의 마음을 열고 스스로 답을 찾아갈 수 있게끔 돕는 역할을 해줄 수 있다면

그것만큼 기똥찬 공감의 문이 또 있을까.


학부모이기도 한 나는 어린이집에서 내 아이가 다른 친구에게 여러 번 물렸을 때도

진실된 어린이집의 사과를 원했다.

아니, '죄송하다'라는 표현을 듣고 싶었다.

그 표현 한번 제대로 해주지 않고 둘러대는 다른 말들에

더 쉽게 상처받았는지도 모르겠다.


어린이집을 옮기고 아이가 어린이집에서 상처가 난 상황이

선생님이 죄송한 일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연신 '죄송하다'고 먼저 말해주시니

'아뇨 선생님 괜찮아요!' 라고 자연스럽게 넘어가게 되더라.



진정한 공감은 마음을 비우고 자신의 존재전체로

상대의 말을 들어주는 것이라 했다.

존재의 무게를 담아 그 마음에 머무르는 일.



나의 사과가 쉽게 사과하는 태도일 수는 있으나

내가 그 사람의 마음에 머무를 수 있도록 마음을 여는 출발점이 될 수 있다면.

나는 또 다시 '죄송하다'고 말하며 대화를 시작해보려 한다.


죄스러울 정도로 미안한 일이 아님에도

마음을 녹여주는 시작점이 될 수 있기에.

그래서 우리는 날마다 죄송하다는 이야기를 하고 살아야 되는 건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