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아직 수습 중이다

by 봄울

나는 벌여놓은 것들이 많다.


끝내지 못한 작품들,
중간에 멈춘 연재들,
구상만 해두고 덮어둔 제목들.

한동안 나는 그 목록을 떠올릴 때마다
스스로가 한심하게 느껴졌다.


왜 나는 이렇게 정리를 못할까.
왜 늘 시작만 하고 마무리를 못할까.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보니,
그렇게 벌여놓았기 때문에
나는 817개의 글을 쓸 수 있었고
40편의 작품을 시작할 수 있었다.


완벽한 사람이었다면
아마 시작조차 하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나는 요즘
나를 수습하고 있다.


지산 문제도 있었고,
몸은 생각보다 약해졌고,
명절은 체력을 앗아갔다.

그 사이에서 나는
조금 지쳐 있었다.

그래서 처음으로 이런 생각을 했다.


“미루지 말아야 할 가장 일순위는
내 몸 돌보기 아닐까.”


체력이 받쳐주지 않으면
도전도, 일도, 글도
오래 가지 못한다.


며칠 전,
갱년기에 좋다는 고구마와 두부를 갈아
따뜻한 수프를 만들어 먹었다.

거창한 건강식은 아니었다.
어설펐고, 맛도 완벽하지 않았다.


하지만 나는 고구마와 두부를 사두고,
수프를 만들어 먹었고,
그날 저녁 음식을 조금 덜 먹었다.

그 작은 변화가
내겐 의미 있었다.




나는 시작했다.

나는 아직 완전하지 않다.
여전히 마무리하지 못한 것들이 있고,
여전히 부족하다.

하지만 이제는
그 부족함을 견디지 못해
나를 몰아붙이기보다,


“괜찮아.
조금 숨 쉬어도 돼.”


라고 말해주고 싶다.


아이를 돌보는 만큼,
가족을 위하는 만큼,
이제는 나를 챙기는 연습을 해보려고 한다.


내 몸을 살피고,
내 마음을 듣고,
내 감정을 그냥 지나치지 않는 연습.

나는 아직 수습 중이다.


그러나 멈춘 것이 아니라
회복을 배우는 중이다.

작고 미미해 보여도
나는 이미 시작했다.


그리고 이번에는
일보다 먼저
결과보다 먼저
나를 돌보는 사람으로
조금씩 달라지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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