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지 않지만, 중요한 것들

영혼은 기억한다

by 봄울

나는 한때 모든 잘못이 남편에게 있다고 믿었다.

폭력과 분노와 상실과 무너짐 속에서
상대가 문제라고 생각하는 것이 더 쉬웠다.


하지만 집을 떠나
고시원 책상 위에서
작은 밥상에 기대어 눈물 흘리던 그 시간들.

나는 비로소 나 자신을 마주했다.


그 시간은
남을 미워하는 시간이 아니라
내 부족함을 알아가는 시간이었다.


폭력은 옳지 않았다.
그 선택은 상처를 남겼고,
누구도 그런 고통을 정당화할 수 없다.


그러나
내 선택도 완전하지 않았다.


나는 완벽하게 사랑하지 못했고,

완벽하게 지키지 못했고,
완벽하게 버티지도 못했다.


그 사실을 인정하게 된 순간
내 마음은 조금씩 부드러워졌다.


집으로 돌아온 뒤
나는 깨달았다.


아이 둘을 사랑할 수 있는 사람,
나만큼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은
세상에서 남편뿐이었다.


그 사실은
논리나 판단이나 도덕이 아니라
시간이 가르친 진실이었다.


우리는 서로를 낫게 한 것이 아니라,
서로를 있는 그대로 인정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나도 부족하고,
그도 부족하고,
우리는 아직도 문제 속에 있다.

하지만 우리는 안다.


우리는 떠나지 않을 것이다.


아이들이 있기 때문이다.
아이들은 단순히 우리가 지켜야 하는 존재가 아니라
우리가 다시 사랑을 배운 존재다.


아이들은
우리를 다시 사람으로 만들었다.

남편은 술을 완전히 끊지 않았다.
하지만 조심하려는 마음이 생겼다.

나는 과거보다 단단해졌다.
하지만 부드러움도 함께 생겼다.


우리의 가정은
완벽하지 않다.

하지만
함께 문제를 마주하는 법을 배운 가정이다.


예전의 우리는
문제 속에서 서로를 미워했다.

지금의 우리는
문제 속에서 서로를 붙든다.


이 차이는
기적과 같다.


사랑은
무너졌을 때 돌아오는 것이 아니다.
무너진 자리에서 다시 시작할 때 비로소 자란다.


상처는 사라지지 않는다.
하지만 사람은 커진다.


그 시간들은
우리에게 상처만 남긴 것이 아니라
우리의 영혼 안에
깊이 각인된 사랑의 무게를 남겼다.


영혼은 그걸 기억한다.

사랑이 떠났던 시간이 아니라,
사랑이 돌아온 순간을.


사랑은 잊히지 않는다. 사랑은 다시 온다.

화, 목, 토 연재