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화. 우리는 인생의 아이비리그를 졸업한다 +프롤로그
무엇을 겪었는지,
얼마나 아팠는지,
어디서 무너졌는지.
그 설명은
사실이었지만
전부는 아니었다.
상처는 내 삶의 일부였지만,
내 삶의 제목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회복이 쌓이자
어느 순간부터
내가 나를 설명하는 말이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했다.
“나는 상처받은 사람이야”에서
“나는 상처를 지나온 사람이야”로.
“나는 아직 부족해”에서
“나는 배우는 중이야”로.
“나는 망가졌어”에서
“나는 변했고, 여전히 살아 있어”로.
이 변화는
말장난이 아니다.
삶을 바라보는 좌표의 이동이다.
어떤 언어로 나를 설명하느냐에 따라
나는
피해자가 될 수도 있고,
생존자가 될 수도 있고,
성장하는 사람이 될 수도 있다.
그리고 중요한 사실이 하나 있다.
언어는 현실을 따라가지 않는다.
언어가 현실을 만든다.
내가 나를
어떤 언어로 부르느냐에 따라
내가 서 있는 자리도 달라진다.
상처 중심의 언어는
나를 과거에 묶어두지만,
과정을 담은 언어는
나를 현재로 데려온다.
그래서 이제는
상처를 지우지 않되,
상처에 머무르지도 않는다.
상처는
설명해야 할 증명이 아니라,
통과해 온 경로가 된다.
그리고 그 경로 위에서
나는 이렇게 나를 부른다.
“나는
견뎌냈고,
배웠고,
지금도 살아가고 있는 사람이다.”
이 언어는
나를 특별하게 만들지 않는다.
하지만
나를 정확하게 만든다.
이제 나는
누군가에게 보여주기 위해
나를 설명하지 않는다.
나 스스로에게
정직해지기 위해
나를 설명한다.
이 학교에는
졸업식이 없다.
모자를 던질 일도 없고,
사진을 찍어줄 사람도 없고,
누군가의 축사를 들을 자리도 없다.
대신
어느 날 문득
이런 순간이 찾아온다.
같은 상황인데
예전처럼 무너지지 않고,
같은 기억인데
예전처럼 끌려가지 않고,
같은 두려움인데
예전처럼 나를 지배하지 않는 순간.
그때 사람은
조용히 알아차린다.
아,
나는 이미 이 과정을 통과했구나.
인생의 아이비리그는
들어갈 때보다
나올 때 더 조용하다.
아무도
“수고했다”고 말해주지 않고,
아무도
“잘 견뎠다”고 기록해주지 않는다.
그래서 이 졸업은
스스로에게 주는 인정으로만
완성된다.
나는 이 학교에서
버티는 법을 배웠고,
나를 지키는 법을 배웠고,
두려움과 함께 선택하는 법을 배웠고,
상처를 설명하는 언어를
다시 쓰는 법을 배웠다.
그리고 무엇보다
나를 버리지 않는 법을 배웠다.
이 학교를 졸업했다고 해서
인생이 쉬워지지는 않는다.
앞으로도 흔들릴 것이고,
아플 것이고,
두려움은 여전히 곁에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제는 다르다.
나는
무너져도 돌아올 수 있고,
흔들려도 나를 잃지 않고,
아파도 나를 돌볼 수 있다.
그것이면 충분하다.
이 학교의 학위는
액자에 걸 수 없고,
명함에 새길 수도 없다.
하지만 이 학위를 가진 사람은
누군가의 고통 앞에서
함부로 말하지 않고,
자신의 삶 앞에서
함부로 포기하지 않는다.
그는 안다.
상처는
사람을 불쌍하게 만들기 위해 오는 것이 아니라,
사람을 깊게 만들기 위해
통과하게 되는 과정이라는 것을.
이 글을 여기까지 읽은 당신도
이미 이 학교의 학생이었고,
어쩌면
이미 졸업생이다.
그러니
이제는 이렇게 말해도 된다.
“나는
인생의 아이비리그를
견뎌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