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화 “어차피”라는 말이 나오는 순간
이 말의 공통점은
상대를 향한 말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선언이라는 점이다.
이 게임에서
“어차피”는
가장 빠르게 점수를 종료시키는 단어다.
아직 시작도 안 했는데
결과를 미리 정해버린다.
아직 선택지가 남아 있는데
전부 닫아버린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 말은 늘 안전해 보인다.
실패하지 않아도 되고
상처받지 않아도 되고
기대하지 않아도 된다.
대신,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어차피”라는 말은
패배의 언어가 아니다.
회피의 언어다.
해보고 지는 것보다
아예 게임에 들어가지 않는 쪽을
선택하게 만든다.
그래서 이 말이 나오는 순간
점수는 이렇게 변한다.
−1도 아니다.
0도 아니다.
게임 중단.
하루가 갑자기 무거워지는 날은
대부분 이 단어가 먼저 등장했다.
“어차피 피곤할 텐데.”
“어차피 말해도 소용없어.”
“어차피 오늘은 글 안 써질 거야.”
그 말이 끝나는 순간
몸은 더 피곤해지고
말은 더 줄어들고
선택지는 사라진다.
이 게임에서
“어차피”를 쓰지 말라는 규칙은 없다.
다만,
이렇게만 해보자.
“어차피”가 나오면
속으로 ‘중단’이라는 표시만 떠올리기
바꾸지 않아도 된다
금지하지 않아도 된다
알아차리기만 하면 된다
이 게임의 목적은
말을 예쁘게 고치는 게 아니다.
게임을 계속할 수 있게 하는 것이다.
다음 화에서는
말이 아니라
침묵이 점수가 되는 순간을 이야기해보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