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설명 없이 남아 있던 말
어릴 때 들었던 말 하나가
이상하게 오래 남아 있다.
누가 해줬는지도 분명하지 않고,
그 말이 정확히 무엇을 뜻했는지도 알 수 없는데
이상하게도 그 말은
삶의 어떤 순간마다 다시 떠오른다.
“괜찮아.”
그 말은 설명이 없었다.
지금 상황이 왜 괜찮은지,
앞으로 어떻게 될 건지,
무엇을 더 노력해야 하는지
아무것도 말해주지 않았다.
그래서 오히려 남았다.
괜찮다는 말은
문제를 없애주지 않았다.
고통을 지워주지도 않았다.
삶을 쉽게 만들어주지도 않았다.
다만 그 말은
나를 밀어내지 않았다.
살다 보면
괜찮지 않은 순간들이 온다.
쉬고 싶을 때도 있고,
아무것도 하기 싫을 때도 있고,
짜증이 나서 스스로가 싫어질 때도 있다.
넘어질 때도 있고,
실패할 때도 있고,
병원에 앉아 천장을 바라보는 날도 있다.
그럴 때 우리는
자주 이런 말을 듣는다.
조금만 더 힘내라.
그래도 다들 그렇게 산다.
긍정적으로 생각해라.
언젠가는 나아질 거다.
하지만 어떤 날에는
그 말들조차 감당하기 벅차다.
그럴 땐
아무 설명 없는 말 하나면 충분하다.
오늘 아침,
아이를 씻기며 출근 준비를 하던 시간이었다.
시간은 촉박했고
마음은 이미 앞서 가 있었는데
아이는 자꾸 나를 안았다.
예전 같았으면
서둘러 떼어냈을지도 모른다.
말로 설득했을지도 모른다.
목소리가 높아졌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오늘은
아이를 그대로 안아주었다.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마음속으로 숫자를 셌다.
아이가 충분히 안정감을 느낄 때까지.
(하나, 둘, 셋, 넷...)
아이는 환하게 웃었다.
그 순간 이런 생각이 들었다.
지각해도 괜찮지 않을까.
아이가 더 소중하니까.
나는 이 아이의 편이니까.
신기하게도
걱정했던 문제는
나에게 일어나지 않았다.
나는 회사에 늦지 않았고
아이는 평온하게 유치원에 갔고,
세상은 아무 일도 없었다.
조급함을 내려놓고
딱 10초, 혹은 30초 멈춘다고 해서
세상이 끝나지는 않는다.
이 글은
그런 순간들을 기록한 글이다.
잘해보자는 이야기도 아니고,
바꾸자는 선언도 아니고,
더 강해지자는 다짐도 아니다.
다만 이렇게 말해주고 싶었다.
괜찮아.
지금 이 상태여도 괜찮아.
그리고 나는,
니 편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